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의술과 기술의 접점에서 2020.10.16

의술과 기술의 접점에서 - 마취통증의학과 김성훈 교수

 

지난 6월 연구중심병원 육성 연구개발 사업의 연구책임자로 발표에 나섰다. 이제까지 책임교수의 평균 나이는
58세. 김성훈 교수와 같은 40대가 나선 전례는 없었다. 부담이 큰 도전이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준비한 만큼
자신감이 차올랐다. “제 모든 걸 쏟아붓겠습니다.” 논문과 특허에 그치지 않고 현장에 도입될 결과물까지
내놓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아버지의 유산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주중엔 모형 비행기를 만들고 주말엔 들판에서 비행기를 날리곤 했다. 현대중공업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던
아버지는 방 한 칸에 각종 공구와 장비를 잔뜩 구비해 놓았다. 공학도를 넘어 요즘 말로 ‘덕후’였다. 아들의 의대 입학조차 아버지는
달가워하지 않았다.

“네가 세상을 바꾸는 엔지니어가 될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아버지의 반응에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도대체 왜 아버지는
공학밖에 모를까? 대체 뭘 바꿀 수 있다는 거지?’


전공 특성상 환자가 수술을 받는 동안 환자감시장치 모니터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눈앞의 기기 대부분이 외국계 회사의
제품이라는 것에 의문이 들었다.

“아버지가 그토록 자긍심을 갖던 국내 기술로 소화할 수 있는 것이어서 더욱 이상하게 보였죠. 그제야 딱히 떠오르는 국내 의료기기
회사가 없다는 걸 인지하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의공학연구소를 기웃거렸죠(웃음).”


연구에 필요한 기초체력을 다져나갔다. 머지않은 데이터 과학의 시대를 능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해 정보통계학과에 편입했다.
일과 학업을 병행하느라 2년 과정을 3년 반에 걸쳐 마쳤다. 또 R&D사업실에 합류해 특허 리뷰와 기술이전 과정을 들여다보며
기술사업화의 현주소를 파악했다. IT 스터디 그룹에 꾸준히 참석하고 작년에는 미국 버지니아대 데이터사이언스센터에서 연수하며
네트워크를 쌓았다.

“제 연구가 의공학 분야에 밀접해졌어요. 주변 연구자도 공학자들로 채워졌고요. 참 신기하죠? 이해할 수 없던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잖아요!”

 

확장되는 아이디어

 

수술실은 일상적인 업무 현장이지만 아이디어 창고이기도 하다. 반복된 불편은
연구 주제가 된다. 그리고 대안을 개발해야 연구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마취통증의학과는 환자의 혈압, 심박, 체온 등 생체지표 관리에 민감하다.
김 교수는 목표 기준에 대비한 객관적인 데이터를 찾기 시작했다. 그 연구 결과가
수술실과 중환자실의 모든 기기를 연동해 활력 징후를 저장하고 위험 요인을
예측하는 생체 신호 데이터 종합 플랫폼이다.

“작년까지 수기로 적어 의무기록실에 보관하던 것을 이제는 클릭 한 번으로 모든
기록과 통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구상한 효율적인 관리뿐 아니라 환자
리뷰나 병원 간 협진, 의료의 질 제고에 요긴하죠. 사실 환자의 생체 신호를
정량화하는 기술 자체가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병원의 풍부한 진료
경험과 인사이트를 녹여 환자 안전을 높이고 더욱 큰 부가가치를 만들 토대가
될 거라 믿습니다.”


스무 명 남짓의 간호사가 수시로 수술실의 손위생을 감시하는 것을 보며 시작된
연구도 있다. 노동력 투입 대비 지속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였다.
 

 

“특정 동작을 감지해 알람이 울리는 모션 카메라를 개발해 왔습니다. 갑작스러운 코로나19 사태로 손위생이 중요해지면서 준비된
기술을 발 빠르게 활용할 수 있었죠.”

 

 

실패와 친할수록

얼마 전까지 환자 안전 담당 업무를 맡았다. 100여 명의 마취통증의학과 의료진과 하루 300여 건의 수술 사이에서 환자 안전
시스템을 점검했다.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 직원과 인터뷰하면서 말이다.

“낯설고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어요. 그렇지만 필요성을 느끼던 일이라 해보기로 마음먹었죠. 그때 쌓은 환자 안전에 대한 전문성이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이번 연구중심병원 과제의 주제가 ‘환자 안전’이거든요. 무의미한 경험은 없다는 걸 또 한 번 깨달았습니다.”


책상 앞에 붙여놓을 만큼 정주영 설립자의 메시지를 좋아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투지를 가지고 도전하라는 메시지가 멋져요. 일단 해보라는 거죠. 연구나 사업을 진행하다 보면 계속 방향이 바뀌고 불확실성 때문에
노심초사합니다. 그렇지만 실패와 친할수록 성공에 더 빨리 도착하겠죠.”


연구중심병원 과제에 선정된 후 젊은 의학자들과 연구 셋업에 한창이다. 의료 인공지능이나 사물인터넷에 친근한 세대가 공학자와
소통하며 의료 현장에 적용될 기술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갈 계획이다.

“아버지의 기술과 저의 의술이 만날 때인 것 같습니다. 모래알처럼 흩어진 걸 큰 그릇에 담아 다음 단계로 점프하는 게 이번 과제의
목표입니다.”

 

도대체 뭘 바꿀 수 있을까. 오래전 아버지에게서 시작된 질문에 그가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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