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심장이 몸 밖으로 완전히 노출된 아이가 태어났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신생아의 생존 사례를 찾기 어려운 초희귀성 질환이었다.
아무런 치료법이나 지침이 없는 상황에서 각 분야 의사와 간호사가 물음표를 함께 짊어졌다.
그리고 모두의 한 마음은 환아 운명의 방향을 조금씩 바꿔나갔다.
국내 최초 신생아 심장이소증을 치료한 박서린 양의 이야기다.

“우리에게 찾아온 마지막 선물을 지키고 싶어요”
“현실적인 문제를 무시할 순 없겠죠. 하지만 아이가 버텨주는 한, 어떤 부모가 포기할 수 있겠어요.” 혜연 씨는 임신 12주차에 태아의 심장이 정상 위치에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정확한 상태는 출산 후에 알 수 있겠지만 ‘심장이소증’의 경우 출산 전·직후 생존 확률이 10%도 미치지 못한다는 절망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혜연 씨 부부는 3년 간의 시험관 시술과 여러 번의 계류 유산 끝에 얻은 아이를 이대로 잃고 싶지 않았다. 심장이 나와있는 게 맞는지 묻고 또 물었다. 결과가 달라질 리 없지만 심장 문제를 제외하면 주수에 맞게 잘 자라고 있다는 건 희망의 불씨가 됐다. 혜연 씨는 마지막 기대를 안고 서울아산병원을 찾았다.
산부인과 이미영 부교수는 정밀 초음파로 태아 상태를 꼼꼼히 살피기 위해 많은 진료시간을 할애했다. 소아심장외과 최은석 부교수와도 만나 상의했다. 심장 구조는 정상이어서 생존 확률은 더 높아질 수 있다며 용기를 건넸다. 혜연 씨 부부는 희망 회로에 기대어 출산을 기다렸다. 그리고 4월 10일. 아이가 태어났다. 붉은 심장은 얇은 막으로만 덮인 채 몸 밖에서 세차게 뛰고 있었다. 임상 경험이 많은 의료진조차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산모가 받을 충격을 염려해 아이를 바로 보여줄 수 없었다.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마음이 모였어요. 매 순간 협업이고 도전이었죠.”
“출산 직후의 영상을 받고 믿을 수가 없었어요. 신생아다 보니 심장혈관흉부외과나 소아심장외과에선 당장 수술이 불가능한 상황이었고요. 임시방편으로 동종 피부를 덮어 대책 세울 시간을 벌어야 했어요.” 성형외과 김은기 교수는 출생 이튿날 아이에게 피부를 이식했다. 주말이 지나 병실을 찾았을 때 ‘이혜연 산모 아이’에서 ‘박서린’이라는 이름이 생겨 있었다. 그리고 머리맡 ‘얼른 건강해져서 언니 만나러 집에 가자’라는 편지가 눈에 밟혔다. ‘과연 치료가 될까?’라는 의구심은 ‘서린이를 언니와 만나게 해주고 싶다’라는 욕심으로 바뀌고 있었다. 워낙 피부가 얇고 가슴뼈와 갈비뼈, 근육이 없어 끌어 모을 주변 조직조차 없는 난감한 상태였지만 흉곽 안에 심장을 넣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심장혈관흉부외과 최세훈 교수의 전화는 대책을 찾게 만드는 동력이 됐다.
