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환자 이야기 우리에겐 세상 최고의 명의 2022.02.03

 

 

“2019년만 생각하면 아직도 속이 타들어 가요. 아내에게 새로운 암이 발견되었는데 치료 방법이 없었어요. 누워있는 아내가 실망할까 봐 상황 설명도 못 하고 그저 병실 밖에서 매일같이 울었어요.” 보통의 암 환자라면 수술로 치료했겠지만 말숙(가명, 76세) 씨의 상황은 달랐다. 이미 위암과 담도암을 수술한 적이 있어서 더 이상의 수술이 불가능했다. 내과적 치료로 해결하기에도 종양의 크기가 너무 컸다.

 

인생을 뒤흔든 두려움

서울아산병원은 2016년에 담도암을 치료하러 처음 왔다. 지역 병원 건강검진에서 담도암을 발견하고 “그냥 두면 6개월도 못 살 겁니다”라는 의사의 소견을 들었다. 말숙 씨에겐 그 말이 꼭 서늘한 사형선고처럼 들렸다. 2001년 위암을 치료하며 수술과 항암 부작용으로 소진되었던 몸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 후로도 시부모를 모시며 오남매를 키우느라 건강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목수인 남편이 전국의 건설 현장을 다니며 집을 비우면 농사일까지 도맡았다. 힘들 때도 있었지만 ‘다들 이러고 사니까~’하며 훌훌 털어내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의사의 한마디에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막막해서 출가한 아이들에게 전화했어요. 평소에 씩씩하던 엄마가 겁을 내니까 아이들도 비상이 걸렸나 봐요. 서울에서 가장 치료 잘하는 의사에게 치료를 받아보자면서 서울아산병원으로 부랴부랴 데려오더라고요.”

서울아산병원에서 우측 간과 담관 절제술을 진행했다. 수술일을 기다리는 동안 온종일 주머니를 차고 코에 넣은 관으로 담즙을 배출해야 했다. 그래도 서울아산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수 있어서 안심이었다. 예상대로 수술은 잘 마쳤다. 그런데 5일째 되던 밤. 예상치 못한 출혈이 시작됐다. 의료진이 순식간에 말숙 씨를 둘러쌌다. 그리고 이틀 동안 말숙 씨를 예의주시하며 신속하게 검사와 수혈을 반복했다. 말숙 씨가 안정을 되찾고 정신을 차렸을 때 남편이 아이들에게 전화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의사와 간호사분들이 너희 엄마 때문에 이틀 밤낮으로 엄청나게 욕봤어. 다른 병원이었으면 벌써 큰일 났을 텐데 너희가 아주 좋은 병원을 찾아줬더라!’

 

고비를 지나 또 다른 고비

2019년. 수술한 지 3년이 지나며 담도암을 무사히 극복해가고 있다고 자신할 즈음 추적 검사에서 췌담관이 십이지장으로 열리는 부위에 종양을 발견했다. 처음 들어보는 병명이 더욱 당황스러웠다. 바터팽대부암이었다. 몸이 끊임없이 고장 나고 있다는 절망감도 컸다. “아내가 위암과 담도암을 이겨낼 만큼 강한 사람이라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그런데 두 번의 암 치료 때문에 더 이상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이제 운을 다했구나’ 싶더라고요. 내과 교수님들도 선뜻 치료 방법을 내놓지 못했어요. 이대로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가려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아내를 살려줄 의사 한 명쯤은 서울아산병원에 있지 않을까?’ 절박한 희망으로 하루하루 버텼어요.”

어느 날 처음 보는 의사가 병실로 찾아왔다. 소화기내과의 송태준 교수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말숙 씨의 의무기록을 검토해봤다면서 천공의 위험이 커서 종양을 줄로 묶어 조금씩 뜯어내는 치료법을 시도해보자고 했다. 남편은 어떤 시도라도 해달라고 간청했다. 처음 보는 의사지만 나 같은 시골 노인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설명하는 데서 왠지 모를 신뢰가 느껴졌다. 정작 말숙 씨의 반응은 달랐다. 고생하며 시술받고 기껏 2~3년 더 살 거라면 차라리 안 받겠다고 못 박았다. 가족들의 마음고생도 이쯤이면 충분했다. “남편이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저는 평생 악착같이 살았으니 이제는 놓을 때가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교수님은 저보다 더 단호했어요. 그런 걱정이라면 하지 말라고. 할 수 있다면서. 송 교수님의 확신 하나 믿고 하겠다고 했죠.”

 

마음에 심은 희망

말숙 씨는 한 달에 이틀씩 금식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고주파열치료술과 아르곤 플라즈마 절제술을 반복하며 4~5cm 크기의 종양을 제거해갔다. 아프고 번거로운 과정에 매번 포기하고도 싶었다. 다른 환자들은 20~30분이면 끝나는 내시경 시술이 말숙 씨는 항상 한 시간도 더 걸렸다. 나중에 시술 영상을 보니 송 교수는 집요하리만치 조심스럽게 종양을 제거하고 있었다. 그런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며 조금씩 깨끗해지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환자만큼 의사도 힘든 시술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과의 의료진이 모인 회의에서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 없이 송 교수의 치료만으로 충분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송 교수에 대한 신뢰가 맹목적인 것은 아니었다는 걸 확인한 것 같아 부부는 더욱 기뻤다.

요즘은 3개월에 한 번씩 이틀간의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그 외의 일상생활은 건강하던 예전 그대로다. 병실에서 간혹 표정이 어두운 환자가 있으면 의사에게 무슨 안 좋은 소식이라도 들었는지 마음이 쓰인다. 말숙 씨도 한때 그랬다. 의사의 한 마디에 지레 겁을 먹고 희망부터 접었다. 그러다 항상 웃는 얼굴로 ‘안심하세요. 나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주는 송 교수를 만난 것이다.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교수님들도 저를 치료하기 어렵다고 했는데 송 교수님이라고 왜 어렵지 않았겠어요. 그런데도 제가 겁낼 만한 이야기를 단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어요. 잘 될 거라는 믿음이 싹트니까 좀 버틸 수 있겠더라고요.” 남편도 한마디 거들었다. “누가 뭐래도 우리한테는 세상 최고의 명의가 송태준 교수님이에요. 서울아산병원은 우리가 찾아왔다지만 송 교수님은 우리를 직접 찾아오신 거잖아요. 이게 기적이 아니면 뭐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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