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환자 이야기 끝에서 바라본 시작: 소아백혈병 완치 스토리 2024.07.18

백혈병 소아환자에서 에세이 작가로 돌아오기까지

 

 

스물두 살 청년이 된 연호는 3년 만에 어린이병동을 찾았다. 백혈병 환자에서 에세이 작가이자 어린이병동의 기부자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연호다!” 연호를 먼저 알아본 의료진의 들뜬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가슴에 뚫린 관으로 독한 항암제를 맞으며 처절했던 연호의 투병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마다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나를 안심시킨 나의 환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임호준 교수는 연호가 병원에 처음 왔을 때 건넨 편지를 갖고 있었다. 2021년 7월이었다. 연습장을 뜯은 종이는 영락없는 고교생의 흔적이었지만, 정자체로 꾹꾹 눌러쓴 내용만큼은 생사를 마주한 환자의 절실함이 담겨 있었다. ‘법조인이 되고 싶은 마음에 바닥이던 성적을 전교 1등까지 만들었지만 백혈병 소견과 함께 제 꿈은 산산조각 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항암 치료와 관해 유도에도 호중구 수치는 오르지 않았다. 원인을 찾는 검사가 계속됐고 그사이 몇 번의 감염 위험도 있었다. 모두가 꺼리는 골수 검사를 다시 시도했던 날 병실로 찾아온 임 교수에게 연호는 시름시름 앓으면서도 “교수님, 곧 제 생일인데 골수 검사를 선물로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웃었다. 이토록 긍정적인 환자라니, 임 교수는 한결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유전자 검사 결과 연호에겐 7번 염색체가 하나밖에 없었고 암이 빨리 진행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다행히 여동생과 조직적합성이 맞아 2021년 11월 18일 조혈모세포이식을 서둘러 진행했다. 
“앞으로 재발할 우려는 없어 보이네.” 이식 후 3년. 임 교수가 해줄 이야기는 점점 줄어간다. 이제 연호의 이야기를 들을 차례다. 오래전 편지 말미에 ‘완치가 된 이후에는 세상에 힘든 분들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라는 약속을 임 교수는 여전히 기억하고, 기대하고 있다.    

 

 

어느새 단단해진 나의 아들        
“저 녀석 때문에 눈물이 늘었어요.” 한 걸음 떨어져 걷던 연호 아버지는 아들의 뒷모습에 금세 눈시울을 붉혔다. 평생 자신만만하게 살아오다 큰코다쳤다면서. 하루아침에 암환자가 된 아들이 자포자기할까 봐 “연호야, 아빠 돈 많아~ 어떻게든 치료해 줄 테니 너만 생각해!”라고 허세를 부린 적도 있다고 했다. 항암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연호는 계속 토하고 발진으로 시달렸다. 일순간 입술이 파래지고 몸을 사시나무 떨 듯하다가 해열제를 맞으면 금세 땀에 흠뻑 젖어 이불을 모두 걷어내야 했다. 2~3시간 간격으로 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던 아버지는 제발 이 시기를 잘 넘기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아들의 손과 발을 주무르고 민 머리를 쓸어주었다. 간지러워 잠들지 못하던 새벽녘에 서유리 간호사가 찾아와 얼음물에 적신 수건으로 연호의 몸을 닦아주던 모습은 아버지의 기억 속에 여전히 생생했다. 모든 의료진의 정성에 연호는 조금씩 웃음을 되찾고 주어진 상황을 견뎌 나갔다.


하필 수능 당일에 조혈모세포 이식이 진행됐다. 친구들이 미래를 꿈꾸며 시험을 치를 때, 연호는 세상과 차단된 무균실에서 생사의 희망과 불안을 짊어지고 있었다. ‘나라도 이 순간을 기억해 줘야지’라며 아버지는 연호의 사진을 찍어 두었다. 평소 데면데면하던 아들을 병원에 와서야 자세히 본 듯했다. “앞으로 연호가 어떤 인생을 선택하든지 저는 믿고 응원할 생각이에요. 병원에서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는 걸 아니까요.” 

 

 

함께 뿌리내린 우리들의 성장
입원 시절, 연호는 햇살나무 프로그램을 담당하던 강성한 부교수에게 호언장담했다. “제가 경제활동을 하게 된다면 이곳에 꼭 기부할게요.” 햇살나무는 투병 과정을 잘 견딜 수 있을까, 이겨낸들 재발하진 않을까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일 때마다 연호가 찾던 곳이었다. 퇴원한 뒤 투병기를 쓰면서 연호는 알게 됐다. ‘이 글은 내게 손 내밀던 사람들이 주인공이었구나!’ 지난해 말 연호의 책이 나왔고 모든 인세를 햇살나무에 기부했다. 지갑 안의 종이 조각으로 있기보다 생일을 맞이한 환아들의 케이크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강 부교수와 어린이병원 이은옥 대리는 연호가 기부자 이상의 의미라고 했다. “환아들에게 매 순간 살아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희망을 품고 햇살나무를 열었을 때 마침 연호를 만났어. 너를 통해 우리가 하는 일에 확신을 갖게 됐지. 이제는 네 이야기가 이곳 환아들에게 큰 힘이 되는 거 알아?” 연호는 또다시 약속했다. “서울로 올라오게 되면 햇살나무 봉사자로 꼭 돌아올게요!”  

 

 

이제 시작이라고, 그래서 감사하다고        
병상에서 죽음을 마주하면서 연호는 되려 살아있다는 감각을 알게 됐다. 그래서 퇴원한 뒤 대학 입시도 잠시 미뤘다. ‘끝에서 바라본 시작’이라는 책을 쓰고, 몽골을 여행하고, 국정감사장에 나가 환자 대표로 보건의료정책에 관해 이야기했다. 자기 인생에 더 다정해지기를 기도하면서 성공과 실패로 나누지 않는 하루를 채워나갔다. “백혈병 환자라는 것에 스스로 위축된 적도 있어요. 하지만 아픔 없는 장연호는 지금의 장연호가 아닐 거예요. 인생이 멈췄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시작된 제 인생이 신기하고 감사합니다!” 

 

나는 투병을 통해 성공보다 중요한 것이 있음을 배웠다. 최소한 10%의 여유는 자신을 위해 남겨두기로 했다. 하루에 한 번은 바깥바람을 쐬는 것, 하루에 한 끼는 사랑하는 사람과 먹는 것,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몸이 아프면 참지 않고 병원에 가는 일이다. 일 때문에 나를 미루지 않는 게 여유다. 그 10%가 사람을 살린다. 노력한 것에 비해 대가가 적어 속상할 때, 실패로 좌절감을 맛볼 때,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10%의 틈이 삶을 구원한다. 

「끝에서 바라본 시작」 중에서

보다 건강한 콘텐츠 제작을 위해 이 콘텐츠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말씀해 주세요.

뒤로가기

서울아산병원 뉴스룸

개인정보처리방침 | 뉴스룸 운영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