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할아버지의 쪽지 2022.01.02

외과간호2팀 박소정 과장

 

 

환자경험평가에는 ‘귀하의 질환에 위로와 공감을 받았습니까?’라는 문항이 있다. 이 문항을 보면서 위로하고 공감하는 것은 과연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 생각해 본다. 공감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진정으로 이해하면서 상황과 감정을 공유하고, 나아가 따뜻한 말과 행동으로 상대의 괴로움과 슬픔을 어루만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매일 간호사로서 ‘체득한’ 공감을 하다 보면 가지각색의 사연을 가지고 있는, 모든 면에서 나와는 다른 상황에 놓인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감히 위로와 공감을 하는 것이 갈수록 어렵고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특유의 오지랖 넓은 성격을 살려 노력을 하고 있는데 목소리를 잃게 된 할아버지 환자에게 오히려 위로와 공감을 받았던 기억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이 환자는 후두암으로 성대와 후두를 모두 절제하는 전후두절제술을 받기 위해 입원했다. 수술을 앞둔 할아버지는 목소리를 완전히 잃는 것이 두려워서 수술을 거부해왔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환자가 표현하지는 않지만 앞으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에 대해 슬픈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어공주 이야기를 이용해 위로를 해드렸다. 인어공주가 다리를 얻기 위해 목소리를 잃게 되는 것처럼 환자도 목소리를 잃지만 생명을 얻게 된다고 이야기했고, 잃었던 목소리도 추후에 다른 발성법을 통해 얻게 될 것이라고 나름 그럴듯하게 위로와 공감을 해드렸다. 그 말에 환자는 가볍게 웃어 주었는데 그때의 내 가벼운 표현이 그분에게 어떻게 닿았을지를 생각하면 내 오만함이 부끄러워진다.

 

환자는 수술을 받은 후에도 마치 간단한 수술을 받은 환자처럼 힘들거나 우울한 내색 없이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같은 병실에 유리피판수술을 받은 중환자가 왔는데 그 환자는 인공기도를 갖고 있어 힘들고 불안한 것을 견디지 못하고 간호사를 30분마다 호출했다. 밤새 정성스레 환자를 돌봤지만 하늘이 점점 밝아오는 아침이 되어서도 여전히 안정을 찾지 못하는 환자에게 짜증을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답답하시겠지만 산소포화도 수치도 좋고 혈액 수치도 문제 없어서 괜찮아요. 그러니 이제 호출을 그만해주세요”라고 말해버렸다. 그러고는 격앙된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할아버지의 병상을 확인하기 위해 커튼을 걷었는데 할아버지는 이미 운동을 나갔는지 안 계셨고 폴대에 조그마한 쪽지가 붙어있었다. 쪽지에는 ‘좋은 아침! 더위와 환자에 힘들지만 좋은 아침 되세요. 오늘도 돌보아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라는 짧은 글이 적혀 있었다.

 

그 쪽지를 보고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난 쉴새 없이 울려대는 콜벨 때문에 모든 언행에 짜증을 담아냈던 것 같은데, 밤 동안 소음과 인기척에도 단 한 마디 불평도 하지 않은 같은 병실의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큰 수술을 받고 힘든 환자에게 진심을 담은 공감과 위로를 보내지 못한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날 이후로 그 쪽지가 잊혀지지 않았다. 20년간 간호사로 근무해 온 내가 과연 그동안 어떤 마음으로 환자를 대해왔던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간호사는 결국 환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그날의 나는 숨 쉬기 힘들고 표현도 할 수 없어서 불안하고 답답했던 환자의 힘듦을 공감하고 위로하지 못했다. 나는 환자가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진심으로 공감하고 위로하는 마음을 담은 인사를 하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오늘도 웃으며 환자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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