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뉴스룸 칼럼 [네, 인턴입니다!] 지원서의 계절 2023.12.12

 

“선생님은 무슨 과 지원하실 거에요?”

 

선선한 바람이 불 즈음부터는 이 질문을 “식사는 하셨어요?” “어젯밤 잘 주무셨나요?” 등의 인사보다 자주 듣게 된다. 인턴 과정을 마지막으로 수련을 마치겠다는 인턴은 별로 없다. 인턴을 거치며 추가 수련을 받지 않겠다고 마음먹는 경우도 있지만 전공의(레지던트) 수련을 받아 전문의가 되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졸업할 때부터 특정 진료과에 가겠다는 뜻을 가진 사람도 있고 인턴 과정을 거치며 다양한 과를 경험해보고 선택하겠다는 사람도 있다. 인턴을 거치며 스스로가 선호하는 혹은 선호하지 않는 환경을 알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후자도 나름 합리적인 대안이다. 한 해가 끝나가는 지금, 대부분의 인턴이 지원할 진료과를 정했거나 이미 지원 의사를 밝힌 상태다.

 

서울아산병원의 전공의 선발은 필기시험, 인턴 근무성적, 면접, 의과대학 성적 등을 합산해 이루어진다. 인턴 근무성적은 11월까지 매달 부여되며, 필기시험과 면접은 진료과별로 차이가 있지만 12월 중하순에 이루어진다. 진료과를 불문하고 의사는 환자를 위한다는 대의는 같지만, 수행하는 역할과 살아가는 삶이 사실상 다른 직업이라고 보아도 될 정도로 진료과마다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 모든 인턴의 선택이 신중해지고, 경쟁이 높은 진료과에 지원하는 경우 필기시험, 근무평가, 면접에서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임상실습을 돌던 중 교수님께 “우리 과가 어떤 과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을 들은 적이 있다. 이론 수업을 들으며 배운 내용과 한 주간 참관한 것들을 떠올려 나름의 대답을 내놓고는 잘 모르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이 과 전문의로 10년을 넘게 일했지만 아직도 우리 과가 무슨 과인지 잘 모르겠다. 네가 알면 그게 더 이상하다.” 본인이 지원하는 진료과에 관해 완벽한 지식을 가지고 지원하는 인턴은 없다. 해당과 의사로 수십년을 봉직했는데도 그 진료과에 대해 다 알지 못하는데 인턴이 무슨 수로 다 알고 지원하겠는가?

 

진학할 대학을 고민하던 학창 시절을 되돌아봤다. 필자 앞에는 여러 선택지가 놓여 있었고 각각의 진로를 선택했을 때 기다릴 다양한 미래를 두고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나의 가치관, 보고 들은 이야기, 그 길을 앞서간 선배들의 조언 등을 참고했고, 고심 끝에 필자가 가장 매력적으로 느꼈던 의과대학에 지원했다. 그렇게 입학한 의과대학 생활과 1년 남짓 되어가는 의사의 삶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멋지고 매력적이었지만, 그 이유는 7년 전의 필자가 생각했던 것들과는 달랐다.

 

인턴 과정이 마무리되어가는 지금, 누군가가 필자에게 “의대생의 삶은 어떤가?” 또는 “인턴의 삶은 어떤가?”라고 묻는다면, 쉽게 단정적인 대답을 내놓지 못할 것 같다. 단지 “내가 겪은 이야기는 이러이러했고 좋았던 날도 있었고 힘든 날도 있었다” 정도의 말밖에 하지 못할 것이다. 지면을 통해 나누었던 인턴의 생활도 필자가 보고 들은 한 해를 담았을 뿐이지, 2023년 동안 펼쳐진 인턴의사들의 이야기는 올해 선발된 3,258명 각자의 삶만큼이나 다양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과를 선택하더라도 그 결과가 예상한 것과 완전히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를 포함한 동료 인턴들은 학생 시절에 배운 것들, 인턴을 거치며 경험한 것들, 책과 미디어, 선배들에게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각자의 최선을 선택하고 있다. 요즈음 인턴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싱숭생숭한 분위기는 이와 무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필자는 정신건강의학과에 지원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학교에서 훌륭한 스승들께 배우며 길을 앞서간 선배들에게 정신건강의학과 수련에 대해 들을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었고, 선택의 결과에 대해 더 정확한 예측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내가 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환자의 말을 마지막까지 들으며 중요한 부분을 찾아 내는 사람이었다. 환자의 잘못된 인식을 찾아 교정해주며 스스로와 소중한 사람들에게 위험한 선택을 하려는 환자를 막기도 했고, 알쏭달쏭한 주 호소 증상을 파헤쳐 환자와 함께 문제를 발견해 해결 방안을 고민하기도 했다.

 

내가 알지 못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부분도 있을 테지만 지금까지 알게 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직무는 나와 잘 맞는 일인 동시에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수련을 통해 환자와 함께 걸으며 환자의 삶을 응원할 수 있는 의사가 되기를 희망한다.

 

2023년 3월 시작된 서울아산병원 인턴 근무는 2024년 2월 말에 끝난다. 누군가는 명찰에 진료과명이 붙을 것이고, 누군가는 다른 근무복으로 갈아입을 것이며, 누군가는 가운을 벗고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다른 길로 나아갈 것이다. 이는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다. 합격하는 사람이 특별히 잘난 것도 아니고 불합격한 사람이 못난 것도 아니다. 잘 맞는 옷을 찾은 사람과 더 잘 맞는 옷을 찾을 사람이 있을 뿐이다.

 

함께 고생한 나의 동료 모두가 잘 맞는 옷으로 갈아입는 2024년이 되기를 기원한다.

 

교육수련실
윤성민 인턴

윤성민 인턴은 울산의대 졸업 후 2023년 3월부터 서울아산병원에서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매달 여러 진료과를 경험하며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느낍니다. 아직 경험은 부족하지만 환자와 동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의료인이 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2022년 1기 필진으로 활동하며 [의대생의 독서일기]를 연재하였으며, 금년 2기 필진에도 선정되어 초보의사의 성장기 [네, 인턴입니다]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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