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 건강 정보 마른 가지에 희망이 꽃피다 2016.01.26

 

보라에게 엄마는 


“엄마는… 불쌍한 거 같아요. 뭔가 하려는 의지도 있고, 항상 열심히 하는데… 받쳐주는 게 없으니까… 그래서 불쌍해요.” 

 

인옥씨의 삶은 늘 오르막길이었다. 오르막길. 앞으로 나아가려면 이마에서 땀이 뚝뚝 떨어질 만큼 힘을 다해 노력해야 하고, 멈추면 가차 없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그래서 언제나 온몸을 긴장한 채 한 발씩 나아갈 수 밖에 없는 아슬아슬한 길 위에 인옥씨는 서 있었다. 

 

165cm의 키에 누가 봐도 야윈 몸. 인옥씨는 이혼 후 두 딸을 혈혈단신 키우는 싱글맘이었다.

장사 수완이 좋은 인옥씨였지만, 여러 직장을 전전하며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야 하는 고단한 삶은 계속됐다.

 

하지만 엄마라는 이름으로 그는 씩씩하게 살아왔다. 두 딸, 보라와 수아는 인옥씨의 유별난 교육열 때문인지 공부를 잘했다. 인옥씨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그의 평범한 일상에 갑자기 불청객이 끼어들었다.

 

자궁경부암 2기. 당장 눈앞의 생계에 매달리느라 모아둔 돈은 주머니 속에 있던 단돈 6만 원뿐이었다.

돈이 없다는 건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치료를 받을 수 없으니 살 수 있을 확률도 낮았다. 당장 먹고 사는 것도 문제였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열심히 노력해도, 간절히 소원해도 달라질 여지조차 없어 보이는 현실. 인옥씨는 한없이 무기력해졌다.

하지만 어린 두 딸에게 자신이 지금껏 짊어졌던 짐을 남기고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그 생각만 하면 인옥씨는 견딜 수가 없었다.

 

살아야 했다. 포기할 수 없었다. 엄마니까…  

 


엄마에게 보라는  


“첫째 보라는 꿈이 외교관이에요. 실제로 공부도 잘하고요. 겉으론 강해 보이지만 마음이 여려 그게 가장 걱정이에요.” 

 

인옥씨의 딸 보라. 부족한 환경이었지만 조금도 좌절하지 않았다. 책을 읽고 싶으면 도서관에 가거나 헌책을 주워서 읽고 다 읽은 책은 고물상에 팔아 용돈을 마련했다. 누군가 버린 문제집을 풀고 학원 한 번 다녀본 적 없었지만, 성적은 항상 상위권을 유지했다. 밝은 성격에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인옥씨는 보라에게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만약 엄마가 없다면 보라는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엄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보라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었을까? 잠시 뜸을 들이던 보라.

 

“저도 상상해 봤어요. 해 봤는데…”

 

조금 전까진 믿을 수 없을 만큼 차분했던 보라가 갑자기 “으으으…” 가느다란 신음 섞인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가 없으면 제가 가장이잖아요. 그러니까… 동생, 엄마 없는 애처럼 키우지 말아야겠다 생각했어요.” 

 

열일곱 살이었다. 불현듯 인옥씨가 떠올랐다. 사실 인옥씨가 암 선고를 받고 가장 두려워했던 건 어쩌면 자기보다 더 어렵게 살게 될 두 딸이었다. 두 딸에게만은 가난도, 실패한 사랑도, 좌절된 꿈도 어느 것 하나 물려주고 싶지 않아 열심히 뒷바라지했었다는 인옥씨였다.

 

하지만 아이의 대답을 듣고선 깨달았다. 보라가 엄마에게 물려받은 것은 지독한 운명이 아니라 ‘따뜻한 모정(母情)’이었다는 것을… 

 


희망이 꽃피기까지


인옥씨가 서울아산병원에 찾아온 것도 사실은 보라 덕분이었다.

