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환자의 손을 놓지 않는다면 2020.12.15

환자의 손을 놓지 않는다면 - 응급의학과 유승목 교수

 

“의사가 되는 건 어때? 그냥 의사 말고 좋은 의사.” 고등학교 선생님의 권유가 시작이었다. 좋은 의사란 어때야
하는지 몰라도 진지한 당부는 마음에 닿았다. “목표가 생기니까 공부할 이유가 생기고, 인생이 걸린 선택도
쉬워졌어요. 마침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 가게 되었거든요. 따라가겠냐고 묻길래 혼자 남겠다고 했죠.”
 

 

의대에 입학하면서 할머니와 살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온갖 병환으로 서울아산병원을 옆집처럼 드나들었다. 인턴으로 입사해 할머니를
더 가까이에서 돌봤다. 그러나 누구보다 각별한 할머니가 죽음의 문턱까지 간 모습도 지켜봐야 했다. 중환자실에서 적극적인 치료로
할머니를 살려내는 모습을 보며 바이탈을 다루는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또 먼 훗날 시골에 작은 종합병원을 세워 할머니와 같은
환자를 돌보겠다는 꿈을 그렸다. 그러려면 다양한 진료와 치료를 경험할 수 있는 전공을 찾아야 했다. 결론은 응급의학과였다.

유 교수의 주전공은 소생의학과 중환자의학이다. 초기 처치가 매우 중요한 분야다. 끝까지 살려야 할지 편안한 마무리를 도와야 할지
어려운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열일곱 살의 환자가 패혈증성쇼크로 입원했을 때다. 사망 확률 95%. 포기할 만한 상황에 다다랐다.
‘이렇게 젊은데….’ 자꾸 미련이 남았다. 잠깐의 타이밍도 놓칠까 봐 예의주시하며 감염 처치와 승압제 용량을 조절했다. 보호자에게
“쉽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일주일째 전하면서도 포기를 떠올리지 않았다.

“살 확률이 매우 낮을 뿐이지 0은 아니잖아요. 응급실에 있다 보면 수많은 환자 중의 한 명으로 대하기가 쉬워요. 그러나 한 사람에
대한 애착이 매 순간 필요합니다.”


죽을 고비를 넘긴 환자를 내과계중환자실에 인계하던 날, 완쾌라도 된 듯이 기뻤다.

“환자 부모님이 고맙다며 바나나를 줬습니다. 제가 거절하지 않은 유일한 사례였죠. 제겐 세상에서 가장 값진 바나나였습니다.”
 

환자와 나누는 온기

 

응급실에선 환자와 관계를 쌓을 틈이 없다. 분 단위로 도착하는 환자를 빠르게
처치해 해당 과로 연결하는 시스템에선 완치의 기쁨이나 감동 어린 피드백을 받기
어렵다. 오히려 응급 정도에 따라 환자를 구분하다 보면 악역이 되기 쉽다.

“의료진과 환자가 보는 응급의 개념은 크게 달라요. 환자에게 친절히 이해시키면
좋겠지만 참 쉽지 않은 문제예요.”


전공의 시절엔 작은 실수도 환자에게 피해가 간다는 생각에 늘 여유가 없었다.
환자에게도 냉정했다.

“경험이 쌓이면서 환자와 어떻게 공감하고 소통해야 할지 조금씩 보이더라고요.
‘많이 불편하시죠? 이렇게 해결하시면 어떨까요?’ 대화법을 바꾸니까 지체되는
시간이 줄었어요. 사람 대 사람으로 공감해주는 의사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유 교수는 환자들이 준 편지를 책상에 붙여 놓는다. 호주 관광객이 준 엽서도
있었다.
 

 

“심정지로 응급실에 온 환자였어요.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저체온 치료를 비롯한 소생 후 치료를 이어간 끝에 위기를 넘겼죠. 보통
심정지가 오면 일상으로 돌아갈 확률이 3~5%에 불과해요. 그런데 외국인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거나 사망하면 고국으로 돌아가기
참 어렵거든요. 어깨가 무거웠어요. 무사히 퇴원하던 날 환자가 한국 의료를 칭찬하는 내용의 엽서를 건네더군요. 매너리즘에 빠질
때마다 환자들의 응원을 보며 다시 힘을 냅니다.”

 

묵묵히 찾아가는 길

“물에 빠진 사람이 무사히 건져 올려질 때까지 손을 잡고 버티는 것이 응급의학과의 역할이라고 배웠습니다.”

환자를 꼭 붙든 손이 되기 위해 요즘 집중하는 것이 있다. 첫 번째가 응급초음파 교육이다. 심장내과, 영상의학과 등에서 정확한 진단을
위해 사용하는 용도와는 조금 다르다.

“환자 옆에서 상태 변화를 모니터링하며 그에 맞는 치료를 수행하고 실시간으로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응급실에선 빠른 판단이
중요하거든요. 더 많이 보급되고 활용되도록 교육해 나갈 계획입니다.”


두 번째는 재난의학이다. 지난 1년 코로나19 상황을 거쳐왔다. 환자 수를 줄여도 병원의 물리적 능력을 넘어서는 의료적 재난이었다.
환자 분류와 격리에 대한 시행착오도 있었다.

“재난 매뉴얼을 만들고 있습니다. 많은 자본이 들어가지만 실제로 써먹지 못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매뉴얼조차 없으면 사회적 비용이
훨씬 더 든다는 걸 경험해왔죠. 단순한 관심으로 끝나선 안 돼요. 꼭 필요한 학문이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에요.”


좋은 의사가 되라는 고등학교 은사의 당부를 자주 잊곤 한다. 그러나 유 교수는 자신이 필요한 곳에 전심을 다하고 있다.
그거면 충분할 것이다.
 

보다 건강한 콘텐츠 제작을 위해 이 콘텐츠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말씀해 주세요.

뒤로가기

서울아산병원 뉴스룸

개인정보처리방침 | 뉴스룸 운영정책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