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하고 183병동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만났던 환자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담낭암을 앓던 환자는 폐쇄성 담관염으로 항생제 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했다. 하지만 질병이 악화되면서 간으로 전이됐고 소생술 거부까지 받아놓은 상태였다.
환자는 성공한 변호사였고 배우자는 환자에 대한 애착이 무척 강했다. 소생술 거부에 동의는 했지만 적극적인 치료로 환자를 살려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환자 상태와 예후에 대한 의사의 판단이 배우자에겐 좀처럼 설득이 되지 않아 갈등을 빚었다. 이를테면 환자는 음식물을 삼키다가 자주 사레들렸고 치료적 금식이 필요했다. 하지만 배우자는 환자가 금식하면 병을 이겨내지 못 할까 봐 못마땅해 했다. 편안히 잠들기도 힘들 정도로 쇠약해진 상태였지만 배우자는 부지런히 환자를 일으켜 침상 운동을 시켰다. 혈소판 수치가 낮아 침상 안정을 권유했지만 하루 두 번 무조건 휠체어에 앉혀 거동시켰다.
배우자의 무리한 요구에 환자의 안전이 걱정됐다. 최대한 환자를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간호했다. 식사 시간에는 환자 옆에서 사레들리지 않도록 교육하며 잘 삼키는지 관찰했다. 환자가 침상 밖으로 나올 땐 이송 직원을 호출해 다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환자는 휠체어로 병동을 한 바퀴 도는 것도 버거워했고 음식물을 삼키기 힘들어 한두 숟가락 뜨다 말았다. 그때마다 환자는 본인의 한계를 느끼며 실망하고 좌절하는 듯했다. 배우자의 뜻대로 해줄 수 없다는 괴로움까지 더해졌다. 그런 환자에게 연민까지 느껴졌다. 진심으로 힘이 되는 간호를 하고 싶었다.
피떡이 져서 말라버린 입안을 신경 써서 간호했다. 시트와 환의는 자주 정돈하고 자세를 자주 바꿔주면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절대 의료진이 환자를 포기한 게 아니란 걸 배우자가 알아주길 바랐다. 간호 하나하나에 마음을 담았다. 늘 바쁜 업무에 허덕였지만 환자 한 명 더 신경 쓴다고 특별히 힘들 것도 없었다. 진심이 담겨서인지 환자와 함께 하는 순간마다 정말 좋았다.
어느새 내 마음이 환자와 보호자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담당 간호사로 병실에 들어가자 나를 기억해주었고, 의식이 점차 희미해지며 전신의 컨디션이 저하된 상태에서도 내 목소리가 들리면 눈을 떴다. 그리고 이름을 부르며 반가워했다. “조하나 선생님!” 배우자는 “나한테 기운 없다고 한마디도 안 하더니 조하나 선생님은 빼놓지 않고 부르네?”라고 말하면서도 남편이 이렇게까지 따르는 간호사가 있어서 병원 생활에 힘이 되는 것 같다며 고마워했다. 환자도 배우자도 점점 더 나를 진심으로 대했다. 늘 예민한 감시자 같던 배우자의 큰 변화였다.
며칠 후 환자의 병실에 들어갔을 때 환자가 몇 권 만들지 않은 자신의 자서전을 전해주었다. 말할 기운조차 없는 환자가 직접 떨리는 손으로 삐뚤거리며 책 한 켠에 ‘조하나 간호사님 감사합니다. 000 드림’이라고 적었다. 나 역시 환자에게 위로 받는 그 순간, 내 가치 있는 직업이 정말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동안 간호사로 일하며 힘들었던 지난 시간까지 모두 보상받는 듯했다.
“고맙습니다.” 간호사로 가장 많이 듣는 말일 것이다. 항상 내게 고마워해주는 환자가 있어 정말 감사하다. 우리의 사랑보다 더 큰 것으로 돌려주는 환자들 덕분에 나는 오늘도 행복한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