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교수가 만나는 환자의 90% 이상이 유방암 환자이다. 수술 전후 보조치료를 위해 오는 환자들도 있지만, 유방암이 재발하여
항암 치료를 받는 중증 환자도 적지 않다.
유방암은 암 중에서도 유독 ‘완치’라는 판정에 야박하다. 보통 암 수술 후 5년 내 재발이 없다면 ‘완치’로 보지만 유방암의 경우는
다르다. 수술 후 5~10년 길게는 20~30년이 지난 후에도 재발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방암 환자를 또 다르게 힘들게 하는 것은 ‘여자라서’ 이다.
“위나 장, 폐를 절제수술 하게 되면 기능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수유하는 여성을 제외하고 유방 절제는 수술 후
기능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아요. 최근에는 유방 복원 수술도 많이 하지만, 여자이기 때문에 여전히 유방절제는 힘든 부분이 있죠.
환갑이 넘은 환자라도 여자 마음속에는 ‘소녀’가 살고 있잖아요.”
유방암 발병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40대 후반~50대 초반의 여성이다. 아내로 또 엄마로서 역할이 큰 시기이기도 하지만 안으로는
갱년기가 시작되는 나이인데 항암 치료로 그 시기가 당겨지기도 한다. 아내뿐 아니라 남편에게도 힘든 시간이 될 수 있다.
“남편에게는 ‘부인이 앞으로 머리카락도 나고 피부색도 돌아오겠지만, 수술 전과 같을 순 없어요. 남편이 더 이해해 줘야 합니다’
반면 환자에게는 그러죠. ‘수술하고 항암 치료하는 동안 남편도 큰 희생을 하며 옆에서 많이 참아줬어요. 하지만 그렇게 해주길 계속
기대하면 남편도 버틸 수 없어요.’ ”
양쪽 모두에게 냉정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가정의 유지가 환자에게 얼마나 큰 안정을 주는지 알기에 정 교수는 정해진 외래시간을
넘기면서도 빼놓지 않는 당부의 말이다.
정 교수는 전문의가 된 후 아파서 일도 못 하고 수술을 받아야 했던 적이 있었다.
암처럼 큰 병은 아니었지만 일을 1년 정도 쉬어야 했다.
“수술 후 겉의 상처는 아물었어도 돌아눕는 동작에도 ‘악’ 소리가 절로 날만큼
고통스러웠죠. 그런데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 하시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죠. 아, 의사의 ‘괜찮다’와 환자의 ‘괜찮다’는 다른 의미구나.”
사실 수술이 잘되었다고 해서 병이 단숨에 씻은 듯이 낫는 건 아니다. 환자는 더
예민하고 세심하게 자신의 몸을 느낀다. 정 교수는 그때 콧줄과 소변줄도 껴보고,
팔에 혈관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링거 주사도 맞아본 경험들이 있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단다.
최소한 환자들이 불편하고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 어떤 고통인지 짐작하고
공감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감만큼 중요한 건 환자의 상태가 좋아지는 겁니다. 재발한 유방암이
완치되지 않더라도 힘든 치료로 병이 호전되면 환자의 고통은 그만큼 줄어들죠.
그럼 환자는 더 힘을 내어 치료를 받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더
가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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