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의사이지만 부모이기에 애틋한 마음 2022.04.15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신영호 교수

 

 

생후 한 달도 되지 않은 아이를 안고 부모가 찾아왔다. 손가락이 하나 더 많은 다지증이었다. 손가락 하나를 없애는 것은 물론, 필요한 조직을 남아있는 손가락에 이식하고 제 기능을 할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한다. 작은 손가락 안에도 뼈와 관절, 인대, 혈관, 신경, 힘줄이 모두 엉켜 있어 세밀한 작업이 필요하다. 신영호 교수의 손끝 하나에 환아 손의 기능이 확 달라질 수도 있다. “1㎜ 단위의 조직을 다루다 보면 꼼꼼함을 넘어 깐깐해질 수밖에 없죠.”

 

아이들의 손에 집중하다

“준현아, 손 좀 봐도 될까?” 만 4세 준현이는 엄지가 너무 작아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무지저형성증이었다. 수술이 늦어질수록 뇌에서 작동인지를 하기 어려워 보통 만 3세 이전에 치료한다. 준현이는 일반 정형외과에 다녔지만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했다. 조금 더 지켜보자는 이야기를 누차 들으며 치료 적기를 놓친 것이다. 뒤늦게 선천성 수부 기형 치료 전문인 신 교수를 만났다. 네 번째 손가락의 힘줄을 옮겨 엄지의 움직임을 돕고 인대를 만들어주는 수술을 진행했다. 작고 휘어지고 못 움직이던 엄지는 수술 후에 더 이상 준현이의 아픈 손가락이 아니었다.

최근 신 교수는 국내 선천성 수부 및 상지 기형 역학을 연구해 발표했다. 국가 전체를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는 전 세계에 없던 터라 주목받았다. 해당 기형을 가진 신생아는 매년 1,000여 명. 1만 명당 약 23명의 규모다. 출산율은 감소해도 기형을 가진 소아 수는 꾸준히 늘고 있음을 확인했다. “수부 질환 전문의는 많지만 소아 선천성 수부 기형을 치료할 전문 의사는 전국에 예닐곱 명에 불과합니다. 전문 기관도 전국에 세 군데 정도고요. 수술한 후에도 합병증은 없는지 장기적으로 봐야 합니다. 일반 정형외과에서 접근하기 어렵죠. 특화된 치료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저에게 주어져 감사하면서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역할과 책임을 기억하며

신 교수는 수부 및 상지 기형 분야의 두 대가인 서울아산병원 윤준오 교수와 서울대학교병원 백구현 교수에게 수련을 받았다. 정형외과 의사가 되면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좋은 기회로 이어진 것이다. “잘하는 사람을 따라 하려는 노력에서 흥미와 실력이 쌓이더라고요. 두 교수님의 술기를 보며 일일이 그림을 그려가며 기록했죠.” 수부 질환을 수술한 지 5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일주일에 1~2건은 처음 접하는 케이스다. 그래서 어디든 확대경과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케이스 사진을 남기고 자주 복기한다. “수술 중에 계획과 다르게 발달한 경우를 발견하기도 하고,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부족한 기능을 알게 되기도 해요. 수술 결과가 60~70점이라고 느껴지면 며칠간은 정말 괴로워요. 그래도 제가 마음 쓰는 만큼 치료 결과는 비례할 거라 믿습니다.”

다지증이나 합지증을 가진 아이들이 전국에서 온다. 신 교수는 부모들이 느끼는 불안과 죄책감을 가장 먼저 본다. “저 역시 제 아내의 배 속에 아이가 생긴 순간부터 불안했던 마음이 생생해요. 아이가 아프면 부모 탓인 것 같아 이유를 찾고 싶죠. 수부 및 상지 기형의 많은 경우는 유전적인 원인이 아니기 때문에 환아 부모님께 부모의 잘못이 아니라 아이가 생길 때 조금 어긋난 것뿐이라는 이야기를 꼭 합니다. 수술로 모양이나 기능 개선이 가능하다고 말씀드리면 안심하면서 고마워하세요. 부모의 무게를 조금 덜어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죠.” 의사로서의 도리를 넘어 같은 부모로서 애틋한 마음을 진료에 담는다.

 

물러설 수 없는 원칙

수부 질환의 치료는 환자 스스로 손가락 운동을 해야 완성된다. 급성기의 골절 환자는 수술 후 며칠만 방치해도 강직이 생길 수 있어 신 교수는 1~2주 간격으로 환자와 만난다. 직접 손 운동을 보여주면서 밥 먹고 자는 시간을 빼고는 하루 종일 반복하라며 어르고 다그친다. 회진 때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드레싱을 하며 미용적인 부분까지 챙긴다. 혹여 전공의가 환자를 대강 보거나 놓치는 부분이 있으면 매섭게 꾸짖는다. “수술 성공이 목표가 아니라 손의 기능 회복이 관건입니다. 한 달에 100여 건의 수술을 진행하고 환자의 회복까지 챙겨야 할 것도 많죠. 그렇지만 시간에 쫓긴다고 치료의 어느 한 부분도 소홀하고 싶지 않아요.”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의 진료가 있는 금요일 오후는 신 교수의 힐링 타임이다. 촘촘한 일정과 책임감으로 일주일간 쌓였던 피로는 솔직하고 꾸밈없는 아이들과 만나면 금세 풀린다. 합지증 수술 후 매년 만나는 환아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면서 편지를 써왔다. ‘손을 예쁘게 쓸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릴 적에 소아과 의사 선생님을 보며 의사의 꿈을 키웠어요. 똑 부러진 판단과 치료가 정말 멋져 보였거든요. 의사가 된 지금은 도움을 주고 싶은 환아들을 보며 더 나은 의사가 되기를 하루하루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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