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 B형간염은 간암으로 이어지기 쉽고, 간암은 완치를 말하기 어려운 치료 분야다.
그래서 환자들의 불안도 크다. 최원묵 교수는 이미 일어난 일에 연연하지 말고 마주한 상황에 집중할 것을 항상 주문한다.
그 역시 적극적인 치료와 연구로 환자의 긍정적인 내일을 준비하는 데 온전히 집중하고 있다.
매 순간 적극적으로
“학생 때부터 적극적으로 환자에게 다가가는 스타일이었어요. 그래야 무엇이든 배우고 얻어갈 테니까요. 자세히 들여다보고 진료에 기여할 단서를 찾겠다는 마인드를 장착하니 자신감이 생기고 목소리와 태도부터 달라지더라고요.” 인턴 때 자세하게 쓴 급성 간염 환자 의뢰서를 교수가 인상깊게 보고 소화기내과에 올 것을 먼저 제안했다. 이를 계기로 소화기내과를 선택하고 현재 만성 B형간염과 간경변증, 간암 치료를 하고 있다. 간은 인체에서 가장 큰 장기로, 문제가 생기면 전신에 영향을 끼쳐 전반적인 고려가 필요하다. 특히 간암은 치료가 표준화되지 않아 어떤 의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환자의 예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도전정신을 불러일으켰다. 그만큼 무거운 책임도 뒤따랐다. “환자가 갑자기 나빠지면 가치 판단이 필요해요. 당장 중환자 치료를 받도록 할까? 간이식을 받을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차라리 편하게 보내드리는 게 나을까? 정답이 없는 문제거든요. 다양한 여건을 종합하다 보면 운명처럼 끌려가듯 결정되기도 합니다. 여러 진료과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그래도 고민되거나 객관성이 흔들릴 때는 제 가족을 떠올려 봐요. 제 가족에게 권유할 만한 선택이어야 하니까요. 그러면 환자분들도 저를 믿고 따라주세요.”
간질환으로 전공 분야를 정했을 때, 간질환의 주요 원인인 B형간염은 이미 백신이 보급되어 유병률이 줄어들고 있어 언젠가 사장될 학문이라는 우려를 듣기도 했다. “젊을 때 열심히 환자를 돌보다가 점점 내 환자가 줄어들고, 평생 파고든 학문의 끝을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어요. 아직은 간암 환자가 늘고 있고 발생 원인의 70%가 만성 B형간염이에요. 해야 할 일이 많죠.”
그래도 낙관할 수 있는 이유
최근 한 입원 환자가 부작용이 심해져 항암 치료를 중단하자 불안해했다. 최 교수는 계속 악화되는 것처럼 보여도 주어진 상황에 집중한 환자분들이 결국 좋아지는 걸 봐왔다며 일단 간을 회복하는 데 최선을 다해보자고 설득했다. “제 인생 모토도 지금 이순간에 최선을 다하자는 것인데요. 제 이야기가 통했는지 요즘 환자분의 표정이 많이 밝아지셨어요.” 간암은 원인이 되는 B형간염이나 간경화가 남아 있기 때문에 암이 재발하기 쉽다. 그래도 간이식으로 완치를 바라볼 여지가 있고 극적으로 회복된 환자들이 있어 최 교수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최악의 상황을 내다보던 환자분들이 간이식이나 항암치료, 방사선색전술을 받고 건강하게 외래에 오시면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들어요. 제가 큰 힘을 얻습니다. 사실 환자분들이 잘 견뎌준 거죠.”
치료 경험이 많지 않던 시절 암 크기가 매우 큰 간암 환자에게 고용량의 방사선색전술을 한 뒤 경과를 보며 수술해보자는 결정을 내렸다. 방사선 용량이 너무 높아 전담 간호사가 용량이 맞는지, 계획대로 진행할 것인지 재확인하자 덜컥 겁이 났다. “잠시 망설여졌지만 영상의학과 의료진을 믿고 진행했어요. 환자분은 합병증이나 재발이 없는 상태로 2년 넘게 제 외래에 오고 계세요. 서울아산병원이어서 가능한 선순환을 매일 경험합니다. 우리 병원을 신뢰하는 환자가 많이 찾아오셔서 제 치료 경험도 빠르게 쌓여가고요.”
▲ 최원묵 교수가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모습
희망을 준비하는 의사
개원의인 아버지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직업적 자부심을 늘 이야기했다. 최 교수는 이에 공감하면서 더 많은 환자를 도울 수 있는 연구자이자 교육자로서 꿈을 키웠다. 수련을 마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의과학대학원에 진학해 기초 연구를 파고들었다. 사소한 이유로 실험이 어그러지면 원점으로 돌아가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도 꾸준히 이어간 연구는 알코올성 간질환과 간섬유화의 발생 기전에 관한 논문으로 완성되었고 다양한 수상과 연구 기회로 이어졌다.
현재 B형간염은 약제가 있어 간암 위험을 낮출 수 있지만 치료 적용 범위가 한정적이다. 해당 환자를 찾아내고 치료 적용을 확대할 근거와 방편을 임영석 교수와 연구하며 전 세계 가이드라인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연구를 시작할 땐 늘 깜깜해요. 몰입에서 오는 기쁨에 의지해 더듬거리다 보면 새로운 걸 발견하는 희열을 만나죠. 그걸 맛보면 매 순간이 소중해집니다. 환자분들이 오늘에 집중할 수 있도록 미래의 희망을 준비하는 의사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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