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우리 모두가 동의하면, 그것이 바로 새로운 길이었습니다” 2022.08.03

박승정 석좌교수 편

 

 

박승정 석좌교수님과의 대담은 즐거우면서도 어려웠다. 평생 강력한 카리스마와 열정으로 팀을 이끌며 기존의 질서에 도전했고 솔선수범으로 팀을 지켜온 ‘단단한 바위’였다. 스스로의 인생으로 증명해 낸 그 모든 게 너무 진짜여서, 그 앞에서 섣부른 소견을 말했다가는 내 고민의 얄팍함이 들통나겠구나 싶었다. 이번 편에서는 질문은 간단히 하고 박승정 교수님이 말하신 내용을 위주로 정리했다. (대담 진행 :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최세훈 교수)

 

1989년에 설립된 서울아산병원, 특히 심장내과는 33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 이유는 서울아산병원의 차별화된 설립 취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봉사에 초점을 두고, 권한을 나눠 구성원들의 자발적 동기를 고무하며, 공동체의 가치를 우선으로 섬기는 새로운 리더십이었습니다. ‘명령과 통제’로 이루어진 기존의 리더십과는 달랐습니다. 구성원 모두가 주인이었습니다. 1989년, 아주 적절한 시기에 좋은 사람들만 심장내과에 모였습니다. 그때 우리는 모두 ‘No.3’였고 배고픈 젊은이들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고 “해봤어?”라는 도전적인 리더십이 있었어요. 우리는 모두 신나서 춤추듯 열심히 일했습니다.

서로 다른 대학, 다른 문화에서 자란 동료들이 한 팀이 되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일사불란하게 일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습니다.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모여 회진을 돌았고 환자를 보는 과정도 서로 공유했습니다. 환자를 보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수록 우리는 점점 비슷한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같이 저녁을 먹고 밤 열 시쯤 일과가 끝나면 술자리도 같이 했습니다. 집에 가서 잠을 자는 시간 외에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를 더 많이 알게 됐고 우리 모두 ‘지금 어디에 와 있느냐’에 대한 자각이 생기면서 우리의 목표는 점점 더 뚜렷해졌습니다. 국내 최초로 심장내과 내에서 진료 및 치료 기능을 세분화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동의하면, 그것이 바로 새로운 길이었습니다.

질적인 면에서의 경쟁은 연구 논문이었습니다. 1989년부터 국내 처음으로 심장조영술 전부를 컴퓨터로 데이터화하기 시작했고, 3년이 지나면서부터 우리의 논문 수가 압도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미국 학회에서 자체 데이터로 연구 발표를 한 것도 우리가 처음입니다.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 첫 게재 논문은 약물스텐트의 초기 개념에 관한 다기관 무작위 임상연구였는데, 6년이 걸렸습니다. 그땐 연구를 도와주는 시스템도 없었고 연구에 참여한 미국의 대학병원 공저자들도 모두 말렸습니다. 논문이 채택될 거라고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2003년 NEJM에 처음으로 우리 논문이 실렸습니다. 흥미롭게도 ‘우리’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을 한 번 해내고 나니 말도 안 되는 일이 반복해서 벌어졌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것을 간절히 원했고,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역량이 확장됐기 때문입니다. 이후 NEJM 논문 6편을 더 만들었습니다. ‘기존의 대학병원을 넘어서자’는 목표가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1등이 되었습니다.

 

