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환자 이야기 리하의 여섯 번째 봄 - 소아 심장 이식 치료 3년 후 이야기 2026.05.04

 

“엄마, 나만 배꼽이 3개야!”   

유치원에 다녀온 리하가 물었다. 배꼽 양옆에 난 수술 자국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친구들이 이상하다며 물은 모양이다. “리하야, 너는 심장이 원래 많이 아팠는데 그 흉터가 있어서 나을 수 있었어. 또 누가 물어보면 고마운 흉터라고 이야기해 줘.” 리하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금세 다른 곳으로 정신이 팔렸다. 심장을 이식받은 지도 벌써 3년이 지났다.    

 

 

리하의 요즘   
리하는 유치원에 다니며 장난이 부쩍 늘었다. 예쁜 선생님의 눈에 들고 싶어 하는 마음은 또 얼마나 커졌는지. 또래보다 언어 능력과 신체 성장이 조금 느려 걱정이었는데 어린이집을 거쳐 유치원에 다니면서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 돌 무렵부터 병실에서 보낸 1년여 만큼 성장이 더뎠던 것 같다. 병원에서 찍은 사진을 많이 봐서인지 리하는 꼭 그 때를 다 기억하는 것처럼 군다. 병원에서의 기억은 없는 편이 나을 텐데 말이다. 


리하는 보통 신생아의 20% 기능만 하는 심장을 가지고 태어났다. 1년간 약물 치료로 버텼지만 컨디션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우리는 서울아산병원에 오게 됐다. 그리고 심장 이식을 받을 때까지 무기한 입원 생활이 시작됐다. 심장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 하루에 마실 물은 60ml로 제한됐다. 중환자 치료를 받으며 울다 지쳐 잠드는 아이에게 물 한 모금도 사치였다. 소형 냉장고 같은 체외형심실보조장치를 연결하고 24시간 피를 순환시켰다. 장비의 콘센트 길이가 리하의 생활 반경이었다. 연결 호스가 구부러지기라도 하면 알람이 울려 병실을 넘어 병동에 울렸다. 그 순간이 왜 그리 부담스럽고 조마조마한지, 리하가 막 걸음마를 시작하고 움직임이 커지면서 아예 리하를 안고 지냈다. 내 품은 리하의 작은 놀이터였다. 매일 이어지는 치료 속에서 리하는 제 팔에 스티커를 붙였다 떼면서 웃는 방법을 배웠다. 그 모습이 안타까운 날에는 간호사 선생님들이 장비 배터리가 허락되는 잠시간 옥외 공원 산책에 함께 나서줬다. 


원 없이 물을 먹이는 것, 바깥 공기를 쐴 수 있는 것. 바라는 건 그뿐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희망은 누군가의 절망과 맞바꿔야 가능했다. 심장 이식을 기다리는 마음을 가슴 속 아주 깊은 곳에 묻어두고 하루하루 담담히 보내려고 애썼다.  

 

 

▲(왼)심장 이식을 기다리던 2살 리하, (오)체외형심실보조장치를 착용하고 처음 신관 옥외 공원으로 외출한 리하 

 

여전한 불안 
돌아보면 이식 기회는 빠르게 찾아왔다. “리하 오늘 검사해야 하니까 금식할게요”라는 주치의의 한마디가 힌트였다. 만감이 교차하며 울고 있을 때 소식을 들은 소아청소년심장과 김미진 교수님이 찾아왔다. “어머니, 울고 계실 줄 알았어요.” 리하가 병원에 온 순간부터 많은 기도와 응원을 해준 교수님을 보자 더더욱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새벽 5시 소아심장외과 최은석 교수님의 집도로 리하는 새 심장을 받았다. 길고 험난했던 입원 생활이 의료진의 도움과 위로 속에 끝나가고 있었다.


