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두려움을 넘어 한 걸음씩: 심장내과 차명진 교수 2024.08.22

두려움을 넘어 한 걸음씩

- 심장내과 차명진 교수 -

 

▲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차명진 교수

 

부정맥은 급사할 확률을 예측해 치료 전략을 결정한다. 시술 후에 완치되는 환자도 있지만 급사의 위험을 안고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환자가 대다수다. 차명진 교수는 환자마다 안고 있는 불안과 고충을 이해하면서 든든한 신뢰 관계를 구축한다. ‘평생 손잡고 같이 갈 의사’라는 환자들의 확신이 치료의 첫 단추다.  

 

 

평생 내 환자이기에

차 교수의 주머니에는 설명에 필요한 온갖 장치가 가득하다. 부정맥 치료를 집안의 전기 공사에 빗대어 쉽게 설명하며 초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심장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거나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는 등의 문제와 같아요. 딱히 아픈 증상이 없는데도 ‘급사 가능성 00퍼센트’ 또는 ‘뇌졸중 가능성’을 이야기하니 환자들에겐 영 와닿지 않죠. 정말 무서운 건, 첫 증상으로 급사나 심부전, 뇌졸중 등이 갑작스럽게 발현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왜 지금 꼭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저랑 같이 공부해 봅시다’라며 에둘러 치료와 관리를 설득하고 있습니다.”  

 

2021년 서울아산병원에 부임한 뒤 이전 병원에서 돌보던 환자들이 속속 찾아왔다. 이미 시술을 마치고 경과만 보면 되는 환자들도 있었다. “직접 검색하고 물어가며 저를 찾아주신 게 정말 감사했어요. 제 치료 방향과 진심이 환자분들께 전해진 것 같아 감동도 됐고요.” 그중에는 심장이 느려 자꾸 쓰러지는데도 걱정이 많아 박동기 삽입을 거부하던 환자가 있었다. 차 교수는 몇 달에 걸쳐 환자와 대화하며 라포를 쌓아갔다. 그리고 아무런 기계를 삽입하지 않을 테니 빈맥(맥박의 횟수가 정상보다 많은 상태)을 없애는 시술 치료라도 받아보자고 설득했다. 환자가 꺼리는 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 제안한 차선책이었다. “빈맥을 치료한 후 느린 맥도 잡히면서 몇 년째 몸도 마음도 건강히 지내고 계세요. 의사로선 교과서대로 설명해야 하지만, 몸에 뭔가 삽입한다는 게 어떤 환자에겐 어려운 선택일 수 있잖아요. 그럼 시간이 걸리더라도 함께 다른 답을 찾아야죠. 환자분들과 대화하면서 좋은 치료에 대해 배워요. 그분들이 차명진이라는 의사를 만들어가는 거예요.” 

 

 

꿈에 뒤따른 책임감

차명진 교수에게 의사는 초등학교 졸업앨범에 장래희망으로 적을 만큼 오랜 꿈이었다. 누군가의 삶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직업이라는 이유였지만 정작 의사가 된 직후 가장 크게 실감한 건 ‘의사의 선택과 판단에 얼마나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가’였다. 살리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말 한마디, 익숙한 의료 행위일지라도 그로 인한 영향력을 냉철히 판단해야 했다. 특히 1㎖ 단위의 신호에 집중해 눈에 보이지 않는 심장의 박동과 리듬을 찾아나가는 부정맥 치료는 언제나 생사가 걸린 실전이었다. “환자를 치료할 때 두려운 마음을 안고 안전을 제일 중요하게 여깁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며 합병증이나 부가적인 영향을 모두 파악해야 하죠. 기술이야 누구나 배울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의사라고 할 수 없으니까요.” 

 

같은 기술로도 환자마다 어디를 어떻게 치료해 나갈지에 따른 전략과 소요 시간이 천차만별이다. 고난도 기계 장비에 숙련돼야 하고 의사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 “우리 병원 부정맥 파트가 최고의 전문가들로 이뤄졌다는 믿음이 있기에 차분하게 제 역할에 집중할 수 있어요. 제가 카테터로 문제 부위를 찾아가면 밖에선 끊임없이 측정하고 그림을 그려가며 의견을 나누죠. 죽을 것만 같던 환자가 치료 후에 건강히 걸어서 퇴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의사로서의 흥미와 자부심을 느껴요.”

 

 

 

끊임없이 답을 찾아 나서다

차 교수는 방사선으로 부정맥을 치료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암 질환에 쓰이던 방사선 치료를 심장에 사용하는 것이 해외에선 시도되었지만 국내 도입은 요원했다. “시술도, 이식도 힘든 환자분들에게 가능한 신의술이 있다는 걸 빨리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국가 과제와 펀딩을 받아 세포·동물 실험부터 환자 임상시험까지 이어갔다. 방사선종양학과와 협업해 특정 기술을 익혔다. 임상시험에 동의한 환자들 중 일부가 눈에 띄는 치료 효과를 얻었다. 논문을 발표하자 해외에서 강의 초청이 왔고, 새로운 국제 네트워크도 형성됐다. “누군가 나서지 않으면 국내로 들어오기 힘든 치료라는 생각에 환자들의 치료비와 재료비를 제 연구비로 모두 충당하며 죽을힘을 다해 매달렸어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으면서 제 인생 연구로 남았고 앞으로의 연구 동력이 됐습니다.” 차 교수는 확신이나 보상이 없더라도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로 선도적인 아이디어를 실현해 나갈 계획이다. ‘이 의사에게 치료받고 싶다’며 찾아오는 환자들에 대한 보답이라는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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