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환자 이야기 [신장이식후기]삶의 동반자로 기쁨도, 고통도 함께 해요. 2024.03.11

나의 동반자, 보호자, 위로자의 사랑으로

 

나의 동반자 이미지

 

♥ 남편에게

세 자녀의 엄마로 참 바쁘게 살았어요. 신장이 나빠지면서 기운도 점차 빠지고 혈압도 오르내리고 배앓이도 심했죠. 무엇보다 극심한 편두통에 시달렸어요. 투석을 받다가 응급실로 달려가는 일도 생겼네요.

이전에는 당신을 내 사랑하는 남편 혹은 애들 아빠로만 생각했어요. 병원에 가고서야 알았죠. 당신이 내 유일한 보호자라는 걸. 지치고 힘들어 죽음만 떠올리던 내게 당신은 신장이식을 할 수 있는지 상담해 보자고 제안했어요.

 

“두 분 다 좋습니다. 언제든 수술이 가능합니다.”

담당 의사의 밝고 긍정적인 말투가 우리에게 희망을 줬어요. 의사 선생님의 믿음직스러운 말투, 환한 웃음 덕에 새 힘이 솟았고 곧 검사를 받았어요. 당신의 혈압도 괜찮고, 심지어 혈액형도 같고, 검사 결과가 다 좋다는 말을 듣고 절로 기도가 나왔어요. ‘깊은 인연으로 맺어주셨구나, 감사합니다!’

 

이식수술 전 이미 일곱 번의 수술 경험이 있던 나도 무척 힘들었지만, 처음 개복수술을 해보는 당신도 몹시 힘들어 보였어요. 신장을 떼어 준 당신은 소위 ‘인상파’가 되어 있었어요. 부인의 병 때문에 수술을 하고서 아파하던 당신이 얼마나 안쓰러웠던지…… 그래도 안식년이라 나와 함께 병원에 있을 수 있었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지요. 정말 고마웠어요. 나를 인도해서 다시 잘 살게 지켜 준 나의 동반자, 보호자, 그리고 위로자였지요!

 

‘신장’을 얻은 후 ‘운동하며 약이랑 밥 잘 먹고 규칙적으로 살아야지’ 마음먹었는데 갑자기 다시 신장염으로 체온이 40도까지 오르는 바람에 입원하게 됐어요. 기억도 잃고 신경계 약까지 먹게 됐지요.

내 의지로, 내 고집으로, 내 욕심으로 하루아침에 건강해지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어요. 그래도 옆에서 “‘신장 하나씩’ 나누어 손 꼭 잡고 잘살아 보자”라던 당신의 도움으로 조금씩 살아나고 있어요. 이식 수술을 받고 3년을 지내면서 매일 사랑으로 회복하고 건강하게 다시 웃게 되는 체험을 했어요.

 

이전의 내 생활은 완전히 청산했어요. 짜거나 양념이 과한, 그러니까 맛있는 음식은 피해야 했죠. 심심한 음식이라 말하는, 그야말로 ‘정성’을 먹어야 했어요. 밀가루라 소화가 안 되는 빵이나 과자는 되도록 피하고 콜레스테롤을 높이는 기름진 음식도 제한하고, 생야채도 조심해야 하고. 회나 술은 끊어야 하고. 게다가 소식이 좋다지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사면이 꼭 막혀 답답한 집 마당에 우두커니 서서 가졌던 느낌과 비슷했어요. ‘아, 어린 시절은 이제 끝이구나!’ 생각하니 황량하고 끝없는 우주 속에 혼자 던져진 듯 쓸쓸했지요. 지금도 가끔은 ‘신장’을 지키며 잘살아 보려는, 혼자 외따로 선 듯한 내 처지가 무서워요. 이겨낼 수 있을까? 잘 싸울 수 있을까?

 

그러나 병원에서 교수님의 다정한 말씀을 듣고, 다른 환자들을 만나면 ‘혼자가 아니라 같이 노력하는 식구가 많구나! 나도 용기 내서 싸워 이겨야지!’하고 생각해요. 특히 코로나19로 눈 보호안경과 안면 보호대를 종일 착용하고서도 “아프지 말고 잘 이겨냅시다!”라며 응원해 주시는 교수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무엇보다 나를 끝없이 일으켜 세우는 당신! 추운 겨울, 여전히 깜깜한 새벽 6시에도 칼같이 일어나 약을 주고 아침 식사를 차리고선 설거지까지 마치면 “한 바퀴 돌까?” 기운차게 말하며 다정하게 나를 일으켜 드라이브를 시켜주지요. 덕분에 아름다운 한국을 새로 보게 돼요. 출근하고도 11시쯤 전화해서 “약 먹고 잘 지내요!” 말하며 웃어주고 오후 6시에 또 약 먹이고 7시에 저녁상을 차리고…… 정말이지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나요.

