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섬세한 손끝, 따뜻한 눈빛... 노력으로 기회를 만들다 2015.11.12

섬세한 손끝, 따뜻한 눈빛... 노력으로 기회를 만들다 - 간이식ㆍ간담도외과 안철수 교수

 

간이식 수술 과정 중 혈관 문합(혈관을 잇는 것)은 수술 현미경을 보면서 지름 2㎜ 내외의 간동맥을 0.04㎜
굵기의 가는 실로 이어 붙이는 고난도 수술이다. 혈관을 매끈하게 연결하지 못하면 이식한 간까지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결국 환자가 사망할 수 있다. 혈관을 잇는 손끝은 정교하고 민첩해야 한다.
안철수 교수는 간동맥 문합술을 국내에서 가장 많이 한 외과 의사다.


우연이 만든 인연

학창시절 안철수 교수는 인문학도에 가까웠다. 건축가의 꿈을 키우며 세계 유명 건축물의 이름을 달달 외우고 다녔고, 민둥산에 나무
심는 조경사를 꿈꾸기도 했다. 그러다 학력고사를 마친 반 친구들 사이에 ‘의대 바람’이 불어 얼떨결에 의대를 지원했다.
입학 후에도 전공 공부보다는 철학 서적에 빠져 살았다. 죽어가는 사람 살리는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에 응급의학과를 지원했으나,
지도 교수가 미국으로 가는 바람에 또다시 엉겁결에 간이식 분야에 지원했다.
1999년 이미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은 소아 생체 간이식, ABO 부적합 생체 간이식, 변형 우엽 간이식 등 간이식 교과서를 새로 쓰며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매일 밤늦게 수술이 끝나고 이른 아침 회진 준비를 해야만 했다. 밤을 꼬박 새우기 일쑤였던 때라 늘 부족한
것이 잠이었다. 전공의 대부분이 수술 중 졸음을 참지 못해 집도의의 불호령을 맞곤 했다.
안 교수는 잠을 이기기 위해 집도의의 수술 과정을 입으로 되뇌었다. 그렇게 입으로 곱씹다 보니 언제부턴가 집도의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직감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척하면 척. 완벽한 팀워크. 그러던 어느 날 예기치 않은 제안이 들어왔다.


시작했으면 끝을 보는 뚝심

 

간이식ㆍ간담도외과 안철수 교수의 주전공은 간암과 담도, 췌장암 및 간이식
수술이다. 간이식 수술은 워낙 복잡하고 어렵다 보니 보통 여러 명의 외과
전문의가 함께 수술한다. 이들의 역할은 간절제, 정맥 문합, 동맥 문합 등으로
철저히 분업화돼 있는데 안 교수는 미세 혈관인 동맥 문합에 있어 국내 최고의
독보적인 수술 건수와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동맥 문합은 미세현미경을 이용하는 고난도 수술이었기
때문에 주로 성형외과에서 담당했다. 수술이 마무리되는 늦은 밤에야 시작됐기
때문에 간이식팀으로선 매번 성형외과에 부탁하는 게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생체 간이식 수술 건수가 늘어나면서 외부의 도움에만 의지할
수 없었다. 대안을 모색해야만 했다.
2003년 간이식팀의 리더였던 이승규 교수는 안철수 교수에게 간동맥 연결을
위한 미세현미경 수술을 준비하라고 했다. 횡경막 바로 아래 붙어있는 간은
출렁이며 움직였다. 확대기능이 있는 미세현미경을 통해 보면 움직임이 더욱
크게 보였다.

 

물론 수술은 더 어려웠다. 움직이는 순간 0.04㎜ 굵기의 실로 일정하게 꿰매야 하는데 아무리 손재주가 좋은 의사라 하더라도 반복된
훈련으로 손에 감각을 익히지 않고서는 해낼 수 없었다. 안 교수는 매일 저녁 일과를 마치고 텅 빈 동물실험실로 가 쥐의 혈관을 이용해
연습을 시작했다. 쥐의 대동맥은 1㎜, 사람의 간동맥은 최소 2㎜이니 더 가느다란 쥐의 혈관을 대상으로 연습하면 사람은 거뜬히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저절로 손이 움직일 때까지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다.
보통 의사들이 쥐 10마리로 실험하면 충분하다고 했지만 그는 쥐 50마리로 연습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한 마리당 1시간 이상
걸렸지만 점점 시간이 줄었다. 감각이 손에 익어 어느새 성공률도 100%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끈질기게 연습한 실력으로
드디어 간이식 수술에서 미세현미경을 잡았다. 그의 첫 동맥 문합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미세술이 가능해지면서 복잡하고 위험한
위치의 암도 안전하게 떼어내는 정밀한 간 수술을 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의 그를 만든 것

그의 손끝은 섬세했고, 눈빛은 따뜻했다. “간이식 같은 큰 수술을 하면서도 출혈이 거의 없을 만큼 꼼꼼하게 수술하세요. 미세한 혈관
하나도 놓치지 않으시죠.” 2년 차 펠로우는 그를 ‘치밀하게 준비하는 의사’라고 했다. “차분하고 온화하세요.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겨주시고, 저희같이 트레이닝 받는 사람들의 의견도 많이 존중해 주시죠.” 3년 차 임상강사는 그를 ‘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의사는 치료의 한 부분이에요. 환자가 스스로 병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야 하죠.” 그는 환자와 되도록 많은 대화를 나눈다.
결국 삶을 선택하는 건 환자의 몫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자기 원하는 대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돌아보면 직업도, 전공도 제 의지대로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어떤 일이 됐든 결국 출발선은 같다고 생각해요. 일단 선택했다면 그 길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힘있게 나가는 게 중요하죠.”
세계 최고의 간이식팀. 그곳은 녹록지 않은 현장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밤을 새워 연습하며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했다. 지금의 그를 만든 것은 우연이 아니라 노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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