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수술 시간은 평균 짧게는 5분에서 길게는 1시간 정도지만, 이 시간이 골든타임이다. 하루는 오후 진료가 다 끝났을 때 응급수술이 결정됐다. 간농양으로 다른 과로 입원한 60대의 여자 환자였는데 갑자기 ‘내인성 안내염’이 찾아온 것이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수술이 시작된 건 자정 무렵,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환자는 시력을 되찾게 되었다. 얼마 후, 선생님 앞으로 장문의 편지와 피아노 연주 음반이 도착했다. 수술을 받은 그녀는 피아니스트였다. 제때 수술을 받지 않았다면 그녀는 더 이상 연주 무대에 오를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시대 최고의 명의’라는 칭찬부터 편지의 마지막 줄까지 의사로서 들을 평생의 칭찬은 그때 다 들은 것 같다는 선생님. 환자의 평범한 일상을 지켜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의사로 살아가는 원동력이자 보람이라고 했다.
부산이 고향인 선생님의 집 아래층은 안과 병원이었다.
어린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찾는 동네 병원, 소소한 안과 검진부터 결막염 같은 진료를 봐주던 의사 선생님은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아들의 나이보다 더 많은 해를 의사로 살아오신 아버지는 일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현장에서 진료를 해오고 계신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자란 세 형제들 중 둘은 자연스레 의사가 됐다.
형님은 부산에서 망막 전문의로, 아버지와 형이 가는 길을 따라 이주용 선생님도 망막을 연구하고 치료하는 의사가 됐다.
‘의사 할아버지’란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아버지는 환자와 아들들에게 언제나 자상하셨다.
선생님에게 ‘의사’와 ‘아버지’란 이름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그에게 ‘좋은 의사’란 환자를 친절하고 대하고 자상하게 설명해주시던 아버지와 같은 의사다.
선생님의 전문 분야인 망막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어서 연구할 게 무궁무진하다고 한다. 최근에는 유전자를 이용한 망막변성 치료에 관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는데, 특히 망막 신경세포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단백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동물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환자를 진료하고 연구하느라 보내는 빠듯한 시간, 환자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의사가 얼마나 고민하고 노력하는지 알아줘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환자일 것이다. 마치 주문 같은 환자의 칭찬과 교감이 선생님을 망막 연구에 더 몰입할 수 있게 하는 힘이라고 했다.
선생님이 의사 생활을 시작한 건 1999년이다. 그날 이후 정규 일과를 시작하기 전, 이른 아침 2시간이 이주용 선생님에게는 ‘골든 타임’이다. 진행 중인 연구 자료를 정리하거나 논문을 읽고, 그날의 수술 계획을 머릿속에 그려보기도 한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그 시간조차 선생님의 마음은 온통 ‘눈’을 향해 있다. 1만 시간의 법칙이란 것이 있다고 한다. 하루 3시간씩 10년 동안 정성과 노력이 쌓이면 누구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법칙. 변함없이 부지런히, 변함없이 치열하게 이주용 선생님은 의사의 길을 걸어왔다. 그 많은 날들을 가늠해본다면 1만 시간, 아니 10만 시간의 법칙이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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