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샐러리맨이었던 아버지는 아들이 전문직을 갖길 바라셨다. 아들이 의사가 되었을 때 아버지는 무척 기뻐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의사’라는 직업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존경받아서만은 아니었다. 생명을 다루는 고귀한 일을 당신의 아들이 하게 됐다는 자부심이 더 크셨던 것 같다. 의사가 된 아들을 대견해 하시며 아버지께서 하신 당부는, “환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의사가 되라”는 것이었다. 젊은 정창희 선생님이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들 중에는 부모님 연배의 분들이 많다. 선생님은 진료를 볼 때마다 권위보다는 겸손한 의사가 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그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아버지의 당부를 늘 가슴에 되새긴다.
당뇨병은 혈당 수치가 아주 높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특별한 증상이 없다.
특히나 젊은 사람의 경우는 평소 건강에 신경을 쓰지 못하다가 뒤늦게 병을 발견하고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몇 해 전, 선생님에게도 그런 환자가 있었다. 40세 되는 젊은 남자의 다리에 상처가 생겼는데, 시간이 지나도 낫지 않고 무릎 근처까지 상처가 퍼졌다.
병원을 찾았을 때는 치료 시기를 놓쳐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비록 한쪽 다리를 잃었지만, 건강한 삶을 유지하게 된 환자는 선생님을 만날 때마다 감사 인사를 한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의사로서 과연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본다고 했다.
인사조차 허투루 흘려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선생님은 질문으로 답을 대신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 ‘감사합니다’는 인사를 받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환자가 밝은 얼굴로 전하는 ‘감사합니다’, 그것은 정창희 선생님에게 의사로서 사명감을 일깨우는 매우 강력한 주문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환자를 진료하지만, 선생님은 자신의 환자를 기억하려 애쓴다고 했다. 차트에 그날의 진료 결과나 처방도 적지만, 짧은 메모를 덧붙인다. 메모의 주된 내용은 환자가 지나가듯 말하는 소소한 일상들이다.
환자의 컨디션에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고 기록한다고 했다. 물론 치료를 위한 기록이지만, 이렇게 환자의 일상까지 적어놓은 차트는 환자를 이해하고 기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사실 의사와 환자로 만나다 보면, 몇 년을 만나도 서먹하고 대화의 내용도 질병에 대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환자가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친근한 의사가 되고 싶다는 선생님, 진료 차트의 깨알 같은 메모가 늘어갈수록 환자와의 거리도 그만큼 가까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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