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멋있어서 왔더니, 고생길이더라구요 2014.07.14

멋있어서 왔더니, 고생길이더라구요 - 흉부외과 정철현 교수

 

똘똘하지만 유약했던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자신과의 약속을 잘 지키지 못했고, 도전보다는 몸이 편한 게 좋았다. 40여년이 흐른 지금, 소년은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7시에 일을 시작하는 부지런쟁이가 됐다. 오전 8시, 자신의 연구실에서 올림픽대로를 내려다보며, '30분만 일찍 출발하면 될 텐데, 왜 이 시각에 막히는 올림픽대로를 타는 것일까?'라고 의아해하며 게으른 사람들을 구경하는 경지에 올랐다. 외유내강, 소년을 단련시킨 건 '흉부외과'. 한 편의 성장 소설 같은 정철현 선생님의 전공 선택 이야기는 의외로 단순하게 시작된다.


의대에 다니던 청년, 정철현...

어떤 전공을 선택할지에 대한 명확하고도 확고한 기준이 있었다. '지긋지긋하게 해온 게 공부이니, 골치 아프게 머리 쓰는 전공은 선택하지 말자. 나는 몸으로 뛰는 체질이다.' 그래서 의대생 중에서도 머리 좋은 학생들이 가는 내과는 일찌감치 포기하였다. 그렇다면 외과 중에서 어떤 외과를 가야 하나? 그런 생각에 푹 빠져 중환자실을 지나가고 있던 청년, 정철현이 목격한 장면은 흉부외과 선생님이 심장수술을 한 환자의 가슴을 열고 맨손으로 응급처치를 하는 장면. 수술을 마친 환자의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면서 급하게 손을 써야 되는 상황에서 맨손으로 심장 마사지를 했던 것이다. 숨이 멎었다던 환자는 기적처럼 다시 숨을 쉬게 되었고, 피범벅이 된 의사는 스텝들에게 뒤처리를 부탁한 뒤 말없이 중환자실을 빠져나갔다.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박력 있고 멋있어 보이는 의사는 처음 봤다. 바로 저거야! 흉부외과! 정철현 선생님은 그렇게 전공 선택을 하셨단다.


문제는 세상 사 다 그렇듯이 겉보기와 실제는 꽤 차이가 있다는 것...

 

흉부외과는 대학병원 내 수많은 분과들 중에서 가장 몸이 고달픈 곳. 인턴-레지던트 시절에 병원에서 먹고 자는 건 다른 과 의사들도 다 하는 일. 하지만 전문의 혹은 교수가 되어서도 레지던트처럼 살아야 한다는 게 문제. 가장 복잡한 수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심장 수술은 평균 4~5시간이 걸리는 대 수술. 게다가 수술 후에도 심장이 다시 뛰고 몸이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응급상황이 터지면 언제든 달려가야 하는 것. 그렇다보니 흉부외과 의사들은 스스로를 3D의사라고 표현할 정도다.


정철현 선생님을 괴롭혔던 또 하나의 문제는

흉부외과 의사는 심장내과 의사만큼이나 심장과 인체에 관해 이론적인 배경을 완벽하게 습득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 심장이라는 장기는 생명이란 단어와 동의어. 심장이 멈추면 곧 생명도 끝나기 때문이다. 일단 기본 구조가 복잡하다. 심장 수술을 하려면, 심장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여타 장기들도 함께 공부해야 한다. 또한 심장 안에서 물리와 화학 작용이 동시에 이뤄지기 때문에 물리와 화학 공부도 탄탄하게 해둬야 심장을 이해할 수 있다. 심장이 멈추면 생명도 멈추는데, 어떤 흉부외과 의사가 심장 공부를 게을리 할 수 있겠는가? 한마디로 누군가의 목숨을 걸고 하는 공부였다.


멋있어 보이고 복잡한 이론에 머리를 굴리는 게 싫다는 이유로 흉부외과를 선택했던 선생님은

전공의 과정을 끝내고 전문의가 된 뒤에도 한동안 공부하며 병원에서 청춘을 보냈다. 어느 날, 모처럼 일찍 퇴근한 선생님이 아이들과 놀아주려는데, 아내가 이런 질문을 했다. "얘들아, 아빠 어딨지?" 당시 3살, 5살이었던 아이들의 대답은 선생님의 가슴에 커다란 펀치를 날렸다. 눈앞에 있는 선생님이 아닌, 벽에 걸린 사진을 아빠라고 가리켰던 것. 그만큼 가정을 돌보지 못했다는 자책에 선생님은 많이 아파해야 했다.


하지만, 심장이라는 장기가 그만큼 중요하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목숨을 걸고

공부하고 연구해야 할 장기 아니겠는가? 정철현 선생님은 거기에서 위로를 찾는다. '누군가는 해야 되는 중요한 일을 지금 내가 하고 있다.' 어느 날, 응급실에서 전화가 왔다. 마르판씨 증후군을 앓고 있는 젊은 여성 환자가 대동맥 파열로 응급실에 온 것.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몸 안에서 대동맥이 터지면서 혈액 순환이 순식간에 엉망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 말은 곧 환자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다급한 상황이란 뜻. 게다가 환자는 임신 24주였다. 환자와 아기의 생명이 선생님의 손에 달려 있으니, 손상된 동맥을 잘라내고 인공 동맥을 끼워 넣는 수술이 얼마나 떨렸겠는가? 하지만 선생님은 그런 순간, 그런 환자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청춘을 바쳐가며 공부만 한 사람...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리고 환자는 무사히 출산을 해서 아이는 벌써 6살이나 되었다. 엄마 손을 잡고 외래 진료실로 들어오는 6살 꼬마 숙녀의 모습은 선생님에게 천사의 왕림처럼 감격스럽다.


이제 선생님은 새벽 6시에 일어나야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새벽 6시에 일어나 출근을 하신다. 이유는 두 가지. 첫 번째는 게을러지는 자신이 싫어서이고 두 번째 이유는 젊은 날의 선생님처럼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 후배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다. 선생님이 보시기엔 흉부외과 전공의들은 아직 의사라는 직업적 사명을 믿는 고마운 후배들이다. 계산 빠른 똘똘한 학생들이라면 몸도 편하고 돈도 많이 버는 과들을 택했을 것이다.
후배들도 한동안은 '내가 왜 흉부외과를 선택했을까?'하며 좌절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 뒤엔 후회할 짬도 없이 일이 휘몰아치는 시기도 겪을 것이다. 지금의 선생님처럼 후배들이 지난날의 고생을 달게 추억하며 뿌듯한 보람을 느끼게 될 그날까지 선생님은 후배들의 고생길에 기꺼이 동행이 되어주고 싶은 것.


누군가는 해야 할 값지고도 고마운 일을 거뜬히 해낼 수 있는 능력 있는 흉부외과 의사를 키우는 일...
선생님이 정하신 새로운 도전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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