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환자 내면의 정답을 찾아서 2018.11.09

환자 내면의 정답을 찾아서 - 정신건강의학과 신용욱 교수

 

“저는 가만 있을 겁니다. 내담자가 이야기를 시작하시면 됩니다.”
스트레스심리상담센터의 방 안. 상담이 시작되고 정신건강의학과 신용욱 교수는 내담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나
고민을 속으로 삼키지 않도록 차분히 기다렸다. 일반적인 날씨나 안부조차 먼저 건네지 않았다. 대신 내담자의
표정이나 태도, 말을 꺼내기까지의 시간 등을 세심히 관찰했다. 환자의 모든 것이 그에겐 치료의 단서였다.


심리학에 빠진 물리학도

물리학을 전공하던 신용욱 교수는 대학교 2학년 때 칼 구스타브 융의 분석심리학에 빠져들었다. “맞아, 맞아!”를 반복하며 책장을
넘기다 보니 어느새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꿈꾸게 되었다. 과감히 자퇴하고 다시 의대에 입학했다.

“물리학도 적성에 잘 맞아 딱히 옮겨야 할 이유는 없었어요. 아마 물리학과 심리학의 비슷한 점에 끌렸던 것 같아요. 물리는 외부 현상
이면의 법칙을 찾는 거라면 심리는 사람의 행동 이면에 담긴 원인을 찾습니다. 대상이 외부 세계냐 마음 내부냐의 차이일 뿐이죠.”


‘사람의 마음이란 뭘까. 왜 이렇게 행동할까’에 대한 과학적 호기심으로 출발한 그는 몸의 생체신호를 분석하거나 행동 데이터를
수치화하여 추상적인 의미를 뽑아내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사람의 선택과 행동을 최대한 예측하려는 것이다. 2년 전 해외 연수
때에도 의대가 아닌 심리학과에서 뇌과학을 연구했다.

“정신의학은 아직 아는 게 별로 없는 분야입니다. 몸과 마음, 정신 사이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이나 갈등이 명확하지 않아 기발한 연구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어렵죠. 신경과학이나 생물학 등의 전반적인 지식 수준이 발전해야 구체적인 힌트도 나올 테고요. 연구 중엔 왜
하는지 목적조차 불분명했지만 시간이 흐른 뒤 그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작고도 큰 깨달음

 

10년 전, 근무하던 병원을 본의 아니게 그만두었을 때다. 내과 의사인 아내의
해외 연수에 따라 나섰다.

낯선 땅에서 3개월간 집에만 있다 보니 주부우울증이라도 걸린 듯 했다. 일자리를
수소문했고 열심히 준비한 끝에 인디아나 의과대학의 방문교수 자리를 얻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언어에 대한 부담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환자 이야기에
끼어들 여유도 없이 주의 깊게 듣고 곱씹었다. 퇴근해서도 그의 머릿속은 병원
안에 머물렀다. 신중한 그에게 환자들은 점차 신뢰를 느끼는 듯 했다. 그를 찾는
환자도 많아졌다.

이를 통해 정신 치료의 첫 단추는 환자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임을 깨달았다.
1년 3개월의 값진 경험을 한 후, 우리 병원의 제안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신 교수는 상담 중에 내담자의 꿈을 통해 마음의 이면을 더듬어 나간다. 꿈에 나온
단서들에 대해 질문하다 보면 내담자는 깊은 무의식과 가야 할 방향을 자각했다.

 

“해몽이나 일반 상담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제가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정신의학에선 스스로 정답을 알고 있다는 전제가
기본이거든요. 그래서 치료사라면 자신의 선입견이나 콤플렉스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치료사의 편협한 시각으로 해결하려다 보면
환자가 잘못된 답으로 향하기 마련이죠. 제가 만난 환자 중에도 초보 상담가에게 상담을 받으며 점차 엄마를 미워하고 상담가를
의지하게 된 분이 있었습니다. 아마 상담가가 엄마에 대해 해결되지 않은 자신의 문제를 내담자에게 투영했던 것 같습니다. 특별히
경계해야 할 부분이죠.”

 

100명의 환자, 100개의 처방

“우리 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엔 정상인만 보는 의사 한 명이 있다고 전해주세요.”

다른 과 환자 중에 정신 상담이 필요한데도 편견 때문에 치료를 거부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신 교수는 이렇게 대답한다. 실제로 그의
환자들은 정상 범주 내에서 스트레스와 환경 문제로 우울증이나 장애를 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기 분야에선 성공했지만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해 오는 환자도 많다.

“정신 건강은 모두 비밀스럽게 여기죠. 꾸준한 치료로 완쾌된 케이스는 많습니다. 환자 본인이 회복을 감지하고 저에게 치료 중지
시점을 논의하는 걸요.” 그렇다면 정상 범주의 사람이 굳이 정신을 분석하고 치료받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 “칼 융이 이렇게
설명하더군요. 인생엔 수시로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내립니다. 버티기 힘들죠. 정신 치료는 높은 능선을 타고 정상으로 올라가게 하는
과정입니다. 그 위에도 천둥번개는 치고 비는 내리지만 밑을 조망하는 여유가 생기면 이전과 분명 다르다는 거죠. 내가 몰랐던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을 볼 수 있다면 삶의 지평도 달라집니다.”


마지막으로 정신 건강에 요긴한 팁을 물었다.

“그런 건 없습니다. 자신의 균형감각을 찾아야 해요. 흔히 운동을 꼽기도 하지만 모든 유형에 해당되는 건 아니니까요. 저는 내성적인 성향으로 늘 사람과 대면하는 일을 하다 보니 새벽 명상이 훨씬 효과적이에요. 반면 내성적이더라도 혼자 생활하는 환경이라면 명상은 별 의미가 없을 거예요.”


그러면서 그의 방에 걸린 그림을 가리켰다. 오래 전 그림을 그리며 안정을 찾아나간 내담자가 건넨
결과물이었다. 100명의 환자에게 100개의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고 믿는 신용욱 교수. 그는 100개의 마음을
신중히 더듬는 치료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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