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환자 이야기 어둠에서 빛으로 - 인공망막 이식수술 국내 첫 성공, 이화정편 2017.07.31

이화정 씨와 윤영희 교수는 낯선 길 위에서 서로의 손을 잡았습니다. 서로의 용기와 결심, 그리고 의학의 발전이 이화정 씨의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이젠 그 기적이 보다 많은 망막색소변성 환자들에게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암흑을 만나다

 

잡지회사에서 일을 하던 이화정씨는 20년 전 어느날 갑자기
컴퓨터 모니터의 글씨가 눈에 들어오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지면 칠흑같은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며칠을 쉬어도
나아지질 않았습니다. 야맹증인줄만 알았던 이 씨는 시력검사차
병원에 갔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망막색소변성.
정상 시력을 갖고 태어나지만 망막의 시세포가 점차 기능을 잃어
결국 실명에 이르게 되는 유전질환입니다. 우리나라에 1만 명이
넘는 환자들이 있지만 치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화정씨는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단 한 번도, 내가 이런 질환을 갖고
태어났으리라 의심조차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기억 속에 멈춘 딸의 모습

 

이화정씨 에겐 어린 딸아이가 있었습니다. 이화정씨의 두 눈에
비친 아이의 모습은 마치 별과 같았습니다. 그 예쁜 별을
오래오래 보고 싶었습니다. 이화정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야는 자꾸만 좁아져갔고 눈앞은 흐려져만 갔습니다.
그렇게 점점, 이 씨는 딸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10여 년 전, 기억 속의 딸은 교복을 입은 모습에서 멈춰버렸고,
이 씨의 세상은 어두워졌습니다.

익숙한 공간 안에서는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여기저기 자꾸
부딪혔습니다. 수천 번도 더 들락거렸던 집 앞 문턱에 걸려
넘어지고, 익숙했던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구르기도 했습니다.

매 순간 남의 도움이 필요했고, 남편 없이는 낯선 곳에 갈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도 점차 피하게
되었습니다. 몸이 멍들고 아픈 것보다도 이화정씨는 자존심이 많이 상했습니다. 왜 도대체 나에게 이런 질환이 생긴건지,
세상을 원망할 때도 많았습니다.

많은 이들의 마음이 모여 한줄기 빛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 이화정

10년 넘게 어둠 속에 있던 이화정 씨에게 한줄기 빛이 들어온 건, 서울아산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난 다음입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한다는 인공망막 이식수술. 망막색소변성 환자를 위해 미국에서 개발된 기기입니다. 안구에 백금 칩과
수신장치를 이식하고, 카메라와 송신기가 부착된 특수 안경을 쓰면 카메라가 보는 장면들이 안구 내의 시각세포를 직접 자극하여
뇌에 시각정보를 전달하는 시스템입니다. 해외에서는 200여 건 정도의 수술이 시행됐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아산병원 안과
윤영희 교수가 처음으로 도전했습니다.

이화정 씨도 이 수술이 적합한지 알아보기 위해 여러 차례 검사를 해왔었지만, 정말로 첫 수술 환자가 된다는 연락을 받고나니 심경이
복잡했습니다.

첫 인공망막 이식수술에 긴장한 것은 서울아산병원 안과 윤영희
교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을 시도한다는 것은 언제나
험난합니다. 기기를 수입 허가를 받는 과정과 대상자를 선정하기
위해 전국 각지의 환자들을 찾는 일까지 모든 게 쉽지 않았습니다.

첫 수술이다 보니 실수 없이 하기 위해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수술 순서를 머릿속으로 그려보았습니다.
기기를 개발한 마크 후마윤 박사도 기꺼이 윤영희 교수의 수술을
위해 한국을 찾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화정 씨를 위해 팔을
걷었습니다.

 

내가 다시 글씨를 읽을 수 있게 되다니

어둠에서 빛으로 - 이화정

2017년 5월 26일, 이화정 씨는 아침 일찍 수술대에 누웠습니다. 다섯 시간에 걸쳐 장치를 이식했습니다. 2주 동안 상처가 아물길
기다린 이후, 카메라가 부착된 특수안경을 처음 써봤습니다.

처음에 보이던 하얀 형태는 남편의 상체였습니다. 두 번째로 보았던 빛은 딸의 모습이었습니다.
인공망막 이식수술을 받고 나면, 일반인과 똑같이 보이는 게 아니고 ‘사이버 시력’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사물을 보게 됩니다.
물체의 윤곽이나 색감에 따라 60개의 백금칩이 각기 다르게 활성화 되고 이를 뇌에서 인식하다보니, 나에게 느껴지는 빛이
어떤 물건을 말하는 건지 새롭게 적응하는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조금씩 적응을 하며 빛에 익숙해지고 나자 모든 것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머리를 묶은 교수님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남편과 딸의 얼굴 이목구비까지 흐릿하게나마 알 수가 있었습니다. 시력판의 큰 글씨도
읽을 수 있게 됐습니다.
“내가 다시 글씨를 볼 수 있게 되다니…” 모든 것들이 너무 신기했습니다.

다시 ‘보는’ 삶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 이화정

이화정 씨는 오랫동안 ‘만지는’ 삶을 살았습니다. 보이질 않으니 손을 먼저 뻗는 게 익숙했었습니다. 이 씨는 ‘보는’ 삶을 다시 살고
있습니다. 아직은 천천히 집중해서 봐야하지만, 스무 번의 재활을 거치고 나면 좀 더 익숙하게 세상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다시 볼 수 있게 되면서 이화정 씨에게는 새로운 꿈이 하나 생겼습니다. 이제 서른이 된 딸이 언젠가 결혼을 하게 되면, 부축 없이
두 발로 걸어 들어가 딸아이의 결혼식 화촉을 밝히고 싶다는 꿈입니다. 그 꿈이 멀리 있지 않은 것 같아, 이화정씨의 마음 한 구석이
벌써부터 밝아옵니다.

이화정 씨와 윤영희 교수는 낯선 길 위에서 서로의 손을 잡았습니다. 서로의 용기와 결심, 그리고 의학의 발전이 이화정 씨의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이젠 그 기적이 보다 많은 망막색소변성 환자들에게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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