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기내 닥터콜, 망설임을 이긴 ‘한 걸음’ 2026.07.20

비행기가 활주로를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내에서 의료진을 찾는 닥터콜이 울렸다.

마침 탑승하고 있던 안과 이훈 부교수는 착륙 때까지 환자 곁을 지켰다.

기내라는 낯선 환경과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한 부담 속에서도 의사로서의 본분을 다한

서울아산병원 안과 이훈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편집실> 

 

 

당시 상황을 간략히 설명해달라
미국 해외 연수 중 국내에 중요한 발표가 있어 잠시 귀국했다 다시 돌아가는 길이었다. 비행기가 이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내에서 의료진을 찾는 다급한 방송이 나왔다. 순간 ‘내가 이 상황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안과 전문의다 보니 망설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급한  상황에 몸이 자연스레 움직였다. 승무원에게 서울아산병원 의사임을 밝히고 환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다가가니 외국인 환자가 심한 두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심지어 한쪽 눈이 갑자기 보이지 않는다며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였다. 증상을 들으며 망막혈관폐쇄 가능성을 떠올렸다. 기내에서 할 수 있는 처치가 많지는 않았지만 환자가 편히 있을 수 있는 자리로 옮겨 혈압을 측정했다. 예상대로 혈압이 높았다. 혈압이 높을 때 이러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음을 차분히 설명하며 환자의 불안을 가라앉히는 데 집중했다. 착륙 때까지 환자 곁을 지키며 상태를 살폈고 도착할 무렵 다행히 환자의 혈압은 점차 안정됐다.

 

 

당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병원에는 환자 치료에 필요한 의료 장비와 판단을 함께 나눌 동료가 있지만, 기내에는 처치할 의료 장비는 물론 의견을 나눌 동료가 없어 혼자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그럼에도 어디에서든 의료인의 역할은 같다는 생각이 버팀목이 됐다. 눈앞의 환자를 돕는 것에 집중했다.

 

 

이번 경험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대단한 처치를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환자가 가장 불안한 순간,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어 다행이라 느꼈다. 환자가 건넨 짧은 감사 인사가 지금도 선명하다. 의료진으로서의 역할을 다했다는 사실이 책임감이자 자부심으로 남았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응급 상황에서 누군가를 돕는 것은 의료진에게 일종의 의무이자 본능에 가깝다. 하지만 막상 그 상황에 놓이면 두렵고 망설이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병원이 아닌 공간에서 책임 소재에 대한 걱정, 제한된 환경에서 처치해야 하는 부담감,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함께 찾아온다. 응급 상황에서 의료진의 망설임이 줄어들 수 있도록 제도와 사회적 분위기가 뒷받침되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환자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순간 기꺼이 나설 수 있었던 건 우리 병원에서 근무하며 마주한 수많은 동료들의 책임 의식 덕분이었던 것 같다. 그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시간들이 스스로 한 걸음 나서는 데 가장 큰 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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