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삶을 되찾는 결정적 순간에 끌리다 2023.12.01

중환자·외상외과 이학재 교수

 

 

이학재 교수는 중환자들의 생사가 걸린 고비에서 어려운 줄다리기를 이어간다. 승부의 목표는 환자를 가족의 품으로 무사히 돌려보내는 것이다. “제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아버지가 위암에 걸리셨어요. 30대 초반의 가장이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하는 심정이 절박하셨을 거예요. 다행히 좋은 의료진을 만나 완치된 이후, 제게 의사가 되면 아버지 같은 환자들을 살릴 수 있다고 누누이 말씀하셨어요. 아버지의 오랜 기도 대로 환자분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때 보람을 느끼며 일하고 있습니다.”

 

환자 곁을 지켜라

외과 의사를 꿈꾸던 이학재 교수는 서울아산병원에 지원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전공의로 근무하면서 초응급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흥미를 느꼈다. 외과는 전문 영역이 점점 세분화되지만 중환자·외상외과는 전신의 수술과 내과적인 부분을 모두 알아야 하는 분야여서다. “수술 후 합병증이 생긴 외과계 중환자, 외상 응급수술이 필요한 환자, 급성 복증 환자 등은 누군가 병원에 상주하면서 적절한 치료를 해야 합니다. 급박한 상황에서 어떤 조처를 하느냐에 따라 생사가 달라질 수 있거든요. 급성기 환자에게 제가 즉시 무언가 해줄 수 있다는 점에 끌렸습니다.”

중환자 치료에 적응하던 시기에 위막성 대장염으로 인한 패혈성 쇼크가 심하게 온 환자를 만났다.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48시간을 꼬박 환자 곁에서 보낸 경험은 중환자 치료의 정수를 알려주었다. “환자 옆에 있으면 상황을 바꿀 기회도 온다는 걸 실감한 게 큰 자산이 됐어요. 후배들에게도 모니터의 수치만 보며 처방하지 말고 환자 옆에서 직접 보라고 주문합니다. 환자의 사소한 행동이나 활력징후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거든요. 그러면 환자 상태를 예측해서 더 빠른 판단과 대처도 내릴 수 있죠.”

 

급하게 가지 않는다

심부경부감염이 심하게 진행되면서 종격동염으로 번진 환자가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치료가 어려워 우리 병원으로 온 터였다. 심장혈관흉부외과 이근동 교수가 여러 차례 수술을 진행하고 이 교수는 4개월간 중환자 치료를 이어갔다. 폐렴이나 감염 등의 2차 관리까지 세세하게 하려면 많은 인내심이 필요했다. 오랜 치료 기간에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자 이쯤에서 환자를 보내주는 게 맞을지 고민이 커졌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치료를 끌고 간 끝에 환자는 회복했고 외래에 걸어서 들어올 수 있었다. “경험이 부족할 때는 환자를 빨리 회복시켜서 병동에 올려보내고 싶은 열망이 앞섰어요. 그런 마음으로 치료를 끌고 가면 환자가 먼저 지쳐 쓰러진다는 걸 차츰 알게 됐죠. 제가 중심을 잡고 환자가 따라올 수 있는 속도에 맞춰가는 게 중요해요. 조급할 수밖에 없는 환자 가족에게 항상 이 점을 미리 설명합니다.”

다른 과와의 협업이 많아 원활한 의사소통이 필수다. 수술하는 입장과 후속 조치를 이어가는 입장 차이는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시 수술해야 할지, 일단 지켜봐야 할지 수시로 상의하고 설득하며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가고 있다. “외과 의료진이 중환자·외상외과의 치료 경험과 의견을 믿고 따라줄 때 많은 책임감이 듭니다. 제가 있으면 안심할 수 있다는 동료들의 이야기가 감사하기도 하고요. 의료진과 믿음을 주고받으며 매일 새로운 동기부여를 얻습니다.”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이 교수는 최근 중환자 재활 치료에 관심을 쏟고 있다. 각종 의료 장비와 연결된 상태로 환자는 물리치료사와 간호사의 도움을 받으며 걷거나 서고, 앉는 간단한 재활 프로그램을 수행한다. “중환자가 24시간 누워 있다 보면 하루에 2%씩 근력이 약해집니다. 근육을 움직여 주면 근력 손실뿐 아니라 우울감이나 섬망 예방 효과가 있죠. 환자들이 일상생활로 돌아갔을 때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낮에는 재활하고 밤에는 중환자실의 전등을 꺼서 수면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간단한 조치도 중환자에겐 도움이 되죠.”

경험과 가이드라인이 많이 쌓였지만 점차 환자들이 고령화되고 중증도가 높아지면서 치료가 수월하지만은 않다. “내가 잘못하면 환자가 위험할 수 있다는 긴장감이 늘 따릅니다. 열정과 애정을 쏟은 환자에게 좋지 않은 결과가 닥쳤을 때 힘든 감정을 빨리 털어내는 것도 중요하고요. 제가 먼저 소진되지 않기 위해 환자들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고비를 무사히 넘긴 환자가 건강한 모습으로 외래에 오면 무장해제가 되죠.(웃음)” 환자 가족의 절박한 애원과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오랜 기도에 응답하듯이 이 교수는 묵묵히 환자 곁을 지킨다. 어떤 결과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매 순간 최선을 다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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