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뉴스룸 칼럼 [신생아중환자실 에세이] 측은함으로부터 시작되는 간호 2024.02.08

 

조건없는 사랑의 형태 ‘측은함’

‘환아의 임종경험’을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는 동료 간호사의 인터뷰를 도와준 적이 있다. 인터뷰가 마무리될 무렵 “선생님은 임종과정에 있는 아이들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드세요?”라는 질문을 받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불쌍해...” 내 대답에 동료 간호사는 놀라는 표정이었다. 인터뷰를 진행했던 동료 간호사들 모두 하나같이 같은 대답을 했다고 내게 말했다.

 

아이는 세상에 태어난 것도, 아픔을 가지고 태어난 것도, 수많은 병원들 중 이곳 서울아산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 온 것도 환아들은 생과 사의 경계에서 그 어느 것도 스스로 선택한 것이 없다. 환아의 부모는 출산한 지 이틀밖에 되지않아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아이 앞에 선다. 나는 아픈 아이 앞에서 ‘왜 나에겐 불행한 일만 생길까’ 자책하며 눈물을 흘리는 부모의 모습을 지켜본다. 그 순간 내 마음에서 동하는 안타깝고 측은한 감정이 내가 경험하지 못한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공감하고 위로한다.

 

직업적 소명감, 커리어, 월급 등 우리를 일하게 만드는 요인은 복합적이다. 그중 나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원초적인 감정은 ‘측은함’이다.

* 측은하다 : 가엽고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이 단어가 가지고 있는 사전적 의미는 분명 긍정적이진 않다. 하지만 측은함이 나를 움직이게 하고 진심으로 아이들을 대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긍정적인 단어임이 분명하다. 환아를 간호하며 느끼는 책임감, 환아의 가족들에 대한 응원의 마음, 이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측은함의 감정이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작은 불씨가 되어 그들에게 내미는 눈빛과 손길에 온기를 더한다. ‘측은함’은 이곳 신생아중환자실에서 겪은 가장 헌신적이고, 조건없는 사랑의 형태이다.

 

 

서로가 서로의 치유자가 되어

돌이켜 보면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내 일상과 일이 분리가 되지 않았을 때였다. 돌보던 환아가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고, 컨디션이 돌아오는 것을 보지 못한 채 퇴근하는 날에는 모바일 전산프로그램으로 아기의 상태를 수시로 들여다 보느라 온전한 휴식을 가지지 못했다. 

 

내 작은 실수가 이 작은 아기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에 몸집이 손바닥 만한 아기를 돌볼 땐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인큐베이터 문을 열었고, 손이 덜덜 떨리기도 했다. 일반 회사처럼 뒷수습이 가능한 실수들이면 좋으련만 생명을 다루는 직업 특성상 ‘두 번의 기회는 없다’는 사실에 남다른 책임감이 항상 어깨를 짓눌렀다.

 

인공호흡기에 온전히 몸을 맡기고 있던 어제의 아기가 오늘은 인공호흡기를 뽑아달라고 온힘을 다해 울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순간 아이는 나의 생각보다 훨씬 강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안아달라고 우는 모습을 보며 지난밤의 걱정들은 불필요하고 나를 소진시키는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뒤를 이어 아이를 정성으로 간호하는 나의 동료들이 있구나, 나보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아이를 위해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고 있는 엄마 아빠가 있구나.’

 

환아의 상태가 악화되어 분주한 8시간을 보냈던 날 가장 위로가 되었던 것은 동료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들이 내게 건네준 말 한 마디였다.

“선생님 오늘 많이 힘들었겠어요. 너무 고생 많았어요. 얼른 집에가서 쉬세요.”

같은 목표를 가진 우리는 격려의 말을 건네며,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고 응원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서로의 치유자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

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

- ‘겨울사랑’ 중 / 박노해

 

어린이병원간호팀
천유진 주임

어린이병원간호팀 천유진 주임은 2017년 서울아산병원에 입사해 신생아중환자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작고 여린 아기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부모님 품에 돌아갈 수 있도록 사랑을 듬뿍 담아 간호하고 있습니다. 신생아중환자실에서 겪는 기쁨과 슬픔, 그리고 성장의 이야기를 들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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