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나를 이끈 만남과 인연 2023.02.27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임호준 교수

 

▲ 1998년 일본 학회에서 서울아산병원으로 이끈 서종진 교수(왼쪽), 소아혈액종양분야로 이끈 이항 교수(가운데)와 함께.
▲ 2003년 완치된 소아 환자와 기념촬영.

 

임호준 교수는 2004년 서울아산병원에 오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소아암 환자 치료의 한계를 느끼고 미국에서 직접 조혈모세포 이식 치료를 경험하고 돌아온 이후였다. 동료 의료진과 의기투합해 반일치 조혈모세포 이식에 도전했다. 끊임없는 시도와 연구 끝에 난치성 혈액질환 및 소아암 환자와 가족에게 희망을 안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조혈모세포 이식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시작된 건가요?

1995년 한양대학교병원의 전임의로 일하면서 국내 소아암 치료를 시작한 이항 교수님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환자를 대하는 자세까지 제가 추구하는 모든 것을 보여주셨어요. 소아암 환자를 10년 가까이 치료하면서 한계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2003년 마흔 살의 제법 과년한 나이에(웃음) 미국행을 계획했죠. 조혈모세포 이식 분야의 최고 병원으로 꼽히던 프레드허친슨암연구소 산하 소아병원에서 조혈모세포 이식 치료에 직접 참여했습니다. 저널이나 학회를 통한 연구보다는 현장의 최신 의술을 익혀 국내에 바로 적용하고 싶었거든요. 환자를 대면하기에 언어에 대한 부담이 컸습니다. 미국에 가본 적도 없었죠. 그래도 조혈모세포 이식은 새로운 영역이어서 용기를 냈습니다. 1년 후 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서울아산병원 서종진 소아종양혈액과장님의 제안을 받았고 제가 배운 걸 본격적으로 적용할 수 있었죠.

 

서울아산병원에 온 2004년부터 반일치 조혈모세포 이식을 시도하셨죠?

당시 동종조혈모세포 이식은 조직적합성이 일치하는 형제 혹은 비혈연자에게 공여받는데, 공여자가 없는 경우에는 제대혈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성적이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특히 재생불량성빈혈은 조혈모세포 이식이 유일한 치료법이어서 공여자를 찾지 못하면 손도 써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반일치 이식에 매달리게 됐습니다. 조직적합성이 반만 일치하는 부모가 공여자가 된다면 최소한 이식 받을 기회는 생기니까요. 그러나 워낙 고난도 기법이어서 국내에서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를 거듭하는 실정이었습니다. 저 역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고난의 시기를 보내야 했죠. 

 

당시 도전과 실패의 흑역사를 들려주세요.

세포 분리를 위한 원심분리기와 혈장분리기를 중고로 300만 원, 50만 원에 각각 구입해 시작했어요. 수많은 시도를 펼쳤는데 이제 조금 되겠다 싶으면 또 헤쳐 나가야 할 게 생기고, 그러면 또 해결책을 찾아야 했습니다.  

초창기에는 세포 분리 작업에 보통 7시간이 걸렸습니다. 최은석 전문간호사가 밤낮으로 매달렸는데 분리된 세포가 적으면 이식할 수 없었어요. 밤중에도 키트를 구해서 또다시 작업했습니다. 새벽에 결과가 나오면 진단검사의학과 박찬정, 장성수 교수가 체크했고요. 방사선종양학과 안승도 교수는 휴일에도 전신방사선을 시행해줬습니다. 환자에 대한 애정이 깊은 동료들을 만난 것이 참 행운이었습니다. 모두 실력과 책임감, 오기를 보여줬죠. 그런데도 이식 후 생착에 실패하면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조심스럽게 재이식을 제안했을 때 선뜻 동의해 준 환자와 보호자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그들의 응원과 격려 속에 실패를 줄여가며 좋은 결과를 축적했습니다.

 

▲ 2020년 조혈모세포이식 1,000례 기념 의료진과 함께.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임호준 교수.
▲ 지난해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은 소담이와 함께 포즈를 취한 임호준 교수.

 

어려운 시도였기 때문에 많은 용기도 필요했을 것 같아요.

첫 도전이 생각나요. 9살 용진이는 백혈구가 제로 상태였고 폐렴이 재발해 조만간 사망할 것이 명백했습니다. 의욕적으로 설득하자 보호자도 동의해 주셨죠. 그런데 이식 직전까지 제 마음 한구석에는 보호자가 포기해줬으면 했습니다. 솔직히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치료에 성공한 후에 두려움을 극복해야 행복도 찾아온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식 후 합병증이 생기면 억대 치료비가 드는 치료법을 조금 더 연구해서 2007년부턴 아예 기법을 바꿨습니다. 12명의 재생불량성빈혈 환자의 이식에 성공하면서 우리의 경험을 세계 학계에 보고했고 많은 논문에 인용됐습니다. 여러 의료진의 노력과 병원의 지원으로 2004년 100례에 불과했던 조혈모세포 이식이 2020년에 1,000례의 결실로 맺어졌습니다.

 

그동안 만난 환아들은 교수님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요즘 7살 소담이의 병실을 찾을 때마다 웃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 어깨에 진 짐이 무거워 보여요”라고 하길래 내가 너무 처져 있었나 했더니 대뜸 “멋짐”이라며 손하트를 보여줬어요. 저도 손하트로 답했죠.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고 건강해진 소담이를 보면서 무한한 행복을 느낍니다. 아이들은 저를 만나 치료 기회를 얻고 저는 아이들에게서 행복을 느낍니다. 덕분에 난치성 혈액질환 및 소아암 환아들과 늘 도전과 감사가 있는 28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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