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실수해도 괜찮아. 인생은 곡선이야 : 신·췌장이식 환자 간호일기 2024.04.05

 

나는 104병동에서 신·췌장이식 환자들을 간호하고 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수년을 기다린 끝에 뇌사자 신장이식을 받은 할아버지를 만났다. 나이트 근무 중 할아버지의 혈압이 감소하고, 소변량도 줄어들고, 배액관에서는 혈액의 흔적이 발견됐다. 수액을 추가로 연결하고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밤새 병실을 들락날락했다. 할아버지는 “나 수술이 잘못 돼서 다시 투석해야 하는 거 아니야?”라며 걱정을 했지만 나는 “아니에요”라고 짧게 답했다. 내 업무도 다 끝내지 못한 상황에서 할아버지의 마음까지 챙겨드릴 여유가 없었고 모든 게 버겁기만 했다.


몇 시간 뒤 채혈 추가 처방 알림이 뜨자 다시 마음이 조급해졌다. 혈관 상태가 좋지 않은 할아버지의 팔과 다리가 떠올라 한숨을 푹 쉬었다. 당시 나는 채혈에 실패한 적이 많은 신규 간호사였기 때문이다. 주사기를 잡으니 긴장도 되고 환자에게 해를 끼치진 않을까 하는 무서운 마음에 손이 덜덜 떨렸다. 애꿎은 소독솜으로 할아버지의 팔을 계속 닦았다. 희미하게 보이는 혈관에 바늘을 꽂았지만 혈액은 나오지 않았고 진땀이 흐르면서 머릿속이 하얘졌다. “죄송해요. 많이 아프시죠? 제가 경력이 얼마 되지 않은 간호사라… 한 번만 더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또 다시 실패했다. 환자에게 죄송한 마음, 그리고 선배에게 부탁해야 하는 무거운 마음에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을 본 할아버지는 “나는 수십 년을 기다린 신장이식을 마침내 받았어. 인생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니까 조급해하지 않아도 돼. 마음껏 편하게 해”라고 말해주었고, 나는 숨을 가다듬으며 다시 시도해보았다. 다행히 혈액이 나오기 시작했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해냈어요”라고 말하자 할아버지는 “굿! 이젠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이 될 거야”라며 격려해주셨다. 할아버지가 처음 걱정을 내비쳤을 때 퉁명스럽게 대답한 것이 너무나 죄송스러웠고 오히려 나를 믿고 격려를 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복잡한 감정에 눈물을 머금은 채로 일을 하다가 퇴근한 뒤에 펑펑 울었다. 


치료를 통해 할아버지의 몸 상태는 점점 나아졌다. 당뇨를 앓고 있어 이식을 받은 뒤부터 인슐린을 투약했는데 퇴원 후에는 직접 투약하는 연습을 해야 했다. 하지만 몇 년 전 뇌졸중을 겪어 두 손이 주사를 투약하기 어려울 정도로 떨렸다. 할아버지는 바빠 보이는 내가 옆에서 기다리는 것에 미안해 하셨고 결국 내가 대신 투약을 해주었다. 그날 저녁 할아버지가 스스로 투약을 하지 못해 힘겨워하던 얼굴이 예전에 채혈에 실패한 내 모습과 겹치면서 계속 생각이 났다. 다음날 인슐린을 가지고 오자 할아버지는 한숨을 푹 쉬었다. 나는 “생각나시죠? 조급해하지 않고 침착! 직선이 아니라 곡선! 우리 같이 천천히 해봐요”라고 말하며 베개로 할아버지의 떨리는 팔을 받혀주고, 인슐린을 할아버지의 떨리는 두 손과 내 손으로 함께 잡고 투약 버튼을 눌렀다. 다음날에는 할아버지의 팔만 잡아주었고, 이후에는 도움 없이 스스로 투약했다. 마지막에는 인슐린에 바늘도 직접 끼울 수 있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퇴원하는 날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정교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적인지 몰라. 건강한 신체와 마음을 가지고 퇴원하는 것 같아. 우리는 서로 성장했어”라며 밝은 모습으로 떠났다. 느리고 서툰 신규간호사로서 맡은 바를 해내는 것은 언제나 두렵다. 하지만 어제보다 나은 내일, 인생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라는 마법 같은 주문은 항상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

- 외과간호1팀 안소연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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