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환자 이야기 [신장이식후기]잘 버텨줘서 고마워! 2024.03.12

무려 토마토가 나왔어요!

 

Thank's Mom! 이미지

 

♥ 엄마

오늘 병원 점심 메뉴에 무려 토마토가 나왔어요! 그것도 아주 커다랗고 예쁜! 언제 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토마토가 아무렇지 않게 나온 걸 보니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내가 정말 다 나은 게 맞는지, 내가 정말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는지.  

 

참으로 긴 시간이었죠, 엄마. 중학교 때 갑자기 찾아온 사구체신염이라는 병이 우리를 이렇게 오랜 시간 힘들게 하고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킬 줄은 몰랐어요.

학창 시절, 겉으로는 밝게 지냈으나 혼자 있을 때 엄습하는 두려움과 막막함은 온전히 내 것이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병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할 것 투성인 저는 종일 문을 닫고 울기도 했어요.

 

힘들 때마다 저를 살린 건 아빠, 엄마의 편지와 위로의 말들이었죠. ‘하나님께서 짊어질 수 있는 짐을 주신 것이니 함께 잘 짊어지고 가자.’ 힘든 상황 속에 갇혀 아무것도 할 용기가 없던 제게 우리 가족이 있어서 하루하루 버틸 수 있었어요. 서서히 저는 제 질병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고, 이 녀석과 평생 잘 지내면서 살아보자고 다짐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10대를 보내고 대학도 무사히 졸업해 드디어 취업하여 부모님께 용돈을 드릴 수 있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던지요!

 

하지만 계속된 야근과 힘든 직장 생활에 저도 모르게 몸이 망가지고 말았죠.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까지 왔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 사실을 엄마, 아빠에게 얘기하기가 어려웠어요. 얘기를 한들 두 분 마음만 더 아프게 할 것 같았고, 성인인 제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지요. 일도 좀 줄이고 다시 잘 관리하려고 노력했지만 이미 기울어진 병세를 되돌리긴 역부족이었죠.

 

서울아산병원에 가고 나서 ‘투석’이라는 두렵고 막막한 세계가 저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몇 년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저를 지배하기 시작했고, 잘 살아갈 수 없으리라는 좌절감이 깊어졌어요. 더는 병에 대해 공부하거나 알고 싶지도 않았고요. 나름대로 열심히 관리하고 절제하며 살아왔는데 결국 그 길로 들어서게 되는구나 싶으니 허탈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오래 사귄 여자 친구와의 결혼도 포기해야 할 것 같았어요. 여자 친구와 그의 가족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가장으로서 잘 살아갈 자신도 없었지요.

 

그 사실을 모르던 엄마, 아빠가 제게 물었죠. 슬슬 결혼할 때가 되지 않았냐고. 투석을 해야 할지 모르고 그래서 결혼 자체도 회의적이라는 제 말에 엄마는 차마 아무런 말씀도 하지 못하셨어요. 그 모습에 제 마음이 또 얼마나 아팠는지 몰라요. 여자 친구에게도 제 상황을 이야기하며 우리의 만남을 어떻게든 결정해야 할 것 같다고 했지요. 용기도 없고 두렵기만 한 그 순간에 저를 살린 건, 지금은 제 아내가 된 주혜의 말이었어요. 저에게 건강을 약속해달라고 한 적 없다며, 그냥 저와 지금처럼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면서 살고 싶다고 했지요. 그 말이 결국 제 생각을 바꿔 놓았어요. 용기를 내어 결혼했고, 엄마와 아빠 그리고 저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해 주시고 용기 주셨던 사랑하는 장모님, 장인어른 덕분에 새로운 삶을 열 수 있었지요. 행복으로 충만한 3년이 그렇게 흘러갔어요.

 

하지만 2020년 12월, 갑자기 찾아온 장염으로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었고 순식간에 저는 투석을 눈앞에 두고 말았어요. 참 허무했어요. 40대까지는 어떻게든 버텨보겠다던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투석이라는 운명이 기어이 찾아오고야 말았구나 싶었지요.

 

12월 한 달간 병원에서 치료받던 중에 엄마가 말씀하셨어요. 누나가 저를 위해, 제게 이식을 해주려고 몇 년 전부터 준비해 왔다고요. 그래서 그동안 누나가 그렇게 열심히 운동하면서 몸 관리를 해온 거라고. 그때까지 저는 우리 가족이 나를 신경 쓰지 않고 각자의 생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혼자서 열심히 관리하고 노력해 왔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가족들에게 제가 생각하지 못한 마음을 이미 주고 계셨지요. 그 사실이 너무 슬프면서도 동시에 감사했어요.

 

이식이 결정되자, 한창 가정을 돌봐야 할 누나 대신 엄마가 신장을 주겠다고 하셨어요. 차마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제가 엄마 것을 받겠어요. 혹시나 엄마가 잘못되면 어쩌나, 여태 건강하셨는데 나중에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이 끊이질 않았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결국 우리를 좋은 방향으로 이끄셨어요. 수술도 무사히 마쳤고, 경과도 좋았지요.

 

엄마, 열다섯 살부터 서른다섯 살까지의 지난 20년, 고난과 어려움이 가득했지만 매 순간 부모님의 사랑이 있었기에 제가 이렇게 살아올 수 있었어요. 엄마, 아빠가 저를 살린 거예요.

 

겁 많던 엄마가 이렇게 기쁘고 용기 있게 아들에게 신장을 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죠. 그게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동시에 행복하기도 해서 지난 몇 달간 혼자 많이 울었어요. 그렇지만 이젠 걱정 대신 엄마와 함께할 앞날을 위해 기도할 거예요. 수술은 잘 끝났지만 이후에 예상하지 못한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릴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엄마,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상황이라 믿고 우리 가족과 함께 최선을 다해 이겨낼 거예요. 그게 엄마에 대한 저의 사랑의 보답이리라 생각해요.

 

1987년 5월 21일 생명을 선물해 주셨던 엄마, 2021년 7월 9일 다시 한번 저에게 새로운 생명을 선물해 주신 우리 엄마, 이 부족한 말로 저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사랑합니다.

보고 또 본 아들의 고백 메시지

 

가족 이미지

 

♥ 사랑하는 아들에게

거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휴식을 취하면서 엄마는 오랜만에 마음이 편하고 감사하단다. 나무를 보아도 감사하고 뭉게구름이 핀 여름 하늘을 보아도 감사하고 모든 순간이 감사로 넘쳐.

너와 주혜도 집에 돌아와 처음 맞는 아침이겠구나.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쉬고 있겠지?

그동안 고생했다, 아들아.

 

엄마는 네가 한참 이것저것 먹을 고1 때부터 음식을 제한해야 하는 상황이 가장 가슴 아팠어. 왕성하게 식욕이 일어날 시기에 자제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도 너는 밝은 모습을 잃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에 취직도 했지. 착한 아내를 만나 믿음의 가정을 이루기도 했고 말이야.

얼마나 대견하고 고마웠던지.

 

수술 전날 네가 보낸 카톡을 보고 또 봤어.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고백을 나이 든 아들에게서 받는 기분은 감동 이상이었지!  

 

잘 버텨줘서 고마워.

이젠 먹고 싶은 것 실컷 먹고 건강관리 잘하면서 주혜와 손잡고 서로 아껴주면서 살 일만 남았구나. (엄마가 예뻐하는 착한 며느리도 고생 많았다고 꼭 전해주렴!)

 

온 가족이 너희 가정을 사랑하고 축복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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