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 건강 정보 즐거운 이별을 약속하며 2020.08.04

“기계에 오류가 난 것 같아요. 다시 채혈해 볼게요.” 간호사는 당황한 표정을 애써 숨기고 있었다. 재검사 후 의사가 다급하게 말했다. “지금 당장 대학병원으로 가세요!” 어리둥절했다. 아침부터 그치지 않는 기침이 문제였을 뿐 그렇게까지 아픈 건 아니었다. 굳이 떠올려 보자면 근래 들어 수상쩍은 몸의 신호가 있긴 했다. 얼굴이 창백해 보인다는 사람들의 인사, 잦은 어지러움, 곳곳의 멍 자국 등.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에서 추정 병명을 들을 수 있었다. ‘혈전성 혈소판감소성 자반증’. 오십 평생 처음 듣는 이름의 희귀 질환이었다.

 

인생의 중턱에서 만난 거센 바람

“혈소판 수치가 일반인의 1/10 수준입니다. 급성으로 혈소판이 감소하고 적혈구가 파괴되고 있어요.” 혈액내과 이정희 교수가 자세히 설명했지만 모두 이해되는 건 아니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마음 때문이었다. 차분히 앉아 검색해 봤다.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3개월 이내에 사망할 수 있다는 자극적인 정보만이 눈에 들어왔다. ‘왜 하필 나지? 내가 뭘 잘못했다고….’ 젊은 시절 남편의 직장을 따라 내려간 여수에서 유치원 원장으로, 인형극단 단장으로, 대학의 유아교육과 강사로 성실하게 살아왔다. 남편과 다 큰 자녀들이 서울로 올라간 후에도 여수에 남아 아이들 교육을 이어나갔다. 이만하면 잘 살아왔다고 자신한 만큼 배신감이 컸다.

입원 전까진 집과 응급실을 오가며 혈장교환술을 받아야 했다. 치료를 받고 나면 젓가락 들 힘도 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극심한 통증으로 응급차에 다시 실려 오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 조금만 거슬려도 화가 나고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치료는 하는데 왜 혈소판 수치가 오르지 않고 새카만 멍만 느는지 의료진에게 따지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던 표정과 목소리는 간데없었다. 어차피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네 명의 간호사

혈장교환술은 나쁜 혈장을 빼고 좋은 혈장을 투여하는 과정이다. 2시간 30분 동안 16~18팩의 다른 피가 몸에 들어오면 호흡곤란, 가려움, 메슥거림 등 신경계와 신장에 갖가지 반응이 나타났다. 중간에 뛰쳐나가고 싶을 때가 많았다. 하루는 치료 중에 소변을 보고 말았다. 매트를 흠뻑 적시고 바닥까지 흥건했다. 류경숙 간호사가 다가오자 당황해서 소리쳤다. “선생님, 가만두세요! 남편한테 전화해서 정리해달라고 할게요.” 평소 수업 중에 아이들이 소변을 보면 아무렇지 않게 치우곤 했다. 그러나 나이 오십을 넘기고도 내 몸 하나 통제하지 못하는 현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무너진 자존심은 눈물로 흘러내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선 다들 실수하니까 아무렇지 않게 나가시면 돼요.” “그래도….” 이때 이혜진 간호사가 하얀 시트를 깐 휠체어를 잽싸게 밀며 나타났다. “자, 공주님처럼 우아하게 앉아서 병실까지 가시죠!” 뜻하지 않은 실수에 한 번, 간호사들의 멋진 대처에 한 번. 나는 그날 크게 두 번 울었다.

다음번 헌혈실에선 누워있는 내내 간호사들을 지켜봤다. 류경숙, 임재명, 고은정, 이혜진. 네 명의 간호사가 잠시도 쉬지 않았다. 수치가 떨어지는 환자가 있으면 같이 호흡해 주고, 수치가 올라가면 응원해 주었다. 문밖에서 긴장과 불안을 오가는 가족에겐 질환에 대한 설명을 들려주며 안심시켰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환자가 스쳐 가는 헌혈실에서 뜻밖의 사람 사는 맛이 느껴졌다. 네 명의 간호사 덕분에 현실이 어떻든 살아볼 만하다는 안도감이 스며들었다.

 

교수님을 믿어요

쉽게 오르지 않는 혈소판 수치에 일희일비했다. 그때마다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완치까지 갈 수 있어요”라며 이정희 교수는 흔들림 없이 말했다. 그리고 내게 맞는 처방을 찾아 나가며 토요일까지 매일같이 들러 컨디션을 살폈다. 혈소판 수치가 어떻든 이 교수의 확신에 찬 표정 하나만 믿기 시작했다. 예고대로 5주 차부터 혈소판 수치가 조금씩 상승했다. 점진적인 상승세에 퇴원해도 되겠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남편에게 전화해 울먹였다. “교수님이 퇴원해도 된대요. 이런 날이 오다니 안 믿겨….”

퇴원해서도 면역억제제 주사를 맞으면 또 다른 고통이 기다렸다. 그때마다 얼음을 서너 개씩 씹어 삼켰다. 혀끝이 헐고 치아도 성할 리 없었다. 장기 복용 중인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으로 당뇨와 혈압약까지 추가되었다. 얼굴과 목이 퉁퉁 붓고 수염도 무성하게 자랐다. 오랜만에 마스크를 벗고 거울 앞에 섰을 때 내 모습에 놀라 비명을 질렀다. 남편은 허허 웃기만 했다. 이제 그 어떤 것에도 놀라지 않는 경지에 이른 듯했다. “우리 남은 인생을 세상에 보답하며 말동무, 길동무, 인생 동무로 재미나게 삽시다.”

25차 혈장교환술까지 진행한 요즘은 혈소판 수치가 일반인에 가까운 수준에 다다랐다. 먹는 약도 서서히 줄었다. 의료진이 일러준 잠 잘 자기, 밥 잘 먹기 등의 일상 수칙을 숙제처럼 철저히 지켰다. 인생은 육십부터라고 했던가. 거친 숨을 잠시 고르고 인생 후반전을 꾸려나가는 시작점에 서 있었다. “오늘은 어떠세요?” 외래에서 만난 이 교수의 표정이 밝았다. 내 몸이 더 좋아졌다는 징조다. “아주 좋아요! 앞으로도 선생님만 믿고 시키는 대로 할 거예요.” “그래요? 그럼 3개월 후에는 우리 보지 맙시다.” “네? 네네, 그럴게요!” 우리는 그렇게 즐거운 이별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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