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환자 이야기 리하의 두 번째 심장 2023.04.17

 

 

 

세 번의 유산 끝에 생긴 아이였다. 이번에는 마음을 비우려고 애쓰며 열 달을 기다렸다. 리하는 보통 신생아의 20%의 심장 기능만 가지고서 가까스로 우리와 만났다. 중환자 치료를 받고 퇴원해 약물 치료를 이어갔지만 1년이 지나지 않아 컨디션이 급격히 떨어졌다. 심장 이식만이 살길이었다.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에 도착해 누군지도 모르는 의료진에게 울며 매달렸다. “아이에게 큰일이 나면 저희도 못 살아요. 제발 좀 살려주세요.”

 

 

물 한 모금만 더

의료진은 리하가 하루에 마실 물을 60ml로 제한했다. 요구르트 한 병도 채 되지 않는 양이었다. 심장에 무리를 주지 않으려는 조치였지만 중환자실을 오가며 진이 빠진 아이는 매일 물을 달라고 울었다. 더 좋은 걸 먹이고 입히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인데, 물 한 모금도 줄 수 없는 엄마가 되어버렸다. 울던 아이가 잠들면 내가 울기 시작했다.

심장을 언제 이식받을 수 있는지, 리하가 얼마나 버텨줄 수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심장이식 대기를 하면서 에크모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체외형 심실보조장치 치료술을 하려고 합니다.” 소아 환자에 시행하는 일이 드문 치료였다. 보호자의 동의 여부를 묻는 순간에 생각나는 건 딱 한 가지였다. “그 장치만 달면 리하가 물을 마음껏 마실 수 있는 거죠? 그러면 당장이라도 할게요.”

 

우리가 만난 작은 세상

2022년 5월 4일 리하는 체외형 심실보조장치를 몸에 연결했다. 소형 냉장고 크기의 장치가 피를 순환시켰다. 계속 전기가 통해야 하다 보니 콘센트 길이만큼 리하의 행동반경도 제한됐다. 몸과 연결된 호스가 구부러지면 피가 통하지 않았다. 그러면 병동 가득히 알람이 울렸고 간호사들이 병실로 달려왔다. 알람이 또 울릴까 봐 온 신경이 호스에 쏠렸다. 걸음마를 막 시작한 리하가 어디로 어떻게 움직일지 몰라 불안했다. 아예 리하를 안고 몇 달간 생활했다. 매일 열심히 소독했지만 호스가 몸에 닿는 부분이 감염되어 2~3주간 크게 앓기도 했다. 병간호를 하면 할수록 조심할 것도 많고 신중해졌다. 병실 문밖을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리하와 내 세상은 작은 병실이 전부였다. 

답답함에 병실 문을 열어둔 어느 날 “리하야 굿모닝~” 복도에서 다정한 인사 소리가 들렸다. 병실 앞에는 병동을 청소해 주는 분들의 공간이 있었다. 리하의 사정을 알고 오갈 때마다 우리의 안부를 물으며 챙겼다. 점차 간호사, 방사선사, 사회복지사 등 모든 직원이 리하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누군가는 사탕 하나 음료수 하나를 쥐여 주었고, 누군가는 “리하가 너무 귀여워서 늘 보고 있으려고요”라며 리하 사진이 담긴 휴대폰 배경 화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리하는 자신을 예뻐하는 목소리들을 기억했다. 나에게도 불안과 고립감을 잠재워주는 위로의 목소리였다. 이제 이곳에 우리 둘뿐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랑받는 만큼 리하의 애교도 나날이 늘었다. 내가 “윙크!” 하면 리하는 눈을 깜빡이며 모두에게 화답했다. 알람 대신 웃음소리로 가득한 병실이 되었다. 

 

마음 아픈 선물

염증을 소독하고 나면 리하에게 과일을 주곤 했다. 어느 날 주치의가 “오늘은 검사해야 하니까 금식할게요”라고 했다. 리하의 컨디션도 좋고 검사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어서 의아했다. 이유를 캐묻자 조심스럽게 이식 가능성을 알려 주었다. 심장 이식을 기다린 지 반년 정도 됐을 무렵이었다. 머리가 하얘졌다. 병원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 할지 몰라 힘든 순간에도 빨리 이식받게 해달라고 차마 기도할 수 없었다. 내 아이에게 온 기회가 누군가는 자식을 잃는다는 의미였다. 가슴이 미어지는 생명의 고리에 눈물만 흘렀다. “또 울고 계실 줄 알았다니까요~” 병실에 손님이 찾아왔다. 담당 교수가 바뀐 뒤에도 틈틈이 리하를 챙기던 소아청소년심장과 김미진 교수였다. 서울아산병원에 처음 왔을 때 리하의 심장 초음파를 봐준 분이기도 했다. 당시 정신없이 울며 매달리던 나에게 우리 병원에 무사히 왔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이제 어머니가 강해져야 한다고 주문했었다. 드디어 이식 결정이 나자 나와 리하를 응원하러 와준 것이다. “주말에 리하가 생각나서 기도했는데 이번 수술도 잘 이겨낼 거예요.”

검사 이야기를 들은 때부터 모든 게 순식간에 진행됐다. 10월 21일 새벽 5시. 소아심장외과 최은석 교수의 집도로 수술이 시작됐다. 그리고 오후 3시에 리하를 볼 수 있었다. 최 교수는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됐다며 리하가 수술팀을 잘 도와줬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동안 어머니가 제일 수고 많으셨어요.” 

 

고마워, 엄마한테 와줘서

리하는 중환자실을 거쳐 5일 만에 병실로 올라왔다. 예상보다 회복이 빨랐다. 다만 졸릴 때마다 엄마가 사라질까 봐 불안해하며 심하게 울었다. 중환자실에 다녀온 환아들이 겪는 문제라는 걸 전해 들었다. “엄마 여기 있잖아, 이제 괜찮아. 다 괜찮아.” 리하가 엄마를 원할 때 꼭 곁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2022년 12월. 우리는 9개월 만에 대전의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올봄, 이른 벚꽃 소식이 들렸다. 한동안 감기와 장염으로 옴짝달싹 못 하던 리하와 집을 나섰다. 외출이 조심스러운 엄마의 마음도 모르고 리하는 미끄럼틀 계단을 씩씩하게 걸어 올랐다. 가장 높은 미끄럼틀 위에 서서 걱정하지 말라는 듯 윙크했다. “어, 어, 천천히!”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리하는 미끄러져 내려와 내 품에 쏙 안겼다. “고마워, 리하야. 엄마한테 와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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