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상처 위에 일상을 재건하다 2020.06.09

상처 위에 일상을 재건하다 - 성형외과 한현호 교수

 

“오랜만이에요, 선생님” 한현호 교수는 환자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4년 전 유방암 수술 후 가슴에 피부조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던 환자였다. 암이 휩쓸고 지나간 자국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30대 중반의 미혼 여성이
암 투병 후 일상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길목이었다. 유방 재건 수술을 하며 환자가 앞으로 어떤 상실감도
들지 않기를 바랐다. 이에 보답하듯 환자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고 나타났다.
같이 아파했기에 웃음도 나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위기도 기회로 삼으면

암 수술과 연계된 파트에서 성형외과는 문을 닫는 역할이다. 비교적 젊은 연령대인 유방암 환자들은 자신의 상황과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교수님이 아파본 적이나 있어요?’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분도 계세요. 그런데 일생일대의 사건이 제게도 있었죠.”

머리카락을 살짝 들추자 길게 이어진 수술 자국이 선명했다. 수능이 100일도 남지 않은 때였다. 축구를 하다가 머리를 심하게
부딪쳐 정신을 잃었다. 외상으로 인해 뇌경질막 바깥에 피가 고이는 경막외혈종이었다. 기도삽관과 소변줄, 중환자실과 개두술 등
중환자가 겪는 처치를 모두 경험했다. 친구들이 막바지 수험 준비에 열을 올릴 때 그는 병실에서 미래의 꿈을 키웠다. 인생의
브레이크가 걸렸다고 생각했지만 소중한 성장점이 되었다.
의사의 감각으로 자가 조직을 재단하고 재건하는 과정을 보며 성형외과의 매력을 느꼈다. 특히 유방 분야는 섬세한 성향과
잘 맞을뿐더러 성형외과의 모든 술기를 다룰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 같았다. 그러나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수부 세부전문의로
자리 잡으며 꿈을 단념할 때쯤 서울아산병원의 제안을 받았다.

“기대하던 유방 분야였지만 제가 해오던 분야와 달라 걱정도 됐습니다. 하지만 미세 수술의 기본은 같을 테니 열심히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4년째 손발을 맞춰온 수술간호팀 홍매란 주임은 수술실의 그를 이렇게 설명했다.

“수술이 1~2시간 단축될 정도로 손이 빠르세요. 새로운 기구를 다양하게 써보며 끊임없이 연구하고요. 신규 간호사나 수술 스태프,
심지어 부분 마취 중인 환자에게 일일이 말을 걸어 긴장감을 풀어 주시죠. 그래서 수술실에 있는 누구나 수술이 잘 끝날 거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약속 뒤편의 책임감

 

유방 파트에 온 뒤 환자를 대하는 데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여성 암 환자들은 위안과 불안을 크게 오갔다. 환자가 미처 꺼내지 못한 상처와
상황을 상상해야 했다. 내 아내라면 어땠을까. 어떤 이야기가 필요할까. 그 대답은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되었다.

“예전엔 환자와 일일이 상의하며 원하는 바를 찾는 데 주력했습니다. 이제는 제가
알아서 잘하겠다고 말합니다. 그 후로 ‘갈팡질팡하던 마음이 사라졌다’
‘안심이 되었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안심시키기 위해선 무거운 책임과 노력이 따랐다.

“가슴은 몸 속의 지문과 같습니다. 환자 고유의 가슴 모양과 크기를 찾는 게 저의
숙제죠.”


반대편 가슴 모양이나 수술 후 가슴이 변할 만한 요소를 모두 고려해 재단하고
수술에 임한다. 앞으로 방사선이나 호르몬 치료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지, 가슴
모양이 어떻게 늘어질지 등도 세심히 예측하여 재건과 미용 영역을 균형 있게
잡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제 고민과 노력을 환자들이 몰라도 상관없어요. 그런데 환자 한 분 한 분이 제게 그냥 지나치는 환자가 아니라는 느낌은 꼭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환자의 마음으로 수술실에 서면서

유방 재건 수술 후 가슴 신경이 끊어진 환자들은 나무토막 같다는 느낌을 토로한다. 감각이 없어 가슴에 찜질을 하다가 화상을 입는
환자도 있다. 가혹한 상황을 이해시키면서 조금 더 나은 조건을 만들고 주고 싶은 마음을 매일 다진다. 그래서 허벅지와 엉덩이 조직을
이용한 재건 수술도 진행하고 있다. 배 조직을 이용한 재건 수술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렵지만 뱃살이 없거나 배의 흉터를 원치
않는 환자, 출산 전인 환자에게 보형물 외의 선택지를 줄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수술실에 서면 없어진 것을 만드는 엄청난 역할을 부여받았다는 걸 자각하게 됩니다.”
 


수술하는 동안 확대경의 무게가 목과 어깨를 짓누른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겁게 느껴지는 건 환자의
아픔이다. 최선을 다한 치료에 건강한 일상을 되찾길 바라는 간절한 기도를 보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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