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씨앗과 로봇 2018.12.31

씨앗과 로봇 - 의공학연구소 최재순 교수

 

“저거다!”
1995년, 최재순 교수는 우연히 의료 공학 잡지에서 본 수술 로봇에 마음이 설렜다. 하지만 인공심장을 연구하던
공대 대학원생에겐 머나먼 꿈이었다.
7년 후 규모가 작은 수술 로봇 과제에 첫발을 들였지만 자신의 이름을 내건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하기까진 그
후로도 12년의 기다림이 필요했다.


기나긴 인내

의대 진학을 꿈꾸던 시절, 최재순 교수의 부모는 공대를 권유했다. 그는 절충안을 찾아 서울대 제어계측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원에
의공학협동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학원 시절 복강경 로봇 연구에 참여한 인연으로 이후 국립암센터에서 첫 정규 연구직
생활을 시작했다. 수술 훈련 시뮬레이터를 개발하고 각종 내부 과제를 수행하는 업무였다. 안정된 자리였지만 의생명연구에 중점을
둔 병원에서 유일한 공학자가 할 수 있는 연구는 한정됐다. 좀처럼 하고 싶은 연구에 추진력을 얻기 힘들었다. 서른일곱 살의
가장이었지만 그는 사표를 내고 대학 연구실로 돌아갔다. 불안정한 자리에 월급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심지어 연구실 후배들을
책임져야 하는 부담까지 안았다. 닥치는 대로 각종 연구과제에 참여하며 강의 아르바이트를 이어갔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다 보니 안 해본 연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꿈으로 간직하던 수술 로봇 연구 근처에는
가지 못했습니다. 답답했죠. 지방대학의 전임 교수 자리를 고민 끝에 포기하면서 자존감이 끝없이 무너졌습니다. 그 시기에
서울아산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영상의학과 서준범 교수의 영상중재시술 로봇 기획과제를 같이 해보자는 제안이었다. 어느덧 마흔두 살, 최 교수와 서울아산병원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열매를 모르고 뿌린 씨앗

 

수술 및 의료 로봇 국책연구과제 중에 우리 병원이 직접 주관하거나 실제적 총괄을
수행하는 과제의 총액은 650억 원에 이른다. 우리 병원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의공학 분야 연구과제도 연구비 총액을 집계해 보면 우리나라 전체의 약 10분의 1
규모에 달한다. 우리 병원이 의공학 분야의 숨은 강소 연구 그룹의 하나로
자리잡은 것이다. 2012년 의공학연구소가 출범하며 김송철 소장과 서준범 교수,
김남국 교수, 정낙언 차장, 그리고 최 교수가 모여 조촐한 회의를 시작한지 6년
만의 성과다.

“어느새 제가 수술 로봇 연구의 변방에서 중심부에 들어와 있더군요. 그 요인을
곰곰이 따져 보니 2003년부터 제가 여기저기 뿌렸던 연구의 씨앗들이 든든한
밑천이 되었습니다. 컨소시엄에 필요한 기술이나 로봇 소프트웨어 시뮬레이터는
물론 참여를 부탁한 분들도 이전에 연구하며 맺은 인연에서 비롯됐죠. 제 인생의
각기 다른 퍼즐 조각들이 뒤늦게 조립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최 교수는 함께 기술개발을 추진하는 임상팀과의 미팅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영상의학과 로봇을 개발했던 서준범 교수팀, 심장내과
시술 로봇을 개발하는 남기병·김영학 교수팀, 재활훈련 로봇을 연구하는 전민호 교수팀 등. 압도적인 소통 규모가 국내 연구 경쟁에서
한발 앞설 수 있는 비결이었다. 그는 연구에 앞서 임상의에게 냉정한 질문을 서슴지 않는다.

“해당 수술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나요?” “치료 비용은 얼마를 받죠?” “선생님이라면 이걸 샀을까요?”

임상의 시각에서 꼭 필요한 요구를 끌어내며 지속적인 스크리닝을 한다. 그렇다고 많은 고민과 노력이 꼭 성공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기껏 연구한 결과물이 너무 비싸거나 새로운 대책이 먼저 나오고, 예상 외의 장벽에 자주 부딪혔다. 그는 안전 평가나 인허가, 표준
규정에 대해 꾸준히 공부하며 실패 요소를 줄여나갔다. 표준 전문가가 아님에도 매년 열리는 전 세계 표준 회의에 자신의 연구 비용과
출장 기간을 할애하는 이유다.
간혹 공학자와 임상의 사이엔 생각하는 방식과 표현, 성장 환경의 차이가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최 교수에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것도 신기한 퍼즐의 일부입니다. 제가 공학자이지만 공교롭게도 국립암센터, 고려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까지 늘 병원 연구소에
있었습니다. 임상의와 보낸 시간이 길다 보니 그 간격을 정확히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는 거죠.”

 

아름다운 기술이 이끄는 선한 미래를 꿈꾸며

최 교수는 요즘 의료기기 회사 설립에 열심을 기울이고 있다. 연구중심병원 과제와 인공지능 의료 로봇 과제에서 개발 기술을 상용화할
회사를 직접 추진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핵심 기술을 성공적으로 실용화해 앞으로 경쟁력 있는 의료기기 회사들이 활발히 나올 수 있는
물꼬를 트는 것이 지금 자신의 위치에서 해야 할 책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가진 사명감의 뿌리엔 자녀의 아픔이 숨겨 있었다.

“올해 열다섯 살인 제 아이가 난치성 뇌전증을 앓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 발작할 때마다 아이가 살아나갈 미래를 떠올리게 되죠.
기술의 발전만큼 모든 사람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다지는 노력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세운 의료기기 회사의
일부분은 충분히 일할 수 있음에도 취직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할당할 계획입니다.”


이미 많은 연구 과제를 유치한 최재순 교수에겐 성공적인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는 부담감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는 더 큰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저는 기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의료기기 회사를 꿈꾸고 있습니다. 제가 젊은 시절 잡지에서 수술 로봇을
보고 흠뻑 빠져들었던 것처럼요. 누군가에게 즐거운 자극과 도전을 주는 결과물을 선보여 제 꿈을 완성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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