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치료의 단서는 환자에게 있다 2014.07.14

치료의 단서는 환자에게 있다 - 류마티스내과 김용길 부교수

 

의사는 의대 6년, 수련의 1년 그리고 전공의 4년을 거쳐야 비로소 외래 환자와 직접 마주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류마티스내과 전임의에게는 2개월의 관찰기간이 더 주어진다. 지도 교수를 따라다니며 그가 내리는 진단을 어깨너머로 훔쳐보고 자신의 실력을 최종 점검을 하는 시간이다. 앞으로 다뤄야 할 질환이 만만치 않다는, 선배들의 경고 섞인 배려다. 10년 전, 외래 진료 첫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의 첫 환자는 *‘루푸스’ 환자였다. “몇 년째 약을 먹어도 큰 차도가 없는 걸 보니 오진이 틀림없습니다. 다시 한 번 진단해 주세요.” 재검사 결과, 역시 루푸스였다. 의심과 걱정, 두려움이 가득한 환자를 바라보며 앞으로 그가 짊어지고 가야 할 책임의 무게가 느껴졌다.


천의 얼굴을 가진 질환

눈에 보이는 증상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같은 병명을 가진 두 환자의 진료 기록을 들여다보지만 공통증상이 무엇인지 딱 잘라 시원하게 말해 줄 수 없다. 류마티스 관절염, 베체트병, 쇼그렌증후군… 증상 또한 사람마다 천차만별에 각자 다른 경과를 거치기 때문에 단편적 증상만 가지고는 병의 이름조차 규정하기 쉽지 않다. 류마티스 질환을 천의 얼굴을 가진 병이라 부르는 이유다. 전공을 선택하기 전, 김용길 부교수는 가족에게서 병의 실체를 보았다. “처음엔 손을 움직이는 게 불편해 보이는 정도였어요. 하지만 계속된 손가락 변형으로 문고리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셨죠.” 고달픈 환자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자연스레 의문도 커졌다. ‘도대체 어떤 병일까?’ 그는 그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진료와 연구, 두 마리의 토끼 모두를 잡아야

 

2000년대에 와서야 류마티스 질환은 큰 전환기를 맞았다. 이제껏 베일에 감춰져 있던 병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더 정확한 진단이 가능해졌고, *‘생물학적 제재’라는 새로운 치료제도 등장했다. ‘생물학적 제재’는 병명조차 알지 못해 전전긍긍하며 고통받던 환자들에게 치료의 희망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완치 불가능한 희귀 난치병으로 분류돼 있다. 임상의인 그가 연구에 대한 갈망으로 늘 목말라 하는 이유다. “외래가 없는 날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연구실로 오세요. 기초 의학자와의 합동연구에도 관심이 많으시죠.” 김용길 부교수는 류마티스내과 연구책임자로, 현재는 다양한 류마티스 질환의 진단툴 개발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그의 연구는 실제 임상에서 적용 가능한 중개연구를 목표로 한다. 2011년 연수를 위해 떠난 미국 스탠포드 대학 로빈슨 연구소(Robinson Lab)에서의 경험이 계기가 되었다. 그곳의 의학자들은 실제 환자 치료와 연계성이 높은 주제를 중심으로 연구했다. 그중 하나가 바이오 마커의 발견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그때의 연구결과를 실마리 삼아 ‘강직성 척추염의 바이오 마커 개발’을 진행 중이다. “우리 병원에 축적된 임상데이터는 세계 어느 곳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중개 연구 발전에 높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지요.”


천 마디 말을 들어줄 수 있는 의사

연구가 병의 진짜 얼굴을 발견하기 위한 과정이라면, 진료는 환자의 행복을 찾기 위한 준비다. 류마티스 관절염의 주증상은 손 관절염이지만, 아주 드물게 목 통증이 먼저 나타나기도 한다. 디스크 치료를 하다 별다른 변화가 없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류마티스내과까지 찾아온 환자가 있었다. 디스크 수술까지 계획하고 있었지만, 김용길 부교수와의 오랜 상담 끝에 류마티스 관절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약물치료 후 증상이 호전돼 수술을 피할 수 있었다.
“환자로부터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수록 더욱 정확히 병을 파악할 수 있어요. 모호한 증상을 호소하더라도 환자의 말 속에 결정적인 단서가 숨어있기 때문이지요.” 류마티스 질환을 치료하는 기술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환자의 몸속 깊은 곳에 숨어 드러나지 않는 아픔은 환자와의 오랜 대화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 김용길 부교수. 그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진단법은 자세한 문진 그리고 공감이다.

고등학교 시절, 수학 선생님은 젊은이들이 선망하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모교로 돌아온 사람이었다. ‘좋은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며 잘 살 수 있었을 텐데 왜 이곳까지 오셨을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이유를 알았다. “선생님은 자신이 공부해 찾은 답을 다른 누군가에게 가르쳐 주는 일을 좋아하셨던 분이었어요. 풀지 못한 문제를 들고 찾아온 학생들에게 고맙다고 하셨죠.”


답을 찾을 때까지 펜을 놓지 않으셨던 선생님. 그는 그런 의사가 되고 싶다.


* 루푸스 : 면역계의 이상으로 온몸에 염증이 생기는 만성 자가면역질환. 주로 젊은 여성에게 많이 발병한다.
* 생물학적 제재: 류마티스 관절염을 일으키는 물질을 차단하는 제재

보다 건강한 콘텐츠 제작을 위해 이 콘텐츠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말씀해 주세요.

뒤로가기

서울아산병원 뉴스룸

개인정보처리방침 | 뉴스룸 운영정책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