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환자 이야기 엄마도 이제 웃을 수 있어: 카자흐스탄 환아와 송상훈 교수 스토리 2024.02.16

 

 

딸 아이게림(6)을 수술실에 들여보내고 혼자서 안절부절못했다. 안이 춥거나 너무 아프면 어떡하지. 수술 결과를 의심하진 않지만 기다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수술은 끝났어? 애는 어떻대?” 남편에게서 몇 분 간격으로 계속 전화가 왔다. 중복 신장 치료를 위해 카자흐스탄에서 딸과 둘만 온 터라 고국에 있는 가족들은 이곳 소식만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좀 기다려 봐!” 3시간이 지나 교수님께 수술 결과를 듣자마자 남편에게 전화했다. “이제 마음 편히 자도 돼!” 가족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딸의 치료도, 엄마로서 느끼는 죄책감도 드디어 끝이 보였다.

 

엄마가 미안해

출산 후 두 달쯤 지나 아이게림에게 요실금이 있는 걸 알았다. ‘임신 기간에 뭘 잘못 했을까?’ 모든 게 엄마의 잘못인 것 같았다. 아직 아이가 어리니까 조금 더 지켜보자는 의사의 말이 무책임하게 들렸다. 요실금 때문에 백혈구 수치도 높았다. 처방받은 약물이 아이에겐 무리였던 듯 몸무게가 조금씩 줄기 시작했다.

 

정확한 진단과 치료법을 듣고 싶어 여러 병원과 진료과를 전전했다. 아이게림이 3살이 되어서야 요실금이 중복 신장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두 번째 요관이 정확히 어디로 나오는지, 소변이 왜 새는지는 수술을 해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구조적인 문제라면 나중에 아이게림이 아이는 낳을 수 있을지 불행한 상상과 불안이 이어졌다. “수술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그런데 수술하더라도 요실금이 없어질 확률은 50%입니다.” 마지막 병원이라고 생각한 대형 병원에서도 아이게림과 같은 케이스는 흔치 않아 수술 경험이 많지 않다고 했다. 남편과 해외 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말을 꺼내진 않았지만 우리는 같은 마음이었다. 얼마의 돈과 시간이 들어도 상관없다고. 

 

못 말리는 내 딸

독일과 한국, 튀르키예의 병원에 문의했다. 한국에서 치료받기로 마음을 굳히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사이,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렸다. 치료 계획이 기약 없이 보류되는 사이에도 딸의 일상은 계속되어야 했다.

유치원에 처음 등록하던 날, 선생님께 하루 2번 아이게림의 패드를 교환해 달라고 부탁했다. 선생님의 꺼림직한 표정이 읽혔다. 감염 가능성이 없다는 병원의 확인서부터 받아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연히 그래야겠지’ 하면서도 서러운 눈물이 쏟아졌다.

 

다행히 어린 딸의 천진난만함에 마음의 고통은 길지 않았다. 아이게림은 자신의 질병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늘 밝은 기운을 뽐냈다.

두툼한 패드가 잘 드러나지 않도록 늘 풍성한 치마를 입히는 것이 마음에 걸려 “곧 한국에 가서 수술받게 되면 네가 입고 싶은 옷을 마음껏 입을 수 있어!”라고 진지하게 이야기하면 아이게림은 “엄마, 한국은 어떤 나라야? 너무 궁금해!”라며 또 다른 질문을 이어갔다. 나는 답을 찾으면서 기분 좋게 아이가 안내하는 길을 따랐다.

 

달라도 너무 다른 병원

2023년 3월 드디어 한국에 와서 서울아산병원 비뇨의학과 송상훈 교수님을 만났다. 중복 신장이 질 쪽으로 연결되어 소변이 새고 있으니 기능 없는 신장을 떼는 수술을 해보자는 진단을 들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서울아산병원에선 거의 매일 하다시피 하는 수술입니다. 부작용도 심하지 않고요. 복강경 수술로 진행해서 흉터 케어도 딱 한 군데만 하면 됩니다.”

 

카자흐스탄에서 들었던 수술 설명과 사뭇 달랐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오히려 환자 부모의 불안한 마음을 더 잘 읽어주었다. 수술 날짜까지 두 달 사이에 아이가 감기에 걸리거나 몸 상태가 나빠질까 봐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하며 돌봤다. 송 교수님께 수술받을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드디어 부분 신장 절제술과 요관 절제술을 진행하던 날. 내 인생에서 가장 길고 조마조마한 3시간을 보냈다.

 

우리의 해피엔딩

병동에선 24시간 내내 아이게림을 돌봐주었다. 카자흐스탄에선 저녁에 담당 간호사가 모두 퇴근하기 때문에 서울아산병원의 세심한 간호가 고맙고 감동스러웠다. 수술 후 3일째에 아이게림은 생기를 찾았고 5일 만에 퇴원했다. 항상 마음에 걸렸던 패드와도 안녕이었다. 모든 게 교수님이 예고한 대로였다. ‘이보다 최선의 치료는 없을 거야!’

 

한 달 뒤 입원 검사를 약속하며 송 교수님은 딸의 눈높이에 맞춰 몸을 숙이고 인사해 주었다. “치료받느라 고생했으니 즐거운 시간 보내고 와!” 아이게림은 교수님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듯이 경복궁에서 한복 입고 사진 찍기, 아쿠아리움 구경하기, 한강 유람선 타기 등 서울 곳곳을 여행했다. “엄마, 나한테 병이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아. 알라신이 이런 꿈 같은 시간을 선물해 주려고 그랬던 거야!” 여섯 살다운 엉뚱한 발상에 코웃음이 나왔다. “엄마도 신께 감사한 게 있어. 한국에서 좋은 병원을 만난 거!” 

 

병원에 돌아온 아이게림은 교수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했다. 교수님과의 병원 생활을 그린 그림이었다. 마침 선물을 들고 병실에 찾아온 송 교수님은 텔레파시가 통했다는 듯이 아이게림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찰싹! 힘찬 하이파이브 소리가 병실을 울렸다. “아이게림, 좀 얌전히!”하고 주의를 주다가 나를 제외한 모두의 미소를 보았다. 병원은 눈물만 있는 곳인 줄 알았는데, 낯선 풍경이었다. 아이게림 덕분인지, 의료진 덕분인지 알 수 없어 덩달아 한참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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