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김혜리 교수가 전공의 시절만 해도 소아 백혈병이라고 하면 치료를 포기하고 퇴원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김 교수는
당시 막 활발하게 시작되던 분자유전, 유전체 연구에 주목했다. 앞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확신을 가졌고, 소아종양혈액과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확신은 틀리지 않았다.
“진단을 받고 절망하셨던 부모님도 완치율을 듣고 놀라시는 경우가 많아요. 완치율이 평균 80%에 이르기 때문이죠. 특히 최근에는
면역 세포 치료 약제나 유전자 치료 등을 통해 더 많은 환자가 생존하고 있습니다. 조혈모세포 이식 기술의 발전도 기여했고요. 특히
소아 림프구성 백혈병의 경우 평균 90%가 생존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성인의 암과 달리 소아 백혈병은 좋은 치료제가 매우 귀하다. 환자가 많지 않아 새로운 약물을 개발하려는 회사가 적고, 임상시험도
많이 열리지 않아서 소아에서 승인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천신만고 끝에 좋은 신약이 나왔다고 해도 그림의 떡이다. 바로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한 사이클(한 달) 치료에 억 단위의 돈이 필요한 탓이다. 김 교수는 좋은 신약으로 부작용 없이 더 많은
아이를 살릴 수 있도록 사회적인 관심과 지원을 당부했다.
현재 국내에 소아백혈병을 앓는 환자는 약 1만 명. 연간 약 400명의 소아에게서
백혈병이 새로 발병하고 환자의 80% 이상이 생존한다. 이대로라면 10년 후에는
전체 인구의 1,000명 중 1명은 소아암 완치자가 된다. 소아 혈액암 치료의 목표를
완치만이 아닌, 환자의 삶 전반을 관리하는 토탈케어에 두어야 하는 이유다.
“완치된 아이가 학교로 잘 복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 부작용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어릴 때 항암치료를 받은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 암에 걸릴
위험과 성인병에 걸릴 위험이 높고, 생식에 문제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환자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때까지는 완치자 클리닉에서 합병증이 생기지
않도록 계속해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중환자실 못지않게 병동에 중환자도 많고, 장기간 입원 중인 아이들도 많아서 매
순간이 고비인 소아종양혈액과. 하지만 그 과정에서 환자, 보호자와 끈끈한 애착이
생긴다고. 김 교수는 그런 유대관계가 참 좋다고 말한다. 외래에 올 때마다 조금씩
건강히 커나가면서 대학가고, 취직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안고 오는 환자를 보며
김 교수는 소아종양혈액과야 말로 환자의 생로병사를 함께 할 수 있는 축복받은
과라는 생각을 한다.
어른들도 버티기 힘들어하는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는 아이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소아는 성인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같은
치료를 해도 성인보다 잘 견디고 회복도 빠르다. 김 교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척박한 땅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들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들꽃은 결코 자신의 자리를 선택하는 법 없이 스스로 자란다.
“급성 림프모구 백혈병의 완치율을 더 끌어올리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완치율이 이미 90%인데 조금 더 끌어 올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저는 어딘가에서 눈물 흘리고 있을 10%를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90%가 100%가
될 때까지 연구를 계속해 나갈 겁니다.”
관련 의료진
연관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