내부 구조물이 완전히 노출됐다는 건 감염과 체온 유지, 외상 등 각종 위험에 노출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최 교수는 혈압을 유지하면서 주변 장기는 손상시키지 않고 심장이 들어갈 공간을 만드는 고난도 수술을 시도했다. 3주간 세 번에 걸친 수술로 심장을 밀어 넣는 동안 김 교수는 서린이의 허벅지 피부를 떼어 배양시켰다. 자기유래 배양피부를 흉부에 무사히 이식한 후 의료진은 서린이 부모에게 희망적인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이제 흉곽재건술을 진행할 3세까지 흉벽이 너무 벌어지지 않게 할 방법을 찾아 나섰다. 어디서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도 모른채 보호대를 제작할 것 같은 진료과나 관련 전문가에 매일 수소문했다. 연락받은 모두가 자신의 일처럼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서린이 침대맡 메모지에는 의사, 간호사, 보호자가 수시로 쓴 개선 방향이 매일같이 빼곡히 채워졌다. 각종 의견을 취합해 융합의학과 김남국 교수가 3D 프린팅으로 맞춤형 흉부 보호대를 제작했다. 모두가 같은 목적과 의지였다. 그리고 입을 모아 말했다.
“처음부터 완벽한 계획이란 없었어요. 서울아산병원이었기에 가능했던 협업으로 하나씩 도전해 나간 거죠. 서린이가 보여주는 아주 미세한 변화에서 희망을 얻으면서요.”
주치의인 소아청소년심장과 백재숙 부교수는 매일의 고비를 가까이서 쭉 지켜봤다. 출산 후 40여 일간 “오늘 더 나빠진 건 없어요”라는 말이 그나마 부모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희망적인 소식이었다. 수술 후 서린이의 혈압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백 부교수도 조금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사실 눈 앞에 치료법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았어요. 단 한가지도 쉽지 않았죠. 그럴 때 부모님과 의료진이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찾다 보면 길이 열린다는 걸 경험할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서린이가 힘든 과정을 버텨준 게 너무 대견하죠.” 백 부교수는 진료실 문 앞에 서있는 서린이의 모습을 그리곤 한다. “언젠가 좀더 자란 서린이가 언니 손을 잡고 저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박서린. 너는 희망의 이름이 될 거야. 그렇게 네 삶은 빛이 날 거야.”
두번째 수술 후 혜연 씨는 서린이의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겠다는 동의서를 철회했다. 그동안 병원에서 전화가 올 때면 가슴부터 내려앉았다. 숱한 밤, 긴 눈물에도 희망을 거두지 않았다. 서린이는 100일 즈음부터 미소를 짓고 손가락, 발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견한 우리 딸! 네가 다 이겨낸 거야.’ 일반병동으로 오면서 혜연 씨는 비로소 딸과 함께 지낼 수 있었다. 온 몸에 의료기구들을 부착한 아이를 안을 수 없어 아쉽지만, 더 이상 짧은 면회 끝에 그리움 가득한 인사를 하지 않아도 됐다. ‘무사히 태어나기만 하면’ ‘수술실에서 살아 돌아오기만 하면’ ‘집에서 지낼 수 있기만 하면’…. 하루하루 꿈꿨던 작은 희망들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 희망들은 부모만의 욕심이 아니었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뚫고 나갈 길을 하나씩 열어준 수십 명의 의료진이 서린이와 함께 울고 웃고 있었다. “서울아산병원이 서린이를 못 살린다고 했으면 이런 날은 없었을 거예요. 저희에겐 기적과도 같아요.”
24시간 집에서 서린이를 돌보는 생활은 쉽지 않다. 하지만 아이는 말간 눈동자로 눈을 맞추며 엄마를 웃게 하고 힘찬 손짓발짓으로 내일을 약속한다. 혜연 씨는 부모의 선택 때문에 아이가 고생하는 건 아닌지 곱씹어 보다가도, 포기하지 않았던 결정과 병원의 도움이 감사하다. 그래서 서린이의 이야기가 세상 어딘가의 또다른 서린이와 가족들에게 닿기를 기도한다.
“아픔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도 서린이로 인해 작은 희망을 가져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의료진도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결론보다 함께 도전해보자는 용기를 먼저 건넬 수 있을 거라 믿어요.”
▶ 보도자료: 심장이 몸 밖에 나온 채 태어난 서린이, 서울아산병원서 기적을 만나다
▶ Youtube: 서린이 가슴 안에 희망이 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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