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환자를 살릴 수 있는데 어떻게 포기합니까” : 심장내과 현준호 교수 2023.09.04

심장내과 현준호 교수

 

 

심부전 심근병증 환자가 이식 당일에 수술을 완강히 거부했다. 환자의 딸도 그 뜻을 꺾지 못해 눈물만 흘렸다. 현준호 교수는 당황스러웠지만 딸부터 차근차근 설득해 결국 환자의 마음까지 돌릴 수 있었다. 이식 수술 후 환자는 한동안 구토와 패혈증에 시달리며 ‘죽을 고생’을 다했다. 그리고 지금은 정상인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외래에서 만난다. “그때의 경험이 제 머릿속에 각인됐어요. 환자들의 결정권도 존중하지만 제가 어떻게든 끌고 가야 할 부분이 있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된 거죠. 환자를 살릴 수 있는데, 어떻게 포기합니까.”

 

도자기를 빚듯이

현 교수는 심장내과에서도 심장 기능이 가장 떨어진 심부전 환자를 주로 만난다. 숨이 차서 외출이 힘들고 식사도 할 수 없는 환자들은 삶의 질이 엉망인 상태로 심장이식만을 남겨둔 상태다. 이식받을 때의 컨디션이 이식 후 성적에 매우 중요한 요소여서 현 교수는 환자 컨디션을 늘 세심하게 살핀다. “감염이라도 생기는 순간 심장마비가 와요. 장 괴사로 이식받기 전에 돌아가시는 분도 있고요. 사소한 기침이나 허리 통증에도 그 원인을 찾아야 하죠. 그러려면 성실하게 들여다봐야 해요. 제가 보려고 하는 만큼만 보이거든요. 그야말로 도자기를 빚듯이 환자 상태를 하나하나 다듬는 과정입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심장이식까지는 입원 치료가 불가피하다. 환자만큼 의사에게도 큰 부담이 따른다. “의료진의 수고와 병원 수익만 따지면 환자분들께 최선의 도움을 드리기 어려울 거예요. 그런데 우리 병원은 여러 파트가 긴밀하게 연결된 중증 치료를 통해 의료 수준을 성장시키고 발전해 왔죠. 그러한 가치가 저에겐 자부심이 됩니다.”  

심장이식 후 내성균이 발생해 누워만 지내던 환자가 있었다. 회진 때마다 현 교수가 잠깐씩 재활 동작을 진행했다. 처음엔 다리가 후들거려 안기다시피 하던 환자가 몇 개월이 지나자 드디어 두 발을 땅에 디딜 수 있었다. “잠깐 창밖의 한강 좀 볼게요. 코 앞에 두고도 참 오랜만에 보는 거죠?”라는 현 교수의 말에 환자는 시선을 고정한 채로 한참 울었다. “나는 이미 하늘에 있어야 할 사람인데 새로운 인생을 만나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오기와 실패, 그리고 즐거움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던 학창 시절, 유일한 관심사는 생물 과목 정도였다. 그래서 의대를 지망하자 담임 선생님은 네 성적으로는 못 간다며 흘려 넘겼다. 오기가 발동해 공부를 시작했고 뜻하던 의대에 합격할 수 있었다. 뒤늦은 학구열은 가속도가 붙었다. 다이내믹한 심장 분야에 관심이 생겨 심장 분야에 강한 서울아산병원에 지원했다. 자신만만하던 행보는 내과 전공의 시험에서 떨어지면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군대부터 다녀와 후배들과 내과 전공의를 시작했지만 잘 따라가지 못하자 식욕이 사라지고 잠도 오지 않았다. 첫 한 달 동안 체중도 10kg가량 줄었다. “크게 무너졌던 경험이 결과적으로는 좋은 약이 됐어요. 나는 별것 아니라는 걸 느끼곤 하나씩 다시 쌓아갔죠. 서울아산병원에 오는 환자들의 상태가 워낙 심각한 상태이기 때문에 하나하나 지켜보면서 배울 것도 많고 뭔가 쌓이는 게 느껴질수록 뿌듯하더라고요.” 심장내과 중환자실을 맡는 동안 환자 상태가 좋지 않으면 퇴근도 미루고 환자 옆을 지켰다. 교수 회진에선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새로운 걸 발견하면 누구에게라도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내가 즐거운 일’이기에 밤을 새우고 환자 상태에 따라 마음을 졸여도 상관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끝없는 질문의 답을 찾으며

15년 전, 출산 전·후로 주산기 심근증을 진단받았던 환자가 매우 악화된 상태로 병원에 왔다. 주산기 심근증의 경과가 좋다고 알려진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었다. 일반적인 검사에선 그 이유를 알기 어려워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다. 검사 결과는 비후성 심근증이었다. 심장 이식을 진행하면서 적출된 심장의 조직검사 역시 유전자 검사와 같은 결과였다. “이제는 유전자로 심근증의 원인을 구분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치료법은 크게 달라지지 않더라도 경과 예측이 가능해지는 거죠. 가끔 이식해야 된다, 아니다를 명확하게 결정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그런데 원인이 분명하면 치료 결정도 명확해질 수 있죠. 앞으로 심장 분야에서 유전적 변이대로 질병을 분류하는 시대가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심장 이식과 관련한 연구가 워낙 적고 수행도 쉽지 않아 여전히 모르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기대되는 것도 많다. “제 욕심은 분명해요. 진료를 잘 보고, 뭔가 다른 결과를 만드는 의사가 되는 겁니다. 진료를 마치면 환자에게 더 친절하게 공감해 줄 수는 없었나 자책하곤 합니다. 그런 점에선 부족함도 있지만 치료 실력만큼은 환자분들께 신뢰를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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