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힘과 위로를 주고 받으며 2023.01.09

어린이병원간호팀 서유리 사원

 

 

내가 근무하고 있는 소아외과 병동에 활력징후가 불안정한 환아가 찾아왔다. 스스로 호흡하는 것이 힘들어서 홈벤트에 의존하고 있었으며 빈호흡과 흉부견축 증상이 자주 나타나는 뇌종양 환아였다. 증상은 시간이 지나도 호전되지 않았고 결국 보호자는 교수님으로부터 아이의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담당 간호사였던 나는 평소와 같이 커튼을 걷으며 보호자에게 인사를 하며 들어갔고, 보호자는 눈시울을 붉히며 아이의 죽음까지 한 달 정도 남았다는 이야기를 내게 전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환아와의 이별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순간 너무 당황스러워서 어떤 말로 위로를 드려야 할지, 감히 내가 위로의 말을 건네도 될지 고민만 하다 결국 아무런 말씀을 드리지 못하고 나왔다.

 

복잡한 감정을 추스르고 퇴근 후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편지를 썼다. “아버님~ 아버님은 00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아이도 최선을 다해 지금 우리 곁을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같이 끝까지 힘내 보아요”라는 말은 내가 가장 전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섣불리 위로를 건네는 건 아닌지 수없이 고민하다가 편지를 전달했고, 편지를 받고 나서 환하게 웃는 보호자의 모습에 마음이 더욱 울컥했다.

 

그날 이후로 내가 어떻게 하면 환아를 더 잘 돌볼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의식이 없어 직접적인 의사소통은 불가능했지만 환아와 마음으로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다. 라운딩을 갈 때마다 환아의 손을 잡아주고 “00야, 안녕! 혈압 한 번만 잴게!”라고 말하며 하루의 만남을 시작했다. 상태가 너무나 좋지 않아서 종종 부담이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끝까지 정성을 다해 간호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이 아이의 소중한 마지막 순간들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어느 날 환아의 아버님이 4등분으로 접힌 꼬깃꼬깃한 종이를 건네 주었다. 그동안 너무 감사했다며 환아 어머님의 연락처를 적어 내게 주신 것이었다. 아버님이랑 종종 환아가 사는 곳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놀러 오면 맛있는 것을 잔뜩 사주겠다고 하셨다. “우리 병동 선생님들 다 데려가도 되나요?”라며 장난스럽게 말씀드리니 보호자는 밝게 웃으며 “그럼요!”라고 답했다. 아이는 결국 하늘나라로 갔다. 보호자에게 연락은 못 드렸지만 그 종이는 그때의 마음을 생각하며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간호사로 일하면서 나 자신을 환자와 보호자에게 힘과 위로를 건네야 하는 존재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가 주는 것보다도 환자와 보호자에게 받는 힘이 더 컸던 것 같다. 어린이 병동은 환자뿐만 아니라 보호자와 많은 소통을 한다. 부모님의 마음까지 헤아리며 일을 해야 하기에 감정이 소모될 때도 있지만 오히려 내 위로가 그들에게 닿을 때면 간호에 대한 뿌듯함을 느낀다.

한 가족의 마음을 헤아리며 간호하는 일은 아주 소중한 경험이다. 이 글을 쓰면서 작년에 쓴 일기를 오랜만에 들여다 보았다. ‘임종을 앞둔 환아와 가족을 보는 건 처음이라 내가 잘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주고 싶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후회 없이 더 최선을 다해 돌봐야겠다”라고 쓰여있었다. 이 마음을 잊지 않고 환아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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