 

새 신장으로 새로 태어난 내가 건강하고 성숙한 여인이 되도록 이끌어 주는 남편으로, 자녀들에게 자상한 아빠로, 집을 늘 청결하게 해주는 주부로, 사회의 바쁜 일꾼으로, 또 집안의 든든한 아들로 어떤 역할이든 마다하지 않는 당신은 내 오른손과 다름없어요. 당신 때문에 약 먹기 힘든 날에도 웃으며 많은 약을 잘도 먹는답니다.

 

당신을 봐서라도 힘내려고 해요. 몸이 아프다고 쳐져 있으면 당신에게 미안한 일이지요. 그래서 미리 마사지도 하고 운동도 하며 세심히 몸을 살피고 있어요. 나를 위해주는 가족들, 친절하고 따뜻한 의사 선생님, 사랑스러운 간호사님들, 이겨내려 함께 애쓰는 환자 친구들, 곁에서 언제나 나를 지켜준 남편…… 모두의 도움으로 열심히 살고 있답니다.

 

당신의 흰 머리처럼 오래 산 우리는 이제 둘이 아니고 하나예요. 부족한 내가 당신을 만나, 당신의 신장으로 온전하게 되었어요. 나침반처럼 서로 안내하며 건강하게, 즐겁게, 웃으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혼자인 내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기뻐하는 우리로 살게 하소서.

 

당신의 아내가

삶의 기쁨도, 고통도 함께 하기로 해요

 

가족 이미지

 

♥ 아내에게

당신 병을 처음 알았던 때가 떠올라요. 늘 피로하고 다리가 자주 붓는다며 어느 대학병원에서 검진했지요. 두 개의 신장 중에 하나는 완전히 손상되었고 다른 하나마저 기능이 많이 저하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그런데 진료받는 동안 담당 의사가 마음에 상처가 될 말을 마구 쏟아냈죠. 그래서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겼고요. 십여 년이 지나 당신이 그렇게 피하고 싶어 하던 투석을 받게 되었어요. 서울아산병원에서 몇 차례 투석을 받고 결국 집 근처 투석 전문병원에 다니게 되었네요.

 

그때만 해도 투석이 그렇게 힘든 건 줄 몰랐어요. 투석을 시작한 지 두 달가량 지난 어느 날 병원에서 급히 와달라는 연락에 가보고서야 알았지요. 머리도 아프고 속도 안 좋다며 축 처진 당신이 병원 복도 벽에 겨우 기대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투석을 중단하고 집에 와서도 두통과 불편한 속은 나아질 기미가 없어 보였어요. 급기야 당신이 토하며 의식을 잃어 급히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데려갔지요. 뇌출혈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의사의 말에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중환자실에서 의식 없이 며칠을 보내며 경과를 관찰하는데, 뇌부종이 왔다더군요. 급히 두개골 절개수술을 하게 되었어요. 수술 후 의식은 돌아왔으나 당신은 왜 병원에 와있는지 알지 못했고 두개골 절개로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어요. 앞으로 정상적인 사고와 판단력을 갖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어요. 재활 치료를 받던 어느 날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지 못한 당신은 집에 가자고 졸랐지요. 또 어떤 날은 투석을 하다가 갑자기 “내가 왜 이렇게 되었지?”하고 물었어요. 뇌출혈로 그렇다는 말에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던 날이에요. 그때 슬프면서도 너무나 기뻤어요. 의식이 돌아왔으니까요! 그날 이후 재활 속도나 의식 회복이 하루가 다르게 빨라졌어요.

