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뉴스룸 칼럼 사진 이야기 ① 기술과 예술의 공존: 카메라 옵스큐라에서 인상주의까지 2026.01.03

<이야기가 있는 산책> 융합의학과 김남국 교수

 

 (AI 활용 일러스트 ⓒ 서울아산병원 홍보팀)

 

19세기에 발명된 사진기가 화가들로부터 ‘정밀 묘사의 의무’를 빼앗은 뒤, 회화는 사진이 할 수 없는 인상주의와 아방가르드로 근대 미술의 황금기를 열었습니다. 곧 AI가 지능을 보조·대신하게 되면, 인류는 후속 세대를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요?

 

 

어둠 속에 비친 그림, 카메라 옵스큐라의 탄생

라틴어로 ‘어두운 방’을 뜻하는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는 작은 구멍을 통해 들어온 빛이 바깥 풍경을 벽면에 투사하는 원리를 이용한 스케치 도구입니다. 중세의 그림은 대부분 종교적 작품이었고, 원근법과 사실성을 무시하고 중요한 사람을 크게 그렸습니다. 하지만 인본주의로 대표되는 르네상스로 접어들며 카메라 옵스큐라는 사실감과 원근감을 표현하고 싶은 화가들의 비밀 도구가 되었습니다.

 

▲ [그림1]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을 모아놓은 코덱스 아틀란티쿠스(1515)에 있는 카메라 옵스큐라 (비블리오테카 암브로시아나 도서관)

16세기 초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노트에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리를 상세히 설명하며 작은 방에 뚫은 바늘구멍으로 외부 풍경을 얻는 방법을 기록했습니다(그림1). 그는 이 광학 장치를 활용해 보라고 화가들에게 제안까지 했는데, 정작 자신이 썼는지는 기록이 없습니다. 당대 여러 화가들이 이 ‘어둠의 상자’에 흥미를 보였지만, 투영된 영상을 따라 그리는 행위가 순수한 예술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부정한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 [그림2]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멘테냐가 원근법으로 그린 천장화 ‘오쿨루스’(왼쪽)와 베르메르의 ‘군인과 미소 짓는 여인’(오른쪽)

 

르네상스 화가들의 비밀 무기

15세기 초 이탈리아의 마사초가 선 원근법을 확립한 이후 르네상스 화가들은 광학 지식을 이용해 경쟁적으로 정교한 원근감을 구현하며 현실감 넘치는 그림을 그렸습니다(그림2 왼쪽). 현대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15세기에 이미 일종의 카메라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당대 많은 화가들이 거울과 렌즈로 이미지를 비춰보고 따라 그렸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상할 정도로 정확하고 섬세한 묘사들이 그 증거라는 것입니다.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르네상스 회화에서 드러나는 광학의 힘은 훗날 사진기 발명의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뉴요커들이 제일 좋아하는 17세기 네덜란드의 거장 요하네스 베르메르는 ‘빛의 화가’로 불립니다. 사진처럼 정밀한 빛 표현과 고요한 분위기로 유명하죠. 베르메르의 작품에는 연필 밑그림이나 수정 흔적이 거의 발견되지 않아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베르메르의 ‘군인과 미소 짓는 여인’을 보면 전경에 앉은 병사가 후경의 소녀보다 훨씬 크게 그려져 있습니다(그림2 오른쪽). 이는 실제 눈보다는 카메라 렌즈로 본 모습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그가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했다 하더라도, 빛의 미묘한 색감과 질감을 캔버스 위에 재현해 낸 섬세한 솜씨는 전적으로 그의 몫입니다. 광학과 예술적 감각의 만남이 빚어낸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진기의 발명과 예술계의 충격, 떠오르는 인상주의

19세기, 화학과 광학의 발전으로 프랑스 미술가 루이 다게르가 은판에 상을 맺히게 하는 방법을 발명함으로써 세계 최초의 사진기가 탄생했습니다. 1839년 프랑스 학술원에서 은판 사진술(다게레오타이프)이 공식 발표됐고, 이 소식은 순식간에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빛으로 그림을 그린다(photo-graphy)’는 사진술은 과학적 쾌거인 동시에 예술계의 큰 충격이었습니다. 초상화나 풍경화를 그려 생계를 잇던 화가들은 몇 분 만에 사실적인 그림을 만들어내는 기계와 경쟁해야 했습니다.

