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받았거나 수술 환자를 곁에서 지켜본 사람, 혹은 의학 드라마를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의사가 회진 때마다 던지는 기묘한 질문을 기억할 것이다. 바로 “가스(방귀) 나왔어요?”다. 일상에서라면 다소 무례한 질문이지만 외과 병동에서 이 한마디는 아침 인사를 대신하는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된다. 왜 외과 의사들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이토록 환자의 ‘엉덩이 소식’에 집착하는 것일까.
장도 잠에서 깨어나는 순서가 있다
전신마취 하에 복부 수술을 시행하면 환자의 의식뿐 아니라 위장관의 운동도 일시적으로 멈추게 된다. 수술 중 장기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염증 반응, 마취제와 진통제의 영향, 그리고 수술 스트레스로 인한 교감신경 항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장운동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생리적 수술 후 장폐색’이라고 한다. 반면 수술 후 4일 이상 장운동이 회복되지 않거나, 식사 후에 구토나 복통 등 상태가 악화되는 경우에는 보다 적극적인 처치가 필요하다. 우리가 경계하는 바로 이 경우가 ‘지연성 수술 후 장폐색’이다.

흥미로운 점은 마취에서 깰 때 위장관 각 부위가 회복하는 속도에 뚜렷한 시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보통 소장은 수술 후 수 시간에서 하루 내에 가장 먼저 운동성을 회복하고, 위는 그보다 하루 정도 늦다. 가장 늦게 깨어나는 장기가 바로 대장인데 통상 48시간에서 72시간, 길게는 4~5일까지도 마비 상태가 지속될 수 있다. 가장 말단에 위치한 대장이 깨어나지 않으면 위나 소장이 기능을 회복하더라도 흐름이 정체돼 식사를 진행할 수 없다. 따라서 가스가 나왔다는 것은 대장이 운동성을 회복했을 뿐 아니라 위와 소장 역시 정상적인 흐름으로 돌아왔음을 시사한다.
인체라는 공장의 품질 관리와 안전 점검
소화기관계를 하나의 거대한 공장에 비유해 보자. 입에서 잘게 부서진 원재료(음식)가 소화효소와 섞이고 소장이라는 공정 라인에서 영양분이 흡수된다. 이후 남은 부산물은 대장으로 전달돼 최종 제품(대변)으로 포장된다. 이 공장의 최우선 목표는 막힘 없는 원활한 흐름이다. 원재료가 처리 능력 이상으로 쏟아져서도, 공정 중간에 병목 현상이 생겨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처리 중인 재료가 파이프 밖으로 새어 나와 공장을 오염시키면 안 된다는 점이다.
대장항문외과 의사들이 그토록 가스 배출을 기다리는 핵심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장암 수술처럼 장을 절제하고 다시 이어 붙이는 ‘장문합술’의 경우, 연결 부위가 좁아지거나 꼬이는 기계적 폐색 또는 제대로 붙지 않아 장 내용물이 새어 나오는 문합부 누출 등의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재수술이나 중환자실 치료로 이어질 수 있는 위급 상황을 초래한다.
이때 환자가 가스를 배출했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장의 연속성이 확보되어 물리적으로 막힌 구간(기계적 폐색)이 없다는 뜻이다. 둘째, 장의 연동 운동이 위에서부터 항문까지 끊김 없이 전달되고 있다는 기능적 회복의 증거다. 즉 가스 배출은 복잡한 검사 없이도 치명적인 합병증 가능성을 상당 부분 낮춰 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임상적 지표다.

콧줄의 고통, 그리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점프 스타트’
만약 가스가 나오지 않고 배만 계속 불러오면 어떻게 될까. 움직이지 않는 장에 위산과 소화액이 고이면서 환자는 극심한 복부 팽만감과 구토에 시달리게 된다.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해 환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처치 중 하나인 비위관(일명 콧줄) 삽입을 시행한다. “교수님, 수술한 배보다 콧줄 낀 목구멍이 더 아파요”라는 호소가 나올 만큼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의료진이 가스를 기다리는 이유에는 이 힘겨운 치료 과정을 환자가 겪지 않게 하려는 마음도 담겨 있다.
최근에는 장이 깊은 잠에 빠지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수술 후 조기 회복 프로그램(ERAS: Enhanced Recovery After Surgery)’을 적극 적용하고 있다. ERAS는 수술 전 금식을 최소화하고 수술 중 마취와 통증 조절을 최적화하며 수술 직후부터 보행과 식사를 단계적으로 진행한다. 장이 받는 스트레스를 줄여 회복 탄력성을 높이고 멈춰 있는 엔진을 빠르게 ‘점프 스타트’ 하는 것이다. 환자의 가스 배출은 이러한 예방적 노력이 성공하여 비위관 삽입과 같은 고통스러운 절차 없이 안전하게 회복하고 있는지를 검증하는 마지막 관문인 셈이다.
병동에서 의료진이 “가스 나왔습니까?”라고 묻는 것은 단순히 생리 현상을 확인하는 가벼운 질문이 아니다. 이는 “환자분의 장이 구조적, 기능적으로 되살아났습니까? 합병증의 공포에서 벗어나 안전한 회복의 궤도에 올랐습니까?”라고 묻는 중요한 과정이다.
또한 외과의사에게 환자의 회복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약속이자 수술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상징하는 가장 현실적인 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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