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새로운 길을 달리며 2018.07.17

새로운 길을 달리며 - 신경외과 박중철 교수

 

“교수님, 제 머리를 열게 되나요? 얼마나요?”
건강검진에서 뇌혈관이 부푼 동맥류를 발견하고 찾아온 환자였다.
“뇌수술 대신 사타구니 쪽 혈관을 통해 동맥류에 백금 코일을 넣어 치료할 겁니다. 걱정 마세요.”
“네? 뇌에 문제가 있는데도요?”
낯선 수술실과 개두술 장면을 떠올리며 긴장했던 환자는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신경외과 박중철 교수는 신경중재시술에 대한 설명을 침착하게 이어갔다.


낯선 길, 앞선 발걸음

외과라면 으레 수술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신경외과 치료는 수술실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뇌혈관의 불필요하게 튀어나온 부분을
막는 색전술이나 막힌 곳을 재개통하는 시술이 대표적이다. 박중철 교수를 만난 곳도 수술실이 아닌 혈관조영실이었다. 1990년대
뇌동맥류에 백금 코일을 넣어 문제를 해결하는 신경중재 치료는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뇌혈관에 생긴 문제라면 누구나 부담을
느끼기 마련인데 피부절개나 두개골을 다루지 않아도 치료가 가능해진 것이다. 신경중재 시술 환자가 점차 늘어나던 2011년.
우리 병원 신경외과에서도 신경중재 시술에 집중할 의사를 찾았고 그때 박 교수가 합류했다.

“처음엔 신경중재만 맡아달라는 병원의 요청에 고민이 좀 되더라고요. 아직까지 국내에 신경중재 시술만 하는 신경외과 의사는
10명도 채 되지 않거든요. 그만큼 과감한 선택이었지만 지금은 만족해요. 수술과 중재를 병행하는 것보다 특화된 분야에 집중할
기회가 생긴 거니까요.”


예전에는 이미 뇌출혈이 생긴 후 병원에 오는 환자가 많아 사망률도 높았다. 하지만 요즘은 치료양상이 예방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박 교수의 환자 중에도 건강검진 등으로 뇌혈관 동맥류를 미리 발견하고 더 큰 일이 생기기 전에 예방 시술을 하는 비중이
크게 늘었다.


그의 아픈 손가락

 

의사는 환자와 함께 성장한다. 그 역시 꽤 오래 전에 스무 살의 한 환자를 만나
한뼘 더 성장했다. 처음엔 가벼운 경부통증과 근육통으로 응급실에 온 젊은
환자였다. 그런데 갑자기 경기를 하더니 의식을 잃었다.

검사 결과 척추동맥박리성 동맥류였다. 뇌 전반엔 이미 출혈이 퍼져 있었다.
박 교수는 부랴부랴 환자를 치료실로 데리고 들어가 밤새 터진 혈관을 일일이
색전술로 막았다. 뇌척수액을 빼고 기관삽관까지 진행한 뒤 박 교수는 새벽녘에야
치료실을 나올 수 있었다.

“제 눈앞에서 환자가 급속히 악화되는 모습을 보니 무서웠죠. 근데 제가 물러서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그나마 젊은 환자라 회복이 빨랐어요. 저도 젊었고요.
의사로서 뜨거운 보람을 느껴본 순간이었죠.”


시간이 지나도 편히 이야기를 꺼내기 힘든 몇몇 환자는 그의 아픈 손가락처럼
남았다.

 

“솔직히 건강을 되찾은 분보다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불가항력으로 생명을 잃은 분들이 마음에 더 남아 있죠.”

그렇다면 매일 생사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하는 의사라는 직업. 버틸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의사는 남한테 도움을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이잖아요. 내가 치료한 많은 환자가 이후 인생을 계속 이어갈 거라는 위안으로
버티죠. 그렇다고 그 의미가 현장에서 매일 와닿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제가 지칠 때면 최소한 바닥으로 떨어지진 않게 붙잡아
주더라고요.”

 

매일 새로운 뇌혈관 지도

처음부터 그가 의사를 꿈꾼 건 아니었다.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어 건축학도를 꿈꿨지만 가족 모두 의대 진학을 원했다. 그는 운명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1지망은 의대, 2지망은 건축학과를 써낸 것이다. 결과는 의대 합격. 오히려 그에겐 아쉬운 결과였다. 별 의욕이나
흥미 없이 시작한 의대 생활. 하지만 본과에 들어서며 방대한 해부학 속에 뇌와 척수만 파고드는 신경해부학의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

“혈관이 이름만 같지, 사람마다 모양이 모두 다르거든요. 매번 환자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해야한다는 점이 새로워요.
들여다볼수록 재밌고요.”


2014년 미국 터프츠 대학교(Tufts University)에서의 연수는 그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당시 혈관이 만들어지는 발생학을
연구하며 질병마다 어떤 기저 내에서 발생한 문제인지 좀 더 입체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연구에
적용할만한 아이디어나 신경중재의 나아갈 방향까지 구상할 수 있었다. 실제로 영상의학과 이덕희 교수를 도와 새로운 뇌혈관용
스텐트에 대한 임상 적용 연구를 진행 중이다.

“저는 뇌를 다루는 사람이란 점에 특히 자부심을 느껴요. 뇌는 모든 과와 관련돼 있다 보니 신경외과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여기저기
많죠. 그만큼 시도해볼 것도 무한히 많고, 아직 젊으니까 갈 길이 머네요.”


“박중철 교수는 자신의 얘기가 어색한 듯 손사래를 치고 대답을 고민하다가도 불쑥 자신감과 자부심을 내비쳤다.
말과 말 사이의 쉼표에도 그의 고민과 내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성실함이라는 방패와 예민함이라는 무기로
오늘도 부지런히 달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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