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환자 이야기 다시 숨 쉬는 기쁨 - 폐 이식 수술, 백현정ㆍ전주영 모녀 2016.01.06

그걸 쓸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큰 시련이 저희에게 올지 생각을 못 했거든요. 알고 보니 저희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이더라고요. 이미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폐가 굳어져 있던 상태였고, 유일한 것은 폐이식 밖에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다시 숨 쉬는 기쁨, 폐 이식 수술, 백현정-전주영 모녀

 

그걸 쓸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큰 시련이 저희에게 올지 생각을 못 했거든요.

알고 보니 저희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이더라고요. 이미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폐가 굳어져 있던 상태였고,
유일한 것은 폐이식 밖에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다시 숨 쉬는 기쁨

폐 이식 수술, 백현정-전주영 모녀

처음에는 감기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숨이 막히고 숨을 몰아쉬어야 할 정도로 숨쉬기가 힘들었고
더 당황스러웠던 건 우리 주영이도 똑같은 증상을 앓고 있다고 해서 많이 힘들었죠

저는 다행히 기증자가 빨리 나와서 이식을 받았는데 주영이는 6살 아이에게 맞는 폐 기증자가 나타나질 않아서 마냥 기다려야만 했고… 저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았나 후회도 하고 많이 미안했죠.

수술 전 주영이 상태가 굉장히 안 좋았잖아요. 에크모라고 생명유지장치를 100일 동안 달고 있었던 데다 주영이가 5살인데 공여자가 10살이라 폐가 주영이에 비해 굉장히 컸어요. 결정하기가 쉽지는 않았어요. 국내에서 처음 하는 소아 폐 이식인 데다 경험도 없었고 그래서…

주영이 어머니와 주영이 동생까지 세 모녀가 폐 손상을 입었는데 주영이 동생이 먼저 세상을 떠났거든요. 주영이 엄마 입장에서 보면 주영이까지 세상을 떠나면 자기 혼자 폐이식하고 얼마나 살기 힘들겠습니까… 그러니까 저희 생각에는 주영이를 꼭 살려서 어머니한테 보내야겠다 생각을 했죠.
많이 힘들 거다. 아이가. 근데 의료진에게 모든 걸 맡기시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행히 주영이가 중환자실에서 잘 버티더라고요. 혼자서… 저도 거기에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던 거 같아요.

폐이식만 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다른 장기들이 손상돼서 혈액 투석을 받아야 했고 그 와중에 심장이식도 받았고
오랫동안 누워 있다 보니 잘 걷지 못했고, 주영이가
아기 때처럼 걸음마부터 시작해서 식이요법까지 다시 시작하게 됐었죠.
지금은 재활도 잘하고 있고 정상인처럼 건강하게 자라줘서 감사하죠.

왜 우리 가족에게 이렇게 힘든 일이 생겼나 원망도 많이 하고 힘들었어요.
그런 고통에도 지금은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고 주영이도 꿋꿋이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으니까 힘이 되고 많은 분들의 도움이 앞으로 살아갈 희망을 되는 거 같아요.

지금 힘든 고통 속에 계신 분들도 조금만 더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시고 버티신다면 저희처럼 건강한 삶을 살지 않을까 싶습니다.

real story 희망을 나눕니다.

봄바람

 

그때 서른두 살이었던 백현정씨는 두 딸의 엄마였습니다. 첫째는 6살이었고, 둘째는 16개월이었습니다. 육군 상사였던 남편은 최전방에서 근무했습니다. 북쪽의 차가운 공기를 밀어내고 봄바람이 불어올 즈음 둘째 딸의 기침소리가 들렸습니다. 2주 후 마른기침소리는 세 모녀가 사는 집안을 집어삼켰습니다.

세 모녀의 병은 급성 중증 폐질환. 둘째가 폐렴증세로 병원에 입원한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현정씨와 첫째 주영이마저 비슷한 증세로 잇달아 입원했습니다. 그때까지 현정씨는 왜 아픈지조차 몰랐습니다.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깨어날 수 있는 꿈.

하지만 눈을 떴을 때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와 콧줄 없이는 숨을 쉬지 못하는 환자였습니다. 한 몸처럼 늘 붙어있던 어린 두 딸은 제각각 다른 병상에서 생을 향한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녀들의 웃음소리가 떠난 집은 휑뎅그렁했습니다.