좌주관상동맥 스텐트 시술을 세계에서 처음 시도하셨을 때 어려움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1994년에 좌관동맥 주간부 병변에 스텐트 시술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관상동맥 우회술이라는 수술만이 좌관동맥 주간부 협착 병변의 유일한 치료법이었습니다. 1970년대 연구에 기반한 진료지침이었는데 아무도 의문을 갖지 않았습니다. 사실 좌관동맥 주간부 병변은 혈관이 크고 관상동맥 근위부 혈관이기 때문에 스텐트 시술을 하기에 아주 좋은 자리입니다. 환자를 설득해 100명 정도 스텐트 시술을 계획했는데, 40명 남짓 시술을 했을 때 표준화 치료가 아니기 때문에 환자에게 시술할 수 없다는 흉부외과 선생님들의 저항에 부딪혔습니다. 스텐트 시술을 받은 환자들이 병원에 이의를 제기하고 병원 내에서 소란을 피우기도 해서 한동안 좌관동맥 스텐트 시술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40여 명 환자들의 스텐트 시술 결과를 정리한 논문이 미국 심장학회지에 실리고 고무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 논문을 당시 박건춘 부원장님과 민병철 원장님께 보내드린 후 얼마 안 돼 다시 시술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두 분의 도움이 없었다면 좌관동맥 주간부 병변의 스텐트 치료는 다른 누군가에 의해 선도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분을 만난 것은 제게는 큰 행운이었습니다. 그러고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미국 학회에 처음 데이터를 발표할 땐 어느 외과의사로부터 ‘미친놈’ 소리도 들었습니다. 우리의 두세 번째 NEJM 논문은 좌관동맥 주간부 병변에서 스텐트 시술의 효과를 수술과 비교한 임상연구였습니다. 현재 유럽과 미국 치료지침을 보면 적어도 좌관동맥 주간부 병변 환자 3분의 2에서는 ‘스텐트 시술이 수술을 대치할 수 있다’라고 지침이 바뀌었습니다. 20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좋은 팀은 왜 중요한가요? 좋은 팀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팀이란 구성원들 각자의 개별적인 능력의 합보다 훨씬 더 큰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능적인 집단입니다. 서로 협력해 팀을 만드는 것은 인류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가장 성공한 생존전략입니다. 중요한 것은 구성원 각자가 그 팀이 추구하는 목표와 가치에 ‘얼마큼 공감하고 몰입하느냐’에 따라 팀 파워가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서울아산병원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정상에 올랐습니다. 병원의 규모도 커지고 목소리도 다양해졌습니다. 미래의 목표도 경쟁자도 이제는 우리 자신일 수밖에 없습니다. 협력은 무너지긴 쉽고 다시 만드는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우리’라는 협력의 틀 속에서 차별화된 가치를 지키고 더 많이 공감하고 몰입하며, 시스템에 대한 믿음을 지키고 장기적인 시각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1989년 개원 이래 33년째 이 병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모든 행운이 이곳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평생 의사라는 직업을 통해 먹고살았습니다.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생존 법칙의 아주 기본입니다. 살아남았습니다. 너무 감사하죠. 한 걸음 더 나아가 의사로서 아픈 사람을 도울 수 있고 보람도 있는데 가끔 칭찬까지 들을 수 있어서 저 자신은 더 말할 나위 없는 행운아였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의사는 ‘돕는 사람’입니다. 환자를 돕고, 시스템을 돕고, 사람을 돕고, 그리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좋은 의사라고 생각합니다. 늘 질문하고 공부하고 배우고 돕기를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여러분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필연적으로 누군가에 의해 수동적으로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고 또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도전’ ‘열정’ ‘신념’ ‘비전의 공유’ ‘공감’ ‘몰입’ 등 여러 성공의 키워드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 우리에게 그런 단어가 부족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때때로 이기고 때로는 지더라도 이 단어들로 인생을 살아내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 짐을 지고 먼 길을 걸어온 사람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가볍게 자기 이익을 좇지 않으며 어렵다고 피하는 법도 없이 살아온 모습은 그저 단단한 바위산 같았다.

 

 

※ 박승정 교수는 1979년 연세의대를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에서 전공의 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1989년 서울아산병원 개원 시 합류해 심장내과, 특히 관상동맥 중재술 분야에 매진했다. 1991년 관상동맥 스텐트 시술을 국내 최초로 시작했으며 1994년부터 시작한 좌관동맥 주간부 스텐트 시술은 전세계 심장내과 진료 지침을 바꾼 쾌거였다. 2003년 약물스텐트 연구로 국내에서 처음 NEJM에 제1저자로 논문을 등재한 이후 최근까지 교신저자 혹은 제1저자로 NEJM에 5편의 논문을 게재했다. 현재 울산의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 울산의대 학생부학장으로 재임 중인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최세훈 교수가 울산의대 인문의학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서울아산병원의 지난 30여 년을 이끌어온 다섯 명의 선배 의사를 만났습니다. 도전과 열정으로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병원의 성장을 이뤄 낸 선배 의사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담긴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다섯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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