 

“엄마가 아프다는데 대책이 없는 거에요. 저도 알 만큼 알잖아요. 엄마가 치료비를 구하려고 여기저기 알아보고 부탁하고 전화도 하고… 그랬는데… 나중에는… 엄마가 그랬어요. ‘너희 엄마 없으면 어떻게 살래’…”

 

답이 없는 물음에 4시간 동안 울기만 했다는 보라. 하지만 보라는 엄마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고 영리한 아이였다. 수술비를 지원해 줄 수 있는 단체를 찾기 시작했다.

 

돈 없는 거 아니까… 도와줄 사람도 없고… 치료를 지원해 줄 수 있는 기관을 찾아보다 서울아산병원을 알게 됐어요.”

 

겹겹이 쌓이기만 하던 어둠 속에서 찾아낸 한 줄기 빛이었다. 

 

딸이 알려준 정보만을 가지고 서울아산병원에 도착한 인옥씨. 방사선종양학과 김영석 교수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막상 진료가 시작되면 창피해 아무 말도 못 할 것만 같았다. 인옥씨는 김영석 교수에게 자신이 준비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다른 병원에서 자궁암 진단을 받았지만, 진료비가 없어서 치료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제겐 아직 어린 딸이 둘이나 있어요. 전 꼭 살아야 합니다.”

 

평소의 인옥씨였다면 상상도 못할 용기였다. 그만큼 절박했다.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는 김영석 교수가 대답했다.

 

“돈이 없다고 치료를 못 하는 건 아닙니다.”

 

정중하지만 단호한 말투였다.  김영석 교수는 양성은 간호사와 함께 인옥씨를 사회복지팀 박형화 복지사에게 연결해 주었다. 그 이후 박형화 복지사는 친언니처럼 이것저것 조언을 해주며 인옥씨가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수술비까지 아산재단에서 지원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치료받는 동안의 생활비를 걱정하는 인옥씨를 위해 ‘사랑의 리퀘스트’에도 연결해 주었다. 소중한 삶이기에 그들은 조건이나 계산 없이 기댈 수 있는 어깨, 의지할 등을 내어주었다.

 

“살면서 때론 저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고, 투정부리고 싶은 날도 많았어요. 하지만 그럴 수 없었죠.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그런 사람들을 만난 건… 상황은 힘들었지만, 한편으론 행복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또 한 사람. 산부인과 김종혁 교수. 인옥씨는 병동에 입원해 있는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다. 담담하게 병을 받아들이는 사람, 과거를 후회하는 사람, 원망하며 화를 내는 사람… 하지만 그들은 모두 하나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건 바로 이곳에선 나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었다.

 

“2월 5일. 날짜도 잊을 수가 없어요. 학회 간다고 하셨던 분이 새벽에 회진을 돌고 계신 거에요. 환자들 한 번이라도 더 보고 가신다고 출국하는 날 새벽에 병원에 들르셨다고 하더라고요. 가운도 깨끗하게 갈아입으시고… 교수님이 나가신 다음 환자들이 ‘역시 김종혁 교수님이다. 우리가 선생님 정말 잘 만났다.’ 했어요.”

 

그날 김종혁 교수가 환자들에게 보여 준 건 믿음이었다. 환자들을 항상 생각하고 돌보고 있다는 믿음. 그것이 바로 그들에겐 암을 치유할 수 있다는 특별한 희망의 신약이었던 것이다.  

 


봄, 희망은 시작이다


지금까지 서울아산병원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마음속에만 담아두기가 아쉬워 직접 연락했다는 인옥씨.

 

“희망이라는 것은 꽃과 같은 거에요. 꽃도 처음 싹을 틔우기 위해선 누군가 물도 주고 햇볕도 잘 들게 가지도 쳐줘야 하잖아요. 누군가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다가와 주면 겨우내 말라있던 나무에도 싹이 나고 금세 진달래처럼 하얗고 예쁜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희망도 똑같은 거 같아요… 이곳은 고목에 새싹을 돋게 해 주는 곳이에요. 전 이곳에서 희망을 보았어요.”  

 

꽃피는 계절, 봄이다. 희망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눔이란 이름의 아름다운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아산가족 이야기가 봄을 맞아 돋아나는 새순처럼 반갑기만 하다.

 

StorytellingWriter 이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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