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프종은 질병의 진행속도가 빨라 생사의 갈림길에서 치료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완치에 이르는 환자를 조형우 교수는 심심찮게 만난다.
거의 움직이지 못했던 환자가 일상적인 모습으로 진료실에 걸어 들어올 때 느낀 보람은 새로운 환자들에 대한 각오와 희망으로 이어진다.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외고에 다니면서 당연히 제 진로도 문과 쪽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진지한 고민이 시작되자 의사가 되면 내가 공부할수록 누군가를 직접 도울 수 있다는 데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의사인 삼촌을 보면서 의미 있는 직업이라는 인식도 있었고요.”
막상 전공의가 되자 환자들이 생을 다하는 모습에 정신적으로 힘든 순간이 많았다. 출근길 발걸음이 매일 무거웠다. 종양내과에서 부작용 관리와 통증 조절 등의 재량을 부여받으며 의사의 적극적인 대처에 따라 환자 상태가 달라지는 경험에서 흥미를 되찾을 수 있었다.
“전공의 2년차에 다발골수종 파트에서 만난 환자분이 힘든 치료를 받으면서도 늘 고맙다며 손편지를 써주셨어요. 입원 기간은 불과 2주였고 저도 전공의 때라 잠깐의 따뜻한 기억으로만 남았죠. 그런데 2023년 퇴직한 교수님의 환자들을 맡게 되면서 그 환자분을 10년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대번에 서로를 알아봤어요. 저는 종양내과 담당 교수로, 환자분은 재발없는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 더욱 뜻깊었습니다.”
림프종 중에서도 고등급 림프종의 특징은 99%를 제거해도 1%가 남아있다면 치료 실패라는 점이다. 대신 암이 아무리 퍼져 있어도 완치를 목표로 한다. 그래서 조 조교수는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는 희망과 지금도 잘하고 있다는 격려로 치료 과정을 이끈다.
“처음에는 자세히 설명하는 데 초점을 뒀지만 지금은 가장 중요하거나 궁금해하는 부분을 요약해서 이해시키는 노하우가 쌓이고 있습니다. 치료가 꼭 필요한데도 받지 않겠다는 환자분들에겐 엄격하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끈질긴 설득도 하며 가장 적절한 치료를 찾아갑니다.”
더 많은 기회를 열며
조 교수가 주로 진료하는 림프종, 다발골수종의 치료는 최근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재발한 림프종 환자의 완치 가능성은 자가조혈모세포이식에 국한되었고 이마저도 약 25%의 환자에게만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CAR-T 세포 치료가 도입되면서 재발한 림프종 환자의 완치율이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더불어 이중항체와 같은 혁신적인 면역치료제가 지속적으로 개발되어 치료 성적이 나날이 향상되고 있다. 다발골수종 환자의 치료 성적 또한 눈에 띄는 발전을 보이고 있다.
급격한 발전을 실감할 때마다 조 교수에겐 생각나는 얼굴들이 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눠야 했던 환자들이다. ‘지금 만났다면 충분히 치료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안타까움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국내에선 할 수 없었던 치료제 조합으로 임상연구를 계획하고 있어요. 현재 진행하고 있거나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연구 모두 좋은 치료 기회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아 기대가 큽니다. 저와 환자 모두에게 아쉬움 없는 치료를 이어가야 한다는 책임감도 크게 느껴집니다.”
내 자리의 의미
많은 정성과 노력에도 악화되는 환자들은 있다. 그럴 때면 주치의로서 안타까움을 넘어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한다.
“환자와 그 가족분들이 도리어 저에게 열심히 치료해 줬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죄송하다는 인사를 해주시는 경우가 있어요.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도 ‘어떻게 죽음 앞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지? 내가 그만큼 최선을 다했을까? 다른 방법은 없었나?’ 많은 생각이 스쳐요. 그러면서 조금 더 배우고 성장하는 것 같아요.”
의사가 싸우는 건 질병이지만 환자들은 질병 너머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외로운 싸움을 벌인다. 그는 환자의 보호자가 됐던 경험에서 환자들의 시선을 비로소 알게 됐다.
“병상에선 혼자라는 고독감이 무척 무겁더라고요. 의사가 병실을 한 번 더 찾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는 걸 알았어요.”
의사에겐 여러 환자 중 한 명일 수도 있지만 환자에겐 의사가 유일한 버팀목이다. 종양내과 특성상 자신이 환자에게 마지막 의사일 수 있다는 걸 조 교수는 항상 유념하고 있다.
“환자분들을 되도록 많이 찾아가려고 해요. 두렵고 막막할 때 우리가 한 팀으로 함께 싸우고 있다는 느낌을 드리는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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