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아산병원 위장관외과 공충식 교수
20~30cm의 종양을 적출하거나 환자 상태가 좋지 않아 작은 실수도 치명적일 수 있을 때 공충식 교수의 손끝 하나하나에는 신경이 곤두선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게 초긴장 상태로 수술하고 나오면 그대로 쓰러져요. ‘내 기운을 불어넣어 환자를 살리는 일’이라는 걸 매번 몸으로 느끼죠. 환자분들이 입으로 뭐라도 드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수술할 용기를 내게 됩니다.”
사소한 결심에 열정을 더할 때
“난 의사할래!” 고등학교 때 검사를 하고 싶다는 친구의 이야기에 대한 사소한 대답이 시작이었다. 의학 드라마가 유행이던 시절이었다. 3수 끝에 목표한 의대에 입학했지만 뒤늦은 방황이 시작됐다. “삐딱한 성격에 공부만 하는 분위기가 답답했어요. 소위 아웃사이더처럼 학교에 잘 나가지 않고 유급과 휴학을 반복했죠. 의무병으로 입대해 좋은 군의관 선생님을 만나면서 긴 방황을 접었습니다. 돌아보면 그때 그냥 흘려보낸 시간이 조금 아깝죠. 그래도 복학한 후엔 단번에 성적을 쭉 끌어올렸습니다.” 13년의 긴 학부 생활 끝에 지방의 2차 병원에서 인턴을 시작했다. 밤 사이에 한 말기 환자가 모든 기능이 떨어지고 심전도가 흔들리며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엔 무엇이 잘못됐는지도 몰랐어요. 공부를 안 하면 환자를 어떻게 살려야 하는지 모르는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서울의 대형병원 외과 의국마다 지원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때 연락을 준 유일한 곳이 서울아산병원이었죠.”
펠로우를 하면서 매일 당직이 이어졌다. 위장관외과에 지원자가 없어 2년 동안 야간 응급 수술을 도맡았다. 정규 수술과 응급 수술은 진행 과정과 여건, 치료 결정이 많이 달라서 실전에 부딪히며 요령을 배워나가야 했다. 신혼 때 오랜만에 퇴근했다가 응급 호출을 받고 다시 출근하려고 하자 아내가 돌아누워 운 적도 있었다. 병원에 살다시피 하면서 답답한 날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병원 앞 올림픽대교만 두어 번 돌다 들어오곤 했다. “외과 의사는 무공을 쌓듯이 오랜 시간을 들여 직접 부딪히고 선배들의 경험에 귀 기울이며 실력을 쌓아야 해요. 책으론 배울 수 없는 게 많거든요. 다행히 우리 병원 위장관외과는 한밤중에도 선배에게 전화해서 묻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어요. 내 환자를 치료하면서 실력과 책임감을 키워나갈 수 있었죠.”
▲ 서울아산병원 위장관외과 공충식 교수가 환자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수술대에 설 때의 용기와 기대
위암 수술을 주로 집도하지만 식도암 수술 및 마취조차 어려운 환자들의 탈장 수술도 많이 진행한다. 진행성 위암이 복막까지 전이된 젊은 환자도 그중 하나였다. 기대 여명은 6개월 남짓. 더 이상 먹지도 못하고 받아주는 병원도 없었다. 수술하면 잘못될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유치원에 갓 들어간 자녀가 초등학교 입학하는 모습까지는 꼭 보고 싶다는 환자의 부탁에 ‘내가 아니면 누가 할까’라는 생각이 앞섰다. 예상대로 세 번의 힘든 수술이 이어졌다.그러나 의학적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환자는 건강해졌다. 외출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자녀 곁에서 몇 년을 더 지낸 뒤에 숨을 거뒀다. “환자가 원하는 만큼 삶을 연장해 드렸던 기억이 오래 남았어요. 환자와 의사 모두 최선을 다했다면 어떤 치료 결과도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래서 마지막 병원이라며 찾아온 환자를 나마저 포기하지 말자는 치료 원칙을 갖게 됐습니다.
오히려 다른 병원에서도 치료할 수 있는 환자라면 돌려보내죠.” 수술할 때마다 안 좋아지는 환자들이 더러 있다. 잘못된 치료를 선택했기 때문이 아니라 여전히 답을 찾기 어려운 경우다. “수술을 결정하는 동시에 저의 책임이 되기 때문에 어려운 수술에 선뜻 나서기 두려운 게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환자분들은 저보다 우리 병원을 보고 오신 거잖아요. 제게 주어진 책임인 거죠. 다행히 제 뒤에는 최고의 마취통증의학과, 영상의학과, 내과, 수술간호팀, 심지어 환자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도울 팀도 있습니다. 그러한 믿음으로 환자분께 우리는 치료에만 집중하자고 이야기합니다.”
졸업을 함께 기다리는 마음
“멀리서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진료 때 제일 먼저 환자의 거주지를 확인해 인사한다. 초창기에는 전문가의 입장으로만 이야기했다면 이제는 말하는 공간과 시간, 어투와 눈빛까지 중요한 메시지로 여기고 신경 쓰고 있다. “희망을 가지고 즐겁게 치료받는 분들이 실제로도 잘 낫습니다. 4기와 말기는 엄연히 달라서 더 이상 치료되지 않는 시기가 오면 알려드릴 테니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만나고 여행도 다니면서 재미있게 지낼 것을 당부드려요.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약을 먹으며 평생 살 수도 있으니까요.”
수술받은 지 5년이 지난 환자에게 졸업을 알리자 환자는 악수와 기념사진을 요청했다. “수많은 환자를 보는데도 1년에 딱 한 번 만나는 환자들의 얼굴까지 다 기억나요. 신기하죠. 이곳에서의 시간이 늘수록 무사히 5년을 지난 환자분들도 늘어갑니다. 그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고 앞으로를 더욱 기대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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