 

약 두 달 만에 퇴원하고 집에 돌아온 후에도 일주일에 세 번씩 투석하러 다녀야 했어요. 다행히 서울아산병원에 다시 갈 수 있었고요. 당신의 뇌출혈을 계기로 투석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알게 되었지요. 그동안 그 어려운 걸 혼자 견딘 당신에게 얼마나 미안하던지…… 적어도 투석하러 가고 올 때만이라도 같이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아침 여덟 시 투석 시작 시간에 맞춰 병원에 데려다주고 출근했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데리러 갔어요. 그러면서 투석하는 동안 심한 두통과 불규칙한 혈압 변화로 힘들어하는 당신을 제대로 보았지요. 투석을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소파에 누운 당신은 내가 다시 일하러 갔다 올 때까지 녹초가 된 채로 잠들어 있곤 했어요. 투석 횟수가 늘수록 기력을 잃어가는 것 같았고 고통도 더 늘어가는 것 같았지요. 투석 바늘이 꽂히는 왼팔의 혈관은 더욱 굵어져서 울퉁불퉁 사나워지고 있었어요. 어느 날은 투석을 마치고 탈의실에 들어간 당신이 나오지 않았어요. 탈의실에서 나온 환자가 당신이 안에서 쓰러져 있다고 알려줘 의료진의 도움을 받은 날도 있었죠.

 

처음 투석을 시작할 때 성당 신부님께서 이런 조언을 해주셨어요. “이제부터 내 생활에 병원 스케줄을 맞추는 게 아니라 병원 일정에 내 생활을 맞춰야 합니다.” 그 말씀이 맞았어요. 당신의 육체적·정신적 고통은 끝이 없어 보였지요. 당신의 입에서 ‘힘들다’는 말이 자주 나오기 시작했어요.

만성신부전증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법이 신장이식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어요. 그러나 투석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생긴 뇌출혈로 신장이식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지요. 그 후 3년 간 당신은 많이 회복했고 드디어 신장이식을 고민할 때가 되었어요.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신장 공여자의 범위가 넓어져 부부간 이식도 많아지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당신이 처음 투석을 시작할 무렵, 신장이식을 해야 한다면 내 신장을 주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어요. 그 다짐대로 기꺼이 내 신장을 내주기로 했지만 마음 한 편에 두려움도 없지 않았어요.

 

한때 음악 유학을 꿈꾸던 당신은 여섯 살이나 많고 가난한 대학원생이던 나를 만난 후 꿈을 포기하고 뒷바라지에 집중했죠. 첫째와 둘째 아이가 태어난 후 미국에 가서 내가 공부하는 동안 당신은 가족을 위해 많은 희생을 했어요. 밝고 명랑한 모습을 잃지도 않았어요. 셋째 아이를 낳고도 늘 하느님께 기도하며, 본인보다는 가족을 위해 애쓰던 사람이었지요. 그런 당신의 모습을 떠올리자 용기가 났어요. 다소 놀라면서 고마워하는 당신과 함께 서울아산병원 신·췌장이식외과 신성 교수님을 처음 만났지요.

 

교수님의 자신 있는 모습에 우리는 더 큰 힘을 얻었어요. 각종 적합성 검사에서도 별문제 없이 수술이 결정되어 기뻤지요. 난생 처음 수술대에 누웠을 때 그간 여러 번 수술대에 올랐던 당신에게 또 한 번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리고 수술 후 통증은 심했지만 이식이 잘 됐다는 이야기에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기뻤어요. 입원 기간에 딸이 찍은 사진을 보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해요. 나와 당신이 수술 후 처음으로 병실 복도에 나와 엉거주춤 함께 걷는 장면 말이에요. 우리는 새로운 삶을 함께 시작하고 있었어요.

 

이식한 지 어느덧 3년이 지났네요. 오늘은 당신이 출근하는 나를 데려다준다며 지하철역 입구까지 함께 걸었지요. 앞으로도 함께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요. 함께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도 많고요. 신장 이식수술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대나 희망은 못 가졌을 텐데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당신이 언젠가 말했지요. 이식 후 새로운 삶을 얻었다고. 비단 당신만 새로운 삶을 얻은 게 아니에요. 우리 가족 모두가 새로운 삶을 얻었어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새 삶을 더 아름답고 보람 있게 살아갑시다. 지금까지 힘든 일을 모두 견디고 극복한 당신이 진심으로 고맙고 사랑스러워요. 그리고 함께하는 우리 가족 모두, 사랑한다!

 

당신의 남편이

보다 건강한 콘텐츠 제작을 위해 이 콘텐츠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말씀해 주세요.

뒤로가기

서울아산병원 뉴스룸

개인정보처리방침 | 뉴스룸 운영정책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