코로나19 시기와 맞물리면서 리하는 오랫동안 아빠와 함께 지내지 못했다. 기다려온 퇴원인데, 홀가분함보다는 이제 리하 곁에 의료진이 없다는 불안이 훨씬 컸다. 이식한 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 매일 밤 잠든 리하의 가슴에 귀를 대본다. 가슴이 정상적으로 들썩이는지, 호흡 리듬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트라우마가 우리 부부에게 남아 있었다. 그때마다 리하는 건강한 숨소리로 우리를 안심시켰다. 그래서 매일이 선물 같았다.  


리하의 이야기가 기사화된 적이 있다. 리하 아빠는 기사를 찾아보지 말라고 내게 당부했다. ‘행운’이라는 한 단어로 축약된 우리 이야기에 악플이 많았던 모양이다. “어떻게 보면 나도 참 나빴지.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가 막상 이식받는다고 하니까 건강한 심장인지 먼저 묻게 되더라. 그 반대로는 너무 아픈 일인데. 우리만 생각한 그 순간이 계속 마음에 걸려.” 리하 아빠는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괴로운 마음을 꺼내 보였다. 그때의 두려웠던 마음도, 그로 인한 미안함과 감사 모두 평생 지우지 않으려고 한다.  

 

▲심장 이식 후 6살이 된 리하. 사진은 26년 3월 소아청소년심장과 유정진 교수와 함께 진료실에서. "교수님, 나처럼 해봐요!" 

 

리하가 만난 봄날 
4월의 봄기운이 가득한 날에 리하는 첫 기차 여행에 나섰다. 병원 가는 길이었다. 속도감이 느껴지는 창밖이 신기한지 리하는 오는 내내 종알거렸다. 그리고 성내천 다리를 뛰어다니며 코끝에 맴도는 꽃내음을 쫓았다. 3년 전 병원 옥외 공원에선 미처 누릴 수 없던 봄기운이었다. 리하에겐 수많은 ‘처음’이 기다렸고 그 표정을 지켜보는 것이 매일 새롭게 행복했다. 


때마다 먹어야 할 약이 한가득이라 안쓰러울 때도 리하는 보란 듯이 알약은 오도독 씹어 먹고, 주사기에는 스스로 물을 넣어 남은 가루 한 톨 없이 깨끗이 비웠다. 씩씩하고 야무지게. 약을 많이 먹으면 신장이나 심장에 무리가 될 수 있지만 주기적으로 소아청소년심장과 유정진 교수님의 진료를 받으며 적절한 양을 조절하고 있다. 면역억제제를 먹어서인지 감기는 일상이다. 그보다 기증받은 심장의 유전적 요인으로 인해 혹시라도 아프거나 식욕이 떨어져 하루 이상 영양을 섭취하지 않으면 수액부터 맞고 심하면 입원해야 한다는 지침이 있었다. 의학유전학센터 진료도 정기적으로 받고 있다. 리하에겐 기증자의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어디선가 심장이식을 받고 결혼과 출산까지 이룬 환자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부러웠다. 동시에 예방접종처럼 언제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가능한 삶인지 정확한 지침이 있길 바라온 우리는 왠지 마음이 놓였다. 유 교수님께 리하가 나중에 좋아하는 사람과 예쁜 아이도 낳고 평범한 인생을 살 수 있는지 물은 적이 있다. 교수님은 인생의 중요한 계획을 의료진과 발맞춰 치료해 나가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다. 리하와 서울아산병원의 인연은 앞으로도 오래, 끈끈히 이어질 것 같다. 리하 삶의 마디마디를 모두에게 기분 좋게 보여주고 싶다. 그렇게라도 희망과 절망을 오가는 환아와 그 가족들에게, 새로운 길을 만들며 환자들을 이끌어갈 의료진에게 힘이 되고 싶다. 우리는 수많은 ‘누군가’ 덕분에 따스한 봄날을 만날 수 있었다.    

 

▼ [리얼스토리] 리하의 두 번째 심장 - 2023년 04월 다시보기 (사진 클릭)

 

보다 건강한 콘텐츠 제작을 위해 이 콘텐츠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말씀해 주세요.

뒤로가기

서울아산병원 뉴스룸

개인정보처리방침 | 뉴스룸 운영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