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저의 목표는 여성암 환자를 웃게 만드는 것입니다. 2014.07.14

저의 목표는 여성암 환자를 웃게 만드는 것입니다. - 산부인과 김대연 교수

 

영화, '나 없는 내 인생'에는


환자의 얼굴을 마주볼 수가 없어서 병원 복도에 놓인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환자를 만나는, 수줍은 의사가 나온다.
영화 속에서 의사는 딱 두 장면에 출연하는 단역이지만, 어린 두 딸을 두고 세상을 떠나야하는 환자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겨우 한 번 만난 의사에게 유언을 남기고 떠나는 주인공도, 그 부탁을 들어주는 의사의 심리도 이해하기 힘든 영화였다... 헌데, 산부인과 김대연 교수님을 만나면서 영화 속, 주인공과 의사의 감정적 유대가 어떤 것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김대연 교수님의 전공도 영화 속의 의사처럼 난소암이었다.


여성 환자에 국한된 것이기는 하지만, 산부인과는 출생에서부터 죽음까지,

사람의 인생 전체를 경험해볼 수 있는 전공이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을 시작으로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고, 출산을 하고, 불임 때문에 혹은 몸에 생긴 근종 때문에 고민을 하고, 폐경과 죽음을 맞이하는 생로병사의 전 과정을 맡아보는 곳이 바로 산부인과다. 또한 외과, 내과를 모두 경험해 볼 수 있는 전공이기에 그만큼 의사로서의 보람도, 경험의 폭도 큰 전공이다. 그런 매력을 보고 산부인과에 지원했던 김대연 교수님... 하지만 산부인과 의사로 살면서 적잖은 후회와 좌절을 경험했다고 하신다.


난소암, 자궁경부암 등 주로 여성암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선생님이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완치가 어렵다는 점. 같은 여성암이지만, 완치율이 70%가 넘는 유방암과는 달리, 난소암은 겨우 20% 정도의 완치율을 보이는 어려운 병.
난소암은 신체 구조상 조기 발견이 어렵기 때문에 환자가 병원을 찾는 순간, 치료하기엔 이미 늦은 상태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의사로서 가장 큰 보람은 환자를 낫게 하는 것일 터인데, 그런 능력을 보여줄 수 없는 환자들을 자주 만나다보니 선생님도 우울한 시간을 많이 겪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영화 속의 의사가 벤치에 앉아서 환자를 만나는 이유도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의 얼굴을 보는 것이 너무나 큰 고통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산부인과 생활 19년...

그 시간동안 선생님은 마냥 우울해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선생님은 산부인과 의사로서, 또 100% 여성 환자만을 만나는 산부인과 의사로서 자신만의 방향과 목표를 찾았다. 바로 '여성암 환자를 웃게 만드는 의사가 되자!'라는 것이다. 다시 기르면 그만인 머리카락이나 손톱을 잘라도 아무 데나 가서 아무렇게나 자를 수 없는 것이 여성의 마음. 머리카락이나 손톱에 비하면 백배 천배 소중한 생명을 맡긴 의사에게 환자는 태산처럼 높은 실력과 바다처럼 깊은 관심을 원할 것이다. 그런 환자들에게 건네는 의사의 한 마디에는 긴장과 불안을 덜어줄 수 있는 웃음이 담겨있어야 한다는 것이 김대연 교수님의 철학이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 머리가 쑥쑥 빠져야 하는데, 이렇게 숱이 많은 걸 보니, 예후가 좋으려나 본데요?'

'살이 빠지니까 콧대가 드러나네요. 어우~ 이 정도 콧대면, 처녀 시절에 남자 여럿 울렸겠는데요.'.... 환자를 '웃긴다'는 말은 말장난, 몸장난으로 사람을 웃기는 코미디언 같은 능력이 아니다. 살이 너무 빠져서 환자가 불안에 떨고 있다는 걸 알아채고, 항암치료 후에도 머리숱이 비교적 많이 남은 환자라는 걸 알아채는 의사여야만 던질 수 있는 애정 어린 농담들이다. 말기암 환자들에게 농담을 던질 수 있는 여유를 찾으면서 선생님도 비로소 의사로서의 보람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하는 선생님의 웃는 얼굴 뒤에는 신참의사시절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좌절을 겪어온 선생님의 웃지 못했던 과거가 있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선생님이 진심으로 웃을 수 있는 일이 시작되었다.

바로 자궁경부암 환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난소암보다 훨씬 발병률이 높은 자궁경부암은 여성암을 전공하는 산부인과 의사들에겐 가장 큰 적이었다. 자궁경부암 사망률을 키웠던 이유 중 하나가 산부인과에 대한 여성들의 거부감. 하지만 요즘은 산부인과에서 정기 검진을 받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자궁경부암을 조기 발견하는 경우도 늘었다. 모든 암이 그렇듯이 조기 발견을 하면 치료도 쉽고 완치율도 높아진다. 게다가 자궁경부암을 70%이상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이 개발되면서 자궁경부암 환자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의사로서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을 것이다. 엄마 손을 잡고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을 맞으러 산부인과를 찾아오는 여학생을 만났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선생님... 자궁경부암처럼 난소암을 이기는 그날엔 박장대소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의사가 환자를 웃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의사를 웃게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적어도 자궁경부암에 관한 한, 우리는 의사를 웃게 만드는 환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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