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침상 커튼을 열고 2022.04.01

응급간호팀 라연경 사원

 

 

몇 번을 와도 편해지기 힘든 곳이 바로 병원이다. 아늑한 패밀리실도, 다섯 칸 와이파이도, 제때 나오는 따뜻한 식사도 있지만 병원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마음 속에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특히 불안감 속에서 생각과 고민거리가 많아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나는 환자가 온갖 생각이 들어 힘들어지기 전에 먼저 찾아가려고 노력한다. 환자 침상의 커튼을 열고 묵묵히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자기소개, 투약 이유와 기전, 부작용, 현 상태 등을 설명한 뒤 약속한다. “제가 이따 다시 와서 확인할게요. 이해 안 되는 점, 불편한 점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걷어낸 커튼이 나와 환자 사이에 새로운 마음의 창을 열어준다.

 

지난해 3월 자궁내막암 진단을 받고 큰 수술을 받은 뒤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한 환자가 있었다. 눈매와 코가 대학 시절 믿고 따르던 지도교수님을 닮아 친숙함을 느꼈던 분, 맑고 곧은 눈빛으로 치료 과정을 씩씩하게 이겨냈던 분이다. 병동에서 보이지 않아 외래로 정기 추적 관찰만 하는 듯하여 내심 안심했는데 1월 1일 익숙한 얼굴을 다시 마주치게 되었다. “암이 재발해서 치료 대신에 죽기로 결심하고 다 싫어서 병원에 안 왔어요. 그런데 암이 다른 장기들로 전이돼서 일상생활이 불가하니 별 방법이 없어서 왔어요.” 담담하게 말하는 환자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말을 얹는 것 자체가 실례인 것 같았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가진 행운이 온전히 환자에게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매 순간 옆에서 함께 할 테니 같이 잘 해보자고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그로부터 3주 뒤 환자가 항암을 위해 입원을 했을 때 찾아가 근황을 여쭈었다. 맞춤 가발을 쓰고 최근 유행하는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사실 영정사진으로 쓰려던 프로필 사진이 너무 예쁘게 나와서 걱정이라고 웃으며 말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고 다시 응원의 마음을 전했다. “처음에도 이렇게 잘 해내셨으니까 두 번째, 세 번째는 더 잘 해내실 거예요.” 완치 이후에는 같이 프로필 사진을 찍으러 가기로 약속했다.

 

부족한 나는 근무 전 늘 다짐한다. 환자에게 먼저 관심을 가지고 침상 커튼을 걷어야 한다고. 갑작스럽게 병을 얻어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환자들은 혼란스러운 만큼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확신이 없는 설명은 불안감을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에 늘 부족함을 깨닫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지난해 말 고객칭찬대상을 받았을 때 놀랍고 감사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과연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치료 과정을 이겨내는 멋진 환자들과 동료 간호사, 의사, 조무사, 조무원, 이송원 등 모두의 도움이 있었기에 상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침상 커튼을 열고 먼저 환자에게 다가가 얼굴을 마주하려 한다. 환자들이 불안감을 안고 찾아온 이곳에서 조금이나마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초심을 잃지 않고 한결같이 그들 곁에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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