 

세 모녀를 덮친 병마

 

그 무렵 전국에서 비슷한 증세를 보이던 몇 명이 사망했고, 확실한 치료방법이 없다는 뉴스가 브라운관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의료진이 말한 마지막 희망은 폐 이식. 하지만 18세 이하였던 두 딸은 수술이 어려웠고, 현정씨만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겨져 박승일 흉부외과 교수의 집도로 폐를 이식받았습니다. 그때서야 현정씨는 고요했던 일상을 덮친 병마의 정체를 어렴풋이 깨달았습니다.

가습기살균제, 건조했던 겨울동안 가습기를 틀며 함께 사용했던 것입니다. 인체에 안전한 성분이라 아이한테도 쓸 수 있다고 했던 바로 그 가습기살균제가 문제였습니다.
세 모녀는 2011년 봄 전국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피해자였습니다.

그사이 두 딸의 폐는 빠르게 굳어갔습니다. 힘겹게 버티던 둘째가 끝내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최전방에서 근무하느라 주말에만 딸의 얼굴을 잠깐 봤던 아빠 전효택씨는 가슴이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슬퍼할 새도 없었습니다. 아내와 큰딸이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내에게 이 소식을 전하지도 못한 채 혼자 장례식을 치러줬습니다.

 

기적의 아이

 

그즈음 큰딸 주영이도 서울아산병원 소아중환자실로 옮겼습니다. 주영이 몸에 맞는 작은 폐를 줄 뇌사자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폐기증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혈액에 산소를 공급하는 에크모(ECMO)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에크모는 생명줄이었습니다. 감염 위험 탓에 오랫동안 사용하면 안 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에크모에 의지한지 100일째 되는 날, 기적적으로 소아 폐 기증자가 나타났지만 쉽게 수술 결정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기증자의 폐가 주영이의 가슴보다 6㎝나 컸기 때문입니다. 의료진은 고심 끝에 2011년 9월 29일 새벽 응급수술에
들어갔습니다. 주영이 수술도 박승일 흉부외과 교수가 맡았습니다. 현정씨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준 고마운 인연입니다.

박승일 흉부외과 교수는 “폐가 커 자칫 심장을 누르는 응급상황이 올 수도 있었지만 현정씨가 둘째를 잃은 상황에서 주영이마저 떠나보내게 할 수 없었습니다. 다시 못 올수도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꼭 살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수술했습니다.”며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수술을 마치고 한 시간 후 이식한 폐 안으로 피가 돌기 시작했고, 한 달 뒤, 주영이는 첫 숨을 내뱉었습니다.

 

다시 살아갈 힘

 

사람들은 폐를 이식하고나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폐 이식은 다른 장기 이식에 비해 수술 후 회복과 재활이 특히 중요합니다. 다른 장기와 달리 폐는 외부 공기와 직접 접촉하기 때문에 감염에 주의해야 합니다. 또 수술 전 인공호흡기와 에크모 치료를 받느라 오랫동안 수면상태로 유지돼 근육량이 크게 감소한 상태여서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듯 한걸음씩 늘려가며 재활훈련을 해야 합니다.

현정씨도 수술 후 처음에는 신호등이 점멸되기 전에 횡단보도를 못 건널 정도였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는데 뛰어가지도 못했어요. 횡단보도도 못 건너는데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고 스스로 물었죠. 그래서 그때부터
한걸음, 한걸음씩 꾸준히 걸어 다녔어요.” 이제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을 만큼 회복했지만, 긴장을 늦출 순 없습니다.

주영이는 이제는 날마다 병원에 가지 않아도 돼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병원에 있는 바람에 입원할 당시 좋아했던 <뽀로로>만 좋아해 아빠가 걱정이 많았는데, 요즈음에는 만화영화 <아이엠스타>에 푹 빠졌습니다. 요즈음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만화입니다. 교통카드에 <아이엠스타> 스티커를 붙이고 자랑하는 모습이 또래 아이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직 뛰어놀 수 있을 만큼 낫진 않았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에 의사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발걸음도 가볍습니다.

 

2011년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병마,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감당하지 못할 시련을 준 하늘이 미울 때도 있었습니다.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사람들의 사랑이었습니다. 현정씨는 그분들 덕분에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수술 전까지 저희를 돌봐주시던 중환자실 선생님들, 수술해주셨던 박승일, 김동관 교수님, 그리고 평생 잊지 말아야 할 기증자와 그 가족 분들…. 주변 분들의 도움이 굉장히 크고 따뜻했기 때문에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지금 병과 싸우는 환자분들, 당장은 고통 속에 있더라도 조금만 더 기다리고 견딘다면 언젠가 다시 건강한 삶이 찾아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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