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하는 아버지께
군 시절 아버지께 편지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군대에 가면 으레 그러듯이요. 지금 아버지께 쓰는 편지는 그 시절과 사뭇 다를 듯합니다. 이번 일을 겪은 후 제 마음이 그때와는 차원이 다른 감사와 사랑으로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매일 스마트폰으로 연락을 드리지만 짧은 문자로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편지에 쓰고자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소중한 아버지,
작년 제 상태는 최악이었습니다. 신장이 나빠진 줄 모르고 단순히 컨디션이 조금 안 좋다고만 여긴 게 문제였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건강이 계속 나빠지는 동안, 가족들을 어지간히 애태우게 했지요. 작년 이맘때쯤 발견한 통풍과 연말에 앓은 식도염까지, 모든 게 저를 괴롭혔습니다.
보다 못한 아버지께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자고 하셨지요. 제가 검사를 거부했다면, 끝까지 아버지 말씀을 듣지 않았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곤란한 처지에 놓였을 겁니다. 솔직히 그때만 해도 별일 아닐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검사 결과를 듣는 순간, 절망감에 사로잡혔습니다. 신장 이식이 필요할 만큼 나빠져 있으니 당장 입원해야 한다는 내용이었거든요. 청천벽력 같은 그 전화를 평생 못 잊을 겁니다. 부모님과 아내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몰라 혼자 울면서 운전해 병원으로 향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병원 측의 안내로 간신히 전화기를 붙들고 아버지, 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무섭고 무거운 마음이었어요. ‘부모님께서 주신 귀한 몸을 젊은 내가 잘 관리하지 못해 망쳐버리다니……’ 너무나 속이 상했습니다.
가족들은 만사를 제쳐놓고 병원으로 달려왔습니다. 정확한 검사결과를 봐야 하겠지만 이식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안내에 아버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것을 주겠다고, 바로 진행하자고…… 저는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었습니다. 너무 죄송해서 그 어떤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꾹꾹 참다가 입원하는 동안 남몰래 울었습니다. 그렇게 운 건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창피하기도 하지만 그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신장이 안 맞으면 당신 걸 가져가라는 어머니, 고모, 이모, 심지어 어머니 친구분까지…… 죄인이 된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무슨 복이 있어 이런 사랑과 관심을 받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이식을 준비하며 투석이란 쉽지 않은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사실 많이 힘들었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 네 시간씩 받는 투석도 힘들었지만 그 후에 오는 저혈압 때문에 더 지치고 힘들었지요. 그래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저로 인해 고생하고 희생하는 가족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습니다.
치료 과정 중에 생체이식이라는 게 생각보다 쉬운 결정이 아니며, 다른 환자의 경우 기증하려는 가족이 의외로 많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죠. “자식인데 무얼 따지나. 무조건 해야지.” 그 말씀이 제 마음을 너무나도 아프게 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일이 생각났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가족을 위해 어떻게든 사업에 성공하려고 하셨습니다. 몇 달이나 집에 들어오지 못하면서 애를 쓰셨지요. 그때의 희생이 떠오르자, 도대체 우리 아버지는 어디까지 희생하셔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참을 울었습니다.
저에게 또 한 번 희생하신 아버지
정말 많이 죄송합니다. 그리고 제 아버지여서 감사합니다!
다음 생에는 제가 꼭 아버지의 아버지로 태어나 희생과 사랑을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갚지 못할 그 사랑에 어떻게든 보답하며 살겠습니다. 사랑합니다.
♥ 사랑하는 아들아
고생 많았다. 그리고 미안하다. 그간 많이 아팠을 너를 생각하면, 왜 미리 신경 써 주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이 밀려온단다. 네가 밤에 자면서 다리에 쥐가 난다고 했을 때, 통풍이 왔다고 했을 때만 해도 병원에 가고 약 처방을 받으면 좋아지려니 했단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나친 시간이 왜 이리 안타깝고 힘든지……
네가 혈액 투석을 받아야 한다고 했을 때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 고통이 엄습했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왜 하필 내 아들인지. 정말이지 받아들이기 어려웠단다. 네 엄마는 하루하루 눈물로 보냈지. 솔직히 매일 우는 엄마를 보며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무얼 먼저 해야 할지도 생각이 나지 않더라. 암담하고 참담하기만 했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더욱 고통스러웠단다.
그렇다고 아빠로서 마냥 슬퍼할 수만은 없었단다. 너를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내가 하루라도 빨리 결정할수록 네가 빨리 고통에서 해방되리라 생각하니 지체할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 물었더니 신장 이식 수술을 가장 많이 하고 권위도 있는 서울아산병원을 다들 추천하더구나.
네 소식을 듣고 두산중공업 박용만 회장님이 아빠를 격려하고자 책을 선물해 주셨다. 병마를 형벌이라 생각하지 말고 이겨내야 하는 삶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라는 자필 편지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값진 선물이었지.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말이 견딜 힘이 된 것 같다.
서울아산병원에 와서 상담한 후 첫 진료에서 좋은 의사를 만난 것 또한 우리에게 큰 행운이었다. 우리는 수술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몹시 힘들었었지. 그때 의사 선생님이 로봇 수술의 장단점 및 수술 과정 등을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 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절대로 편안한 마음으로 수술실에 들어갈 수 없었을 거야.
큰 수술도 잘 마쳤고 큰 고비도 넘겼구나. 앞으로는 건강에 더욱더 신경 쓰고 잘 관리해서 행복한 삶을 만들어 가자. 그리고 주위 분들한테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자. 수고했고, 잘 이겨내 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