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 건강 정보 베트남으로 날아간 기적의 불씨 2016.01.26

 

 

지난해 12월 18일, 베트남 탄손누트국제공항. 칠흑같이 어두운 공항에는 활주로 유도등만이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때 불빛을 깜빡이며 다가오는 것은 비행기가 아닌 구급차였다. 구

 

급차에서 내려진 의식 불명의 환자.

부풀어 올라온 배와 노랗게 변색한 피부가 아니더라도 이동용 침대 옆에 매달린 각종 약물 튜브에서 현재 그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 공항 구급대의 도움으로 환자가 비행기 위로 올려졌다.

 

환자의 옆을 분주하게 따르는 낯익은 얼굴의 의료진. 바로 송기원 교수와 김미선 간호사였다.  

 


그들은 왜 베트남으로 갔을까?


닷새 전이었던 12월 13일, 서울아산병원 간이식 수술방인 D로젯에 다급한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베트남 쩌라이병원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두 달 전 간이식 수술을 받았던 환자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베트남 의료진의 설명을 듣고 환자 상태를 확인한 송기원 교수는 그날 오후 바로 베트남으로 향했다.

 

해외 간이식 환자 관리를 담당하고 있던 남궁정만 교수에게도 같은 내용이 전해졌다. 그 시각 학회일정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있었던 남궁정만 교수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다.

 

“학회를 마치자마자 바로 호찌민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당장 비행기 표부터 구해야 했죠. 정말 정신없는 하루였습니다.”

 

송기원 교수는 12월 13일, 그리고 남궁정만 교수는 그보다 하루 늦은 14일 베트남 쩌라이병원에 도착했다.  

 


운명적인 만남 


한국에서 온 두 명의 의사는 잠자는 것도 잊은 채 환자 치료에 매달렸다. 그러던 중 베트남 의료진에게서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던 또 다른 환자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바로 알코올성 간경화를 앓고 있던 응웬(53, 남)씨였다. 몇 시간 뒤, 응급실에서 한국 의료진을 급하게 찾는다는 연락이 왔다.

 

“빨리 응급실로 와 주세요. 응웬씨의 상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서둘러 응급실에 가보니 응웬씨는 식도 정맥류 파열로 인한 과다 출혈로 쇼크상태에 빠져 있었다. 폐와 신장의 기능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었다. 송기원 교수와 남궁정만 교수는 응웬씨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환자를 살릴 수 있을까.’

짧은 순간이었지만 두 의사의 머릿속에선 많은 생각이 스쳤다.

 

간이식 수술 경험이 많았던 그들은 그곳에서 직접 간이식 수술을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급성간부전에 간신 증후군, 흡인성 폐렴까지… 합병증이 심한 환자를 그대로 수술할 경우 더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게다가 간이식은 수술 이후의 관리 역시 중요했다. 간이식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이곳의 의료진에게는 수술 후 관리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떤 상황도 보장할 수 없었다. 결국 환자를 한국으로 옮기기로 했다. 그것이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의식이 없는 환자를 비행기에 태워 이동하는 일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해결해야만 할 문제가 있었다. 환자뿐 아니라 기증자인 둘째 아들, 그리고 수술 후 그들을 간호할 가족과 베트남 의료진이 함께 국경을 넘기 위해선 비자와 항공기가 필요했다. 현지인들은 3일 이상이 걸릴 거라고 말했다.

 

송기원 교수는 현지 코디와 함께 영사관과 항공사에 직접 접촉했다. 환자의 위급한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관계자들을 설득하기를 수차례.

 

반나절을 꼬박 매달린 뒤에야 비자와 항공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 즉시 비행하는 동안에 필요한 장비와 약품들을 챙겼다. 남궁정만 교수는 그들을 베트남으로 오게 했던 첫 환자의 치료를 위해 베트남에 남기로 했다.

 

그리고 12월 18일 밤 11시. 한국행 비행기가 베트남을 떠났다.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간 듯한 일주일의 마지막 밤도 송기원 교수는 뜬 눈으로 환자 곁을 지켰다.  



기적의 불씨를 지피다


한국에 도착해서도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환자에게 응급상황이 생긴 이후 이틀 정도가 더 소요된 상황이라 폐렴은 더욱 악화된 상태였다. 의료진은 당장 이식수술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했고, 곧 호흡기내과 고윤석 교수팀과의 협진으로 일주일간 폐렴치료가 이루어졌다.

 

일주일간의 집중 치료를 받은 뒤에야 폐와 신장의 기능을 회복한 응웬씨는 둘째 아들의 간을 성공적으로 이식받고 일주일 뒤에 의식을 회복했다. 한국에 도착한 지 두 달 만인 지난 2월 8일, 그는 의료진의 배웅을 받으며 건강한 모습으로 가족들과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한국에 대한 감사와 신뢰를 가슴에 가득 안은 채.  지난 12월 두 젊은 의사가 베트남에 전한 것은 한국의 뛰어난 의술만이 아니었다.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도 생명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들의 진심 어린 땀과 열정도 함께였다. 의료의 불모지에 생명의 불씨가 따뜻하게 지펴진 것이다.  

 


베트남에 심겨진 희망의 씨앗


2009년 6월 서울아산병원은 베트남 쩌라이 병원과 협약을 맺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어떻게든 당신들을 돕겠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두 명의 젊은 의사가 국경을 넘었다.

 

그리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서 있던 베트남 환자가 그들의 의술과 용기있는 결단 그리고 생체 간이식이라는 수술을 통해 다시 일어났다. 먼 땅 한국에서 건너와 새로운 생명을 선물한 한국 의료진의 이야기는 베트남에 널리 퍼져 이후 베트남 의학 발전의 씨앗이 될 것이다.  

 

서울아산병원은 지난 36년간 ‘우리 사회의 불우한 이웃을 돕는다.’는 설립 이념 아래 우리 이웃의 가슴에 사랑과 희망을 심어 왔다. 이 시대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 누구인지 진심을 다해 둘러보고 그들을 위해 쉽지 않은 미션을 수행하고 있는 우리 의료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StorytellingWriter 이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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