 

프랑스 화가 폴 들라로슈는 다게르의 초기 사진기를 본 뒤 “오늘부터 회화는 죽었다”고 탄식했다고 하죠. 19세기 중반 렌즈와 광학의 발달로 노출 시간이 단축되고 화상도 더욱 선명해지는 등 사진기 기술은 계속 진보해 왔습니다. 1888년에는 조지 이스트먼이 롤필름을 장착한 ‘코닥 카메라’를 내놓으면서 카메라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일반재’로 정착했습니다.

 

사진의 등장은 사회 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이때까지 미술의 최고 가치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묘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카메라가 화가보다 현실을 더 정확히 재현할 수 있게 되자 귀족과 부유층이 화가에게 의뢰하던 초상화 수요가 급감하고 카메라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중반 사진관이 등장하자 소수 특권층의 몫이던 초상을 대중들도 값싸고 빠르게 남길 수 있게 되었죠. 또한 사진기는 풍경, 건축물, 심지어 전쟁의 참상까지 즉각 기록함으로써 사람들의 세계관과 사회 체계를 바꾸었습니다. 크림 전쟁, 남북전쟁, 1차 세계대전을 담은 전쟁 사진들은 사실주의 회화가 담아내지 못한 날것의 현실을 대중에게 전했고, 이는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다시 설정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현실 재현의 몫을 사진이 넘겨받게 되면서 화가들은 역설적으로 현실 묘사의 의무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일부 진보적인 예술가들은 카메라가 할 수 없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모네, 드가, 르누아르 등 젊은 화가들은 눈에 보이는 빛과 색채의 순간을 포착하는 ‘인상주의’를 추구했습니다. 야외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광의 효과를 관찰하며 순간적으로 달라지는 색과 형태를 캔버스 위에 옮겼습니다. 인상주의의 탄생으로 주관적인 인상, 순간의 분위기, 색채의 아름다움 등이 회화의 주요 테마로 급부상했습니다. 이 사조는 전통적인 예술에 반발해 새로운 예술적 표현을 추구하는 아방가르드로 이어집니다.

 

 

기술 혁신이 바꾼 예술의 풍경, AI는?

분명한 사실은 사진도 회화도 죽지 않고 공존하며 발전했다는 점입니다. 카메라의 등장에 밀려난 듯 보였던 회화는 결국 사진이 해낼 수 없는 예술적 표현의 영역을 개척하며 근대 미술의 황금기를 열었습니다. 동시에 사진은 19세기 후반부터 예술 사진, 보도 사진 등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진이 등장했을 때 화가들이 느낀 불안처럼, 오늘 우리는 AI 시대에 인간이 설 자리를 걱정합니다.

 

(AI 활용 일러스트 ⓒ 서울아산병원 홍보팀)

 

하지만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의 창의성과 표현 욕구는 지속된다는 것을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진과 회화는 모두 빛의 예술이며 서로 영감을 주고 한계를 확장시키는 동반자입니다. AI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인간은 지성의 본질인 ‘창의’에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거대언어모델 등 AI가 얼마나 더 발전할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사전 훈련 시대는 끝났고 이제는 활용에 집중할 시대입니다. AI가 잘하는 데이터 처리, 반복 작업 등을 맡기고, 인간은 AI 활용 시스템을 설계하고 AI를 모니터링하며, 창의·윤리·감정 등의 요소와 전략적 사고로 AI를 개선하는 역할을 찾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역할 재배치가 필연적이겠지만, 새로운 직업이 많이 창출될 지도 모릅니다. AI 설계자, AI 감시자, 인간-AI 협업 전문가, AI 치매 방지 말동무, AI의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의사… 미래는 재미있는 상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쉬운 미래 예측은 ‘미래를 직접 발명’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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