헬스 > 건강 정보 유리 공주 한별이 2015.12.08

 

때이른 한파가 시작된 12월. 쌀쌀한 거리 위로 가로등 불이 점점 밝아지기 시작하는 늦은 오후.

오늘도 어김없이 엄마는 방과 후 수업 중인 한별이를 기다리고 있다. 엄마의 하얀 입김 사이로 자전거가 보인다. 한별이 전용 자가용이다.

 

잠시 후 교실 밖으로 아이들이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하자 복도를 서성이던 엄마는 얼른 교실로 들어가 한별이의 가방을 챙겨 든다. 운동장으로 나온 엄마는 자전거에 한별이를 태우고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기사가 되어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간다. 꽉 잡아.” 

 

 

반짝반짝 빛나는 유리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참 유별난 엄마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별이 엄마는 유별나게 굴 수 밖에 없었다. ‘골형성부전증’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작은 충격에도 뼈가 쉽게 부서지는 병. 바로 한별이가 앓고 있는 병이기도 하다.

 

골형성부전증은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한별이의 경우 아빠가 같은 병을 가지고 있다. 한별이 아빠의 양쪽 다리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수도 없이 부러졌다.

 

단지 앉았다가 일어나기만 했는데도 허벅지에 금이 갔고, 조금만 무거운 물건을 들면 척추에 압박 골절이 왔다. 한별이를 낳기 전까진 단순히 장애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한별이 생후 11개월쯤, 한별이의 다리가 부러져 찾아간 서울아산병원 유한욱 교수(의학유전학센터)로부터 골형성부전증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병을 진단받았고, 그 병이 아빠로부터 유전됐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됐다.

 

이 병의 완치방법은 아직 없다. 한 달에 한 번씩 뼈를 튼튼하게 해주는 주사를 맞아 골절을 예방하는 것뿐. 그날 이후 한별이 가족의 조용한 전쟁이 시작됐다.   

 

 

싸움의 기술


한별이의 유치원 입학을 앞두고 한별이 엄마와 아빠 사이에 의견 다툼이 잦아졌다. ‘높은 곳에 올라가다 떨어지면 어쩌나… 달리다가 넘어지면 어쩌나… 부딪혀서 다치면 어쩌나…’ 한시라도 눈을 뗄 수 없는 한별이 때문이었다.

 

키가 유난히 작은 것을 제외하곤 보통 아이들과 별반 다른 점이없었는데, 바로 그게 문제였다.

 

사람들에게 병을 알려야 한다는 엄마와 구태여 알릴 필요가 있겠느냐는 아빠. 하지만 엄마는 다른 아이들처럼 한별이도 사람들과 부딪히고, 세상과 마주하려면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한별이 만의 특별한 기술이 필요했다. 유치원 입학 전날, 엄마는 한별이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한별아, 유치원에 갔는데 누군가 너를 밀거나 때리면, 같이 싸워서는 안돼. 네가 아프다는 걸 표현해야 해. 다른 친구들도 알고 선생님도 알 수 있게. 알겠지?”

 

‘아프다고 당당하게 말해서 몸을 지키기’. 한별이 만의 특별한 싸움의 기술이었다. 

 

한별인 올해 두 차례 골절상을 입었다. 병의 조기발견과 엄마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일찍부터 병을 관리해 온 한별이는 작년까지 큰 골절상 없이 잘 지내왔었다. 그런데 얼마 전 가방을 들다 뼈가 부러졌다. 다른 친구들에겐 별일 아닌 일이 한별이에겐 사고가 될 수 있다는 걸 깜빡 한 것이다.

 

“병원에 가니까 수술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갑자기 한별이가 엉엉 우는 거에요. 무서워서 그런가 보다 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자기가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다쳐서 미안하다고…”

 

자기보다 엄마를 먼저 생각하는 속 깊은 어린 딸. 몸보다 마음부터 훌쩍 커버린 아이를 엄마는 꼭 안아주었다고 한다.   

 

 

든든한 지원군 의학유전학센터!


한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면 엄마도 발길을 돌려 일터로 향한다. 주중에는 장애인 활동 보조인으로, 주말에는 학교 도서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엄마, 아빠 모두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넉넉지 못한 살림에 한별이 뒷바라지를 제대로 못 해주는 것 같아 속상할 때가 많다.

 

뼈가 약한 한별이는 작년까지 같은 학년 아이들 중 가장 작았다. 짓궂은 남자아이들에게 땅꼬마라고 놀림당하기 일쑤였다. 성장호르몬주사를 맞으면 키가 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워낙 고가에다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이어서 차마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그런데 올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1년 만에 10센티나 자란 것이다. 한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한별이가 외래 진료를 받으러 올 때마다 “한별이가 벌써 유치원에 갔다고!” “이제 초등학생이 됐구나!"라며 항상 반겨주던 유한욱 교수가 작년부터 한별이를 볼 때마다 걱정스러운 얼굴이 됐다. 곧 2차 성징이 나타날 시기가 될 텐데 그럼 성장판이 닫혀 더는 키가 클 수 없기 때문이었다.

 

형편상 치료를 받기 어려운 한별이네 사정을 알고 있던 유한욱 교수는 성장호르몬치료를 지원하는 곳을 찾아 한별이를 추천해 주었다. 그렇게 1년간 치료받은 한별이의 예상 성장키는 143센티에서 157센티가 되었다.

쑥쑥 자란 한별이의 성장약은 아마 교수님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고마운 또 한 사람. 한별이를 ‘동화 속에 나오는 공주처럼 예쁜 아이’라고 불러주는 바로 의학유전학센터 최인희 간호사다. 평소에도 진료에 갈 때마다 가족처럼 편안하게 맞아 주고 한별이에 대한 사소한 고민까지 열심히 상담해 준단다.

 

무엇보다 최인희 간호사는 한별이의 보물 1호인 피아노를 갖게 해 준 1등 공신이다. 피아노를 갖고 싶어하는 한별이를 위해 선천성희귀병 아동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한 재단에 정성껏 편지를 써 보내 주어 피아노를 선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엄마는 피아노가 들어오던 날 한별이가 기뻐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는 가족  


“피아노요? 정말 별일 아니었어요.”

한별이의 피아노 이야기를 꺼내자 최인희 간호사가 손사래를친다.

 

“이곳에 오는 분들은 아플 때 찾아와서 치료를 받는 게 아니라, 진단을 받으면 평생 꾸준히 진료를 받아야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래서 시기마다 받아야 하는 검사나 치료가 있는데 오래 치료를 받으시다 보면 경제적으로나 생활하시는데 불편한 게 많을 수밖에 없어요. 방법만 있다면 어떻게든 도와드리고 싶어요. 다 가족 같은 분들인걸요.”  

 

이런 최인희 간호사가 보고 싶어 병원에 전화해 달라고 떼쓰던 한별이는 어느새 훌쩍 커서 희귀난치성질환 아동들이 모여 만든 합창단의 단원으로 활동 중이다. 합창단 아이들은 오후 늦게까지 함께 연습하고 예쁜 목소리로 화음을 만들어 노래가 필요한 곳에 공연하러 다닌다.

 

한별이네 합창단은 인기가 많아 큰 공연장에도 자주 초청을 받는다. 작년엔 우리 병원의 ‘단심회’(선천성 심장병 환우 모임) 행사에도 초대받았다.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자란 한별인 이제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매년 우리 병원 의학유전학센터의 신환수는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모두 병을 동반자 삼아 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요. 우리가 네 곁에 있다는 걸~ ’ 한별이의 노래처럼 서울아산병원에는 이렇게 서로 힘이 되어 주는 가족 같은 이들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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