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 건강 정보 나는 전설이다 2016.01.26

 

“나가고 싶다는데 왜 못 나가게 해요. 혹시 정 간호사가 일부러 못 나가게 하는 거 아니에요?”


104병동 33호실에서 환자와 간호사 간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쩔쩔매는 1년 차 신규 간호사를 앞에 두고 호통치듯 소리치던 환자가 갑자기 자신의 목에 꽂혀 있던 중심정맥관을 잡았다.


“이거 뺄 겁니다. 진짜 뺍니다.”

 

당황한 간호사가 환자를 말렸다.

 

“안돼요. 위험하세요.”

 

환자는 간호사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튜브를 잡아 들었다. 어쩔 줄 모르던 간호사는 발을 동동 구르다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신장 췌장이식 CNS 정주희 간호사.

올해로 13년 차가 된 전문 간호사에게도 신입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그가 만난 송00씨는 ‘104병동의 전설’이라 불렸다.  

 

 

전설의 시작 


1999년. 그의 20대를 쏟아 부었던 인테리어 사업이 실패하고 말았다. 서른다섯. 아직 젊었다. 재기를 위해 밤낮없이 일에 매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은 다리를 손으로 누르니 마치 메모리폼처럼 쏙 들어가 나오질 않았다. 동네 병원에선 신장기능 이상이라고 했다.

 

스무 살 무렵 진단받은 당뇨 때문이었다. 식이요법으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말만 믿고는 민간요법에 의지해 약을 지어 먹었는데 한 달이 지나자 신장기능이 30% 이하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체중이 10kg가 빠졌다.

 

물 한잔도 마음껏 마실 수가 없었고, 빈혈과 구토증이 매일 그를 괴롭혔다. 혈기왕성하던 남자가 하루 걸러 한 번 혈액 투석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인생이 된 건 한순간이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못했던 모습.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다시 절망으로 


송00씨가 신췌장 이식수술에 대해 알게 된 건 투석을 시작한 지 7개월이 지난 뒤였다. 간절히 기증자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는 운이 좋았다. 대기자 등록 일주일 만에 기증자가 나타났다.

 

2000년 7월 20일. 그는 서울아산병원의 24번째 신췌장 이식자이자, 국내 24번째 신췌장 이식자가 되었다.

 

수술 이후 찾아온 인생은 그야말로 대반전이었다. 투석 받을 필요도 없고, 하루에 세 번씩 맨살을 찌르던 인슐린 주사도 끊었다. 소변이 잘 나오니 물도 마음껏 마실 수가 있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다른 이식 환자들처럼 금세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일 년에 세, 네 차례씩 복통과 염증 등으로 병원을 찾았다. 췌장을 방광에 이식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대사성산증 때문이었다.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찾아온 절망. 그 앞에 두 손을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다.  

 

“삶에 미련이 없었어요.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병원 옥상을 찾아 올라가면 어떻게 알았는지 보안관리팀 직원들이 그를 붙잡아 병동으로 데리고 내려왔다.

양애리 간호사의 기억 속 송00씨는 늘 불안하고 위축된 모습이었다.

 

“세상과 벽을 쌓은 듯 항상 누워 계시거나 모빌 같은 걸 맞추고 계셨어요.”

정주희 간호사 역시 그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잊을 수가 없죠. 병원에서 절 울린 첫 번째 환자셨거든요.”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이 줄어들고 주변에 의지할 일이 많아지자 점점 까다롭고 예민한 환자가 되어갔다. 입, 퇴원을 반복하면서 그는 어느새 104병동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두 번의 눈물 


운동을 자주 해야 한다는 의료진의 말에도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있는 그를 누군가 불렀다. 한덕종 교수였다. 그를 밖으로 불러낸 한 교수는 그의 폴대를 밀며 아무 말 없이 걸었다. 뒤쫓아 병동을 한 바퀴 돌고 나니 그제야 한 교수가 그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돌면 되잖아. 매일 한 바퀴씩 돌아봐요.”

 

누워만 있는 그가 걱정돼 한 교수가 직접 나선 것이었다.

 

‘남도 나를 포기하지 않는데 왜 나는 나를 포기하려 했던 걸까.’

그는 감사하다는 말 대신 눈물을 쏟고 말았다.  

 

항생제 때문에 듬성듬성 빠진 머리가 보기 싫어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고 병동으로 올라온 송00씨를 며칠 뒤, 간호사들이 어디론가 불렀다. 어머니의 부축을 받고 들어간 방에는 104병동 의료진들이 서 있었다. 그에게 용기를 주려고 의료진이 준비한 깜짝 파티였다.

 

“눈물이 나서 한참을 아무 말 못 하고 서 있었어요.”

 

그날 이후,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면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의료진들이 생각나 좀 더 참아보자 다짐했다.

그리고 2005년. 빛이 다시 찾아왔다. 한덕종 교수가 그에게 방광에 이식했던 췌장을 소장으로 옮겨 보자고 했다.

 

외국에 몇 건의 사례가 있지만, 국내에선 처음 시도되는 수술이라고 했다. 그는 의료진을 믿어 보겠다고 말하며 수술에 동의했다. 수술은 대성공이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희망은 반드시 온다


그 후 8년이 지난 2013년 7월, 병원에서 만난 104병동 전설의 주인공, 송00씨는 소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건강한 몸에 밝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재수술 이후에는 한 번도 몸이 아파서 병원을 찾아온 일이 없다고 했다.

 

병원이 집처럼 편하다는 그는 자신이 직접 만들었다는 모형 범선 사진을 보여주었다.

 

“병원에 있으면서 이걸 만들기 시작했어요. 실제 설계도를 보고 완벽하게 재현해 낸 거에요.”

 

그는 휴대폰 문자도 제대로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이 안 좋다. 이 모형 범선을 완성하기까지 무려 3년이 걸렸단다.

 

“손재주는 타고났거든요. 하하”

그는 당당하게 웃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 해외 봉사를 다니고 있어요. 망치와 드라이버를 들고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의 숙소에 모기장도 쳐주고, 교실의 나무 의자도 고쳐주고 있지요. 누군가에 의해 덤으로 얻은 삶, 저도 다른 누군가를 위해 살고 싶어서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도 찾았다.

 

“환자 마음은 환자가 가장 잘 알아요. 이식받는 걸 두려워하거나 이식을 받은 후에도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찾아가 제 이야기를 해 줘요. 참고 견디면 언젠간 나처럼 이렇게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고요.”  

 

삶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일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안다.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긴 터널이라도 그 터널 끝엔 반드시 빛이 있는 것처럼 오랜 기다림이 헛되지 않은 순간은 반드시 온다는 것을. 그 증거인 자신의 삶을 사람들과 나누며 희망을 전하고 있는 송00씨.

 

그렇게 104병동의 또 다른 전설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식받은 지 벌써 13년 됐어요. 앞으로 최장수 생존자로 세계적인 기록을 세우고, 제가 떠날 때는 다른 사람한테 제 신장을 주고 가고 싶어요.”

 

Storytelling Writer  이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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