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의술로 삶을, 음악으로 마음을 치료하는 외과의사 2014.07.14

의술로 삶을, 음악으로 마음을 치료하는 외과의사 - 유방ㆍ내분비외과 손병호 교수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날부터 나의 목표는 외과였다.’


그가 레지던트 4년 차 치프 때였다. 늦은 밤 한 70대 남성이 급성 복막염으로 응급실에 실려왔다. 서둘러 개복한 환자의 장기를 본 순간 떠오른 의대 본과 일 학년 해부학 실습 첫날의 기억. 떨리는 손에 닿았던 카데바의 느낌은 차갑고 딱딱했다. 소장과 대장을 만져보았다. 따뜻했다. 그제야 눈앞의 장면이 또렷이 보였다. 불그스름한 간, 꼼지락 꼼지락 미동하는 장, 펄떡펄떡 뛰는 심장.
전혀 다른 두 개의 느낌이 교차하는 짧은 순간, 외과의사로서의 사명감이 밀려왔다. ‘역시 외과의사가 되길 잘했어. ’


‘노래하는’ 외과의사

우리나라 여성암 2위, 유방암. 그가 처음 전공을 선택할땐 사정이 많이 달랐다. 당시 유방암은 우리나라에선 드물게 발생하는 암이었다. 외과의로서 외과 수술의 꽃이라 불리는 장기이식 파트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지도 교수는 그에게 유방외과를 추천했다. 그의 성격이 섬세함을 요구하는 유방외과와 어울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선택은 옳았다. 그와 함께 수술을 마치고 나온 후배에게 물으니 수술실에서의 손병호 교수는 깐깐하기로 유명하단다. "가능한 한 절제하지 않고 수술할 수 있도록 꼼꼼하고, 철저하게 검사하세요. 사소한 부분도 재차 확인하시죠. 불가피하게 절제해야 하는 순간에도 환자의 미용적인 부분을 최대한 고려하세요." 그래서인지 수술을 받은 환자의 가슴을 보면 모양도 자연스럽고, 수술 후 합병증도 거의 없단다. 그에게는 유방암을 치료하는 기술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달에 한 번 100여 명의 유방암 환우가 함께 모여 목욕하고 교제하는 구의동의 한 찜질방에 손병호 교수가 나타났다. 그날 그의 손엔 메스 대신 마이크가 들려 있었다. 기타 반주와 함께 흐르는 노랫소리에 마주 앉은 환자들의 눈가가 붉어졌다. "교수님은 늘 환자에게 먼저 친근하게 다가가려고 하세요. 환우 모임이 있을 때는 늘 이렇게 노래를 준비해 오시죠." 유방암 수술 후 가슴을 잃은 환자의 상실감은 매우 크다. 빈 마음을 채우는 그의 노래에는 따뜻함이 담겨 있었다.


여자, 조금은 특별한 환자

 

유방암의 또 다른 대표적인 특징은 환자의 99%가 여성이라는 점이다. 생명만큼이나 자신의 여성성을 소중히 여기는 여자이기에 가슴 속 암은 떼어내도 마음의 흉터는 평생 남는다. 1989년 개소한 이래 유방암 수술 건수 전국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는 서울아산병원 유방암센터. 그 안에는 환자를 가족처럼 아끼는 의료진의 각별한 노력이 있었다. 10년째 계속되고 있는 핑크리본 목욕모임, 지방에서 올라온 환우의 쉼터, '새순의 집'. 여자의 마음을 세심하게 배려한 이 모든 아이디어는 유방암 수술 분야에서 최고라 인정받는 안세현 교수에게서 나온 것이다. 손병호 교수가 환우를 대하는 마음도 그의 스승 못지않다. 한 달에 한 번, 새순의 집에서는 '식탁토크'가 열린다. 의료진과 환우들이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평소 병에 대해 궁금했던 점, 진료받을 때 불편했던 점들을 격의 없이 자유롭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다. 손병호 교수의 아이디어였다.

"모의 수술을 위해 옷을 벗어야 할 때 수치심 때문에 마음속으로 많이 울었어요." 그곳에선 환자의 진짜 속마음을 들을 수 있다. "젊을 적엔 알코올중독으로, 이후엔 치매로 정상 생활이 불가능한 아버지를 모시고 평생 헌신하며 살아오신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으셨을 때 가족 모두 큰 충격을 받았었죠." 진료실 안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들도 보인다. 이렇게 환자, 보호자의 마음을 활짝 열고, 그들과 소통하며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건 군의관 시절 대학원에서 공부한 상담심리학의 영향이 크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시작한 공부였지만 의사가 된 이후엔 환자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진짜 좋은 상담가는 백지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이입되어 저라는 거울을 통해 그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말이죠.


손병호 교수의 연구실에는 환자와 보호자로부터 받은 편지가 한 면 가득하다.
편지마다 사람들의 진실하고 절실한 마음이 담겨있다.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 매일 읽고 또 읽는다는 편지에는 의사가 환자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의술뿐은 아니라는 것을, 환자의 희망과 기쁨, 즐거움 또한 의